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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Jul 05. 2024

공복담배, 공복커피, 그보다 공복 절

"왜 흡연자들은 공복에 담배 피우는 걸 좋아할까?" 

보살님들과 차를 마시며, 법당 앞 도로공사 시작 전 담배 피우고 계신 인부 분들을 보고 있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공복에 커피 마시는 거랑 같은 이유겠죠. 잠도 깨고 공복에 먹는 게 맛있잖아요. 우리도 공복에 절하잖아요." 


그렇다. 공복 커피는 잠을 깨거나 살기 위해 먹기도 하지만 공복에서 맛과 향이 잘 느껴지다. 공복 절도 그렇다. 어쩌다 절에 산지 7개월 차, 이제 공복에 절을 안 하면 섭섭하다. 아주. 



새벽 3시 15분. 알람시계가 울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법당 처마에 매달려있는 풍경소리에 먼저 눈이 떠진다. 겨우 몸을 뒤척여 알람을 끄고 화장실로 향한다. 세수하고 겨우 눈을 뜬다. 화장실 위 다락에는 또 쥐들이 신나게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부터 아주 활발하군'

법복으로 갈아입고 양말을 신는다. 아직 꿈 속인 룸메이트이자 도반인 법우를 깨우고 방을 나선다. 새벽하늘은 별이 쏟아진다. 'Star walk2' 별자리 어플로 별자리를 맞춰본다. 대충 북두칠성만 알아보고 법당으로 들어간다.  


쏟아지는 별들이 보이는 만큼 잘 안 담겨 늘 아쉽다. 

반배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서면 이미 보살님들과 법사님이 절을 하고 계신다. 보살님들은 대부분 새벽예불 전 이미 300배 정도로 몸풀기(!)를 하신다. 내 자리에서 3배를 올린 뒤 좌복(절방석)에 앉으면 3:30이 딱 맞는다. 30분이 되자마자 녹음된 예불문을 법사님이 트신다. 늘 예불의 시작이 되는 '*칠정례'로 시작한다. 룸메이트로 지내는 법우는 눈을 다 뜨지 못한 채 절을 한다. 눈에 힘이 풀려 보여도, 이미 외운 반야심경이 줄줄 나온다. 룸메이트 법우는 새벽기상을 힘들어하지만, 절에 벌써 3년째 살고 있는 중이다. 20대 초반에 들어와 절의 예법을 따르며 사는 모습을 보면 어떨 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예배드린다는 '지심귀명례'가 7번 나온다고 하여 칠정례라고 한다. 


 칠정례와 천수경이 끝나면 우리말 백팔대참회문으로 다 같이 속도를 맞춰 108배를 한다. 법사님의 죽비소리 한 번에 한 배다. 나의 속도로만 절하면 절이 쉽다. 한 속도로 절하는 건, '이인삼각'으로 달리는 것과 같다. 모두의 속도를 맞추면, 빨리 일어나고 싶어도 좀 더 천천히 일어나 앞서나가지 않아야 한다. 절 속도로 '공존의 방식'을 배운다. 


법사님은 수십 년간 3000배를 매일 하고, 300일 간 1만 배 기도를 했다. 3000배는 사람에 따라 5-10시간이 걸리고, 1만 배는 겨우 눈만 붙이며 하루종일 절해야 한다. 법사님은, 남들이 1배할 때 3배를 했었던,  '절 마스터'다. 예전엔 속도가 정말 빨랐지만, 함께 절할 땐 대중들의 속도를 맞춘다. 처음 오거나 평소 절을 안 하시는 분들이 기도 들어오면 헉헉 거리는 소리가 법당 안에 울릴 때도 있다. 그럴수록, 법사님은 최대한 '초심자'의 속도에 맞춘다. 


절이 시작되면 죽비소리와 사람들의 독송소리, 숨소리, 바깥에서 들리는 풀벌레와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다. 다 같이 똑같이 속도를 맞춰 절이 끝나면 약 15분이 걸린다. 어젯밤 늦게 자거나 잠을 설친 날엔 30배까지 눈이 가물가물하다. 반수면 상태지만, 어느새 108배가 다가오면 정신이 또렷해진다. 잘못된 자세로 잠을 자더라도 뭉친 어깨가 풀려있다. 


도시에 있을 땐, 지난밤의 피로로 잠을 설치면 어깨와 목이 결려 두통에 괴로워하며 일어났다. 그럴 땐, 대충 두유와 과일을 때려먹고 애드빌 2알을 털어 넣는다. 약 성분 때문에 머리는 멍하지만 두통이 조금 사라진다. 야근 - 부족한 수면 - 부실한 식사 패턴이 반복되는 주간엔 거의 매일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집에서도 가끔 절을 했지만 매일 절을 하니 컨디션이 달라졌다. '천연두통약'에 버금가는 절은 틀어진 허리와 뼈의 정렬까지 맞춘 느낌이랄까. 도수치료를 셀프로 할 수 있다. 공복에 몸 안에 절을 채워 넣으면 잠든 몸이 개운하게 일어난다. 에너지가 싹 - 도는 느낌이랄까. 


성불하세요


절이 끝난 뒤 법성게, 화엄경 약찬게, 원각경보안보살장 등을 이어서 예불을 드리면 약 1시간가량의 새벽예불이 끝난다. 예불 뒤엔 꼭 반배와 함께 서로에게 성불을 기원한다. 난 성불타임이 좋다. 

함께 기도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마음을 공유하고 이 에너지들이 우리를 감싸는 느낌이랄까. 


새벽 4시 40분. 예불이 끝나면 스님이 법당 안으로 들어오신다. 절 위쪽에 있는 대나무 숲을 건너면 작은 암자가 있다. 매일 새벽, 스님은 선방에서 수행하신 뒤 예불이 끝날 때쯤 법당으로 들어오신다. 


"두유 먹어"

"이건 무려 프리미엄 골드라고. 커피 마셔"

"과일 먹어"


예불이 끝나고, 자리에서 나의 기도과제를 하고 있으면 가끔씩 스님이 한 마디씩 건넨다. 여든 가까이 되신 노스님은 많은 표현을 해주시지 않지만, '츤데레' 같으시면서도 마음은 늘 따뜻하시다. 절에서 생활은 예불이 다라고 생각하신다. 예불만 잘 나와도 스님이 보내시는 애정 어린 마음이 잘 느껴진다. 사실 맞다. 예불이 절 생활의 모든 것이고 수행의 첫 시작, 새벽예불은 오늘 수행의 첫 물꼬를 트게 한다. 



 5시쯤 법당을 나선다. 아침공양 시간까지 45분의 시간이 남았다. 다시 방에 들어와 양말을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절로 맑아진 정신에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맡에 둔 책을 집어든다. 또는, 어젯밤 보지 못하고 잠든 '나는 솔로'를 본다. 



법당에서 나오면 보이는 요사체. 새벽의 산 풍경도 아름답다. 


5시 45분. "공양 준비 다 됐습니다."라는 공양주 보살님의 말과 함께 스님의 목탁소리가 들린다. 

방에서 다시 양말을 신고 아침 공양을 먹으러 나온다. 새벽예불 끝난 뒤, 공복 절 이후 먹는 아침밥은 달고 맛있으며 신성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절 주변에서 나고 자란 산나물, 아침에 주로 나오는 들기름밥 등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절로 깨운 몸에 땅에서 나온 에너지를 채워 넣는다. 이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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