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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Dec 04. 2024

마음의 불편함도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가?

빛과 어둠, 그 경계에서 한 선택

변화가 많은 해였다.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내 집이 생겼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서야 아빠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하는 뱃살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을 하게 됐다.


나만의 리추얼과 루틴을 매일 꼬박 지켜내기 위해, 익숙해서 몰랐던 나쁜 습관을 버리고 불편해서 도망 다녔던 좋은 습관을 만들고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애써 지켜온 것들이 무너지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허무하게도.




자각증상이 없고 통증도 없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자궁근종의 크기가 자궁을 드러내야 할 만큼 크다는 진단을 받은 이후로 멀쩡하던 배가 살살 아팠다.


눈 뜨자마자 배가 아파 화장실에 앉아있느라 새벽 독서시간을 놓쳤다. 회사에 출근하는 차 안에서도, 부서장에게 검진 결과를 보고하면서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산책을 하려고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도, 근무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내내 뱃속이 불편했다.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고, 당이 떨어질 때마다 까먹던 사탕도 맛이 없고, 일만 하는 부서원들의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키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자궁근종 절제의 예후를 찾아보느라 도서관에 가는 것도 잊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 한마디, 진료의견서 한 줄이 사람을 이렇게 못살게 굴 줄이야.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온통 진단명 속에 갇혀 삶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세 달 가까이 애써 지켜왔던 하루의 루틴이 다 깨져버렸다.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건 생활습관의 영향을 받는 거겠지? 주먹만 한 자궁근종도 그럴 것이라고, 자책 아닌 자책을 하며 하루를 보낸 것이다.




다음날.

대학병원 예약시간보다 2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20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지만 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 건 처음이어서 진료 절차를 알 수 없기도 했지만, 불안함을 부지런함으로 잊어보려는 의도가 더 컸다.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인지 외래 접수는 복잡하지 않았고 병원에 도착한 지 10분 만에 자궁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초음파 검사실에는 의사가 아닌 검사만 하는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결혼은 했는지 출산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걸로 검사가 시작됐다. 결혼도 안 했고 출산 경험도 없으니 대답은 ‘아니요!’ 뿐이었다. 질문이 끝나자 묵묵히 검사가 진행됐다. 엊그제 검사할 때와는 다르게 정밀 수치가 기록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근종의 크기도 더 크고 수량도 더 많아 보였다. 검사가 다 끝났다는 말에 근종 크기가 크다던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결과는 의사에게 들으라고 딱 잘라 말했다. 모질게 느껴질 정도로 건조한 말투로! 환자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고 낯선 경험이지만 매일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병원 종사자는 환자의 사정을 일일이 헤아려 친절할 순 없는 모양이다.


메마른 답변을 듣고 진료실 앞에 쭈그려 앉아 기다리는 동안 읽으려고 가져온 책은 자꾸만 달달 떨게 되는 무릎을 누르는 데 사용하고, 죄 없는 핸드폰의 시계만 노려보며 긴장을 억눌렀다.


수술을 하게 될 경우의 애매하고 불편할 상황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마침 출산휴가를 들어가는 부서 직원이 있어 자리가 비는데 나까지 한 달을 속수무책으로 병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지? 결혼과 출산은 내 세상에 없을 거라고 단언했지만 자궁이 없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진 않은데 어쩌지? 수술을 해야 하지만 하지 않았을 경우에 지금과 다르지 않게 살아갈 수는 있는 걸까?


간호사가 나를 호명했다.

마음이 복잡한 걸 티 내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더 침착한 걸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한 편안한 인상의 의사가 내 미래의 결정권자로 앉아 있었다. 검사실의 선생님처럼 딱딱한 사람 같진 않았다.


수술하려고 왔어요?

수술 안 해도 되나요?


의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 입꼬리가 불편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 답변을 듣지 않아도 속풀이가 다 된 듯 바짝 긴장했던 몸을 풀어줬다.


솔직히 말하면 자궁근종이 커서 수술을 하면 좋겠지만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 혹시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 게 아니면.

없어요, 없어!! 그런데… 자궁을 꼭 드러내야 하나요? 근종만 절제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의사는 자궁 모양이 그려져 있는 메모지에 근종 위치를 그려가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근종만 자르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꼭 수술을 해야 한다면 자궁 적출이 가장 깨끗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이미 수술을 원치 않는 내 의사를 충분히 반영해 추적관찰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폐경이 오면 근종 크기는 자연스럽게 작아져요. 걔네들이 여성호르몬 먹고 자라는 애들이라서. 그런데 폐경은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그 순간 문득 어쩌면 자궁근종이 있고 그게 크고 있다는 건 내가 아직 젊고 건강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없어도 될 것이 있고 더 커질 수도 있는 쓸데없는 덩어리이긴 하지만.


확률적으로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많이 생기긴 하지만 그것도 복불복이에요. 원인도 증상도 치료방법도 없는 참 애매한 애들이라.


복불복에 내가 걸려든 것뿐일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걸려들지 않았을까? 결국 확률 싸움에 진 걸까? 혼자 살아가는 삶이 나쁘지 않았는데 혼자 살기에 확률에 걸려들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큰 위로가 됐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와는 다른 공기가 나를 맞았다. 다시 검진하기 전으로 돌아간 듯 몸이 가벼웠다. 어제 하루종일 아팠던 배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보면 달라진 건 없는데 이렇게 가뿐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마음의 불편함도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현관으로 들어가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열린 문의 빛을 의식하며 돌아섰다. 그 잠깐의 시간이 내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엘리베이터라는 빛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계단이라는 어둠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빛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몸놀림이었다. 내게 빛과 어둠은 더 이상 천사와 악마, 생과 사, 기쁨과 슬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가 아니다. 그저 선택일 뿐이다.


이제 다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선택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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