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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상처받은 인간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by 다시봄

나는 어쩌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지도 모른다.

만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관심을 기울여도 사람들은 점점 이해의 범위를 넘어섰고, 쉽게 변하지도 않았으며, 내가 쏟은 관심만큼 나를 들여다봐 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상처를 받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왜일까?

같은 인간이면서, 같은 마음을 나누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그것은 아마 ‘결핍’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되지만, 각자의 결핍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결핍과 결핍이 충돌할 때, 우리는 밀어내며 멀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혼자 살아야 할까, 아니면 상처를 감수하며 계속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 할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가 상처받은 인간을 치유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을 더 폭넓게 알고 싶다.

그 앎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AI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AI는 사람을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하는가?

인간의 결핍을 넘어설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이 사람’을, 내게 상처주는 ‘이 사람’을 AI는 어떻게 볼까?

AI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운 인간이, 이제 기계에게 묻는다.


이 사람 어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도, 정답을 바라는 물음도 아니다.

사람으로서, 인간의 결핍과 상처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의 출발점이다.

사람을 더 깊이 알고,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물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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