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쥐 났다'
밤 12시 10분, 잠결에 팔과 다리에서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자다가 쥐가 잘 나는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몸을 뒤척이며 저릿한 팔을 푼다. 다리는 느낌이 좀 다른데? 짜릿한 감각이 계속된다. 따끔 짜릿 찌릿 짜릿. 왜 쥐가 안 풀리지? 쥐라고 하기에 점점 따끔해지는데? 잠깐, 이 느낌. 예상되는 것이 있다.
"지네는 이빨이 있거든요. 앙! 하고 물어서, 전기 통한 것처럼 바로 뾱! 찍는 느낌이 나요. 지네 크기가 클수록 물린 자국 주변이 붓기가 심해요. 간지럽진 않은데 땡땡 붓는 느낌과 짜릿한 느낌이 오래 가요."
이건 바로, 말로만 듣던 지네다. 눈이 번쩍 떠졌다.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간다. 종아리를 보니 선명한 이빨 자국이 '뾱' 하고 나 있었다. 다시 방으로 가 이불을 뒤졌다. 놀란 마음에 곤히 잠든 법우를 쳐다본다.
'안 깨우는 게 나을 거 같아'.
스탠드를 켜고 이불을 털었다. 룸메이트 법우를 물기 전에, 빨리 찾아 밖으로 보내려는 심산이었다. 이불이랑 요를 탈탈 털고 책상 밑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지네가 또 나올 거란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작년 여름, *요사체에 있는 모든 방들을 리모델링했다. 나무로 지어진 터라,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오래된 나무는 뜯고 편백을 바르고 장판을 새로 까니 새집 같았다. 벌레들이 자주 출몰하던 구멍들도 거의 다 막혔다. 지네를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했다.
*절에서 거처하는 공간.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 나갔겠지.'라고 위안을 삼으며 다시 누웠다. 전기가 온몸에 흐르듯, 찌릿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다시 누운 시각, 12시 20분. 30분, 40분, 50분이 되어도 지네가 어딘가 기어 다닐 것 같은 기분이었다. 통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럴 바에 법당으로 대피하는 게 낫겠어.'
한 명이 깨서 움직이면, 요사체에 모든 사람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깨기도 한다. 스님이 세우신 규칙으론,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새벽 2시 30분 이후부터 공식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도저히 잠들 수 없어 살살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법당으로 가는 철제 계단에서도 최대한 앞꿈치로 살금살금 걸어 올라갔다. 잠이 오면, 절방석에서 잠시 눈을 붙일 요량이었다. 어둠만이 내려앉은 법당에 들어갔다. 이미 잠은 깬 상태라, 법당에 있던 경전 2권을 집어 들었다. 법당 불도 모두 끈 채, 24시간 켜져 있는 *인등 앞에 절방석을 깔고 앉았다. 경전을 읽다 보면 조금 평온해져 다시 잠이 오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인등(引燈)은 부처님 앞에 켜는 등불로, 발원을 담아 가족과 자신의 등을 밝히곤 한다. (출처 - 화엄사 공식 홈페이지)
은은한 인등 불빛에 의존해 <우리말 원각경보안보살장>을 펼쳤다. *<원각경>은 대승불교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이며, 3장인 <보안보살장>은 중생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교법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원각경>은 새벽예불 때마다 독송하니, 예불 시간 외엔 따로 읽어보지 않았다. 왜인지 그날은 원각경이 '땡겼다.'
"지금 내 이 몸뚱이는 사대(四大)가 화합하여 된 것이다. 터럭・이・손톱・발톱・살갗・근육・뼈・골수・때・빛깔 들은 다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침・콧물・고름・피・진액・거품・담・눈물・정기(精氣)・대소변은 다 물로 돌아갈 것이며, 더운 기운은 불로 돌아갈 것이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대(四大)가 뿔뿔이 흩어지면 이제 이 허망한 몸뚱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곧 알라. 이 몸은 마침내 자체가 없는 것이고 화합하여 형상이 이루어졌으나 사실은 환(幻)으로 된 것과 같다. 네 가지 인연이 거짓으로 모여 망령되이 육근(六根)이 있게 된 것이니라. 육근과 사대가 안팎으로 합하여 이루어졌는데 허망되이 인연 기운(緣氣)이 있는 듯한 것을 거짓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허망한 마음이 만약 육진(六塵)이 없으면 있지 못할 것이고, 사대가 흩어지면 육진도 얻지 못할 것이니라. 이 가운데 인연(四大)과 티끌(六塵)이 뿔뿔이 흩어져 없어지면 마침내 인연의 마음도 볼 수 없으리라.
(중략)
보안이여, 그대 마땅히 알라
시방세계 모든 중생들이
몸과 마음이 모두 환(幻)과 같아서
몸뚱이는 사대로 이루어지고
마음은 육진에 돌아감이라.
사대가 뿔뿔이 흩어지면
어느 것이 화합된 것이런가.
그날따라 한눈에 들어오는 문장. '이 허망한 몸뚱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근원을 일컫는 육근과, 땅, 물, 불, 바람을 뜻하는 사대가 몸을 이룬다고 말한다. 이 요소들이 모여 몸이 되었으나,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고 이것을 '마음'이라 부른다고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이 흩어지면 인연의 마음도 볼 수 없으리라.
음, 그렇구나. 습관처럼 다리를 긁적인다.
앗, 잠깐. 아까 여기 지네 물린 곳이 아닌가? 전기가 몸에 흐르는 것처럼 따끔하고 찌릿한 다리가 어느새 괜찮아졌다. 퓨즈가 끊긴 것처럼, 지네 물린 자국만 볼록할 뿐 통각이 사라졌다.
'혹시, 실제 고통은 내 생각보다 작았던 건 아닐까?'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방에서 연등표를 정신없이 자르고 있었다. 갑자기 툭! 하고 방안 전체가 울릴 만큼 큰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팔뚝 길이만한 지네가 떨어져 있었다. 모두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일명 '지네 헌터'라 불리는 보살님을 불렀다. 보살님은 양쪽에 고무장갑을 끼고 세숫대야와 집게를 들고 오셨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가 떠오르는 비주얼이었다. "어디야?!" 하시더니, 한 번에 지네를 집어 들어 바깥으로 방생하셨다. 그날 이후로 '왕 크고 긴 지네'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날 이후부터 잘 때 나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나 보다.
실제로 지네에 물리니 보이지 않는 지네가 더 크고 두려웠달까. 실물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머릿속 이미지 만으로 고통과 겁이 더 커졌다. 상상한 이미지보단 아주 작은 지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고통이 줄어든 것이었다. 결국 몸뚱아리 고통도, 겁을 가진 마음이 사라지니 사라졌다고 느꼈다.
아침이 되어, 룸메이트 법우에게 지네에 물린 것 같다고 상처를 보여줬다. 아마, 새끼 지네일 거라고 했다. 끝내 지네는 발견하지 못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흉터는 아직 남아있지만.
반대로, 마음으로 보니 잘 보인다고 생각한 사건도 있었다. 또다시 부처님 오신 날. (생각해 보니, 이 기간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준비부터 행사 당일까지, 정말 바쁘게 흘러갔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저녁 공양 후 방에 들어왔다. 법사님께서 방에 들어오셔서, '공식 저녁예불'은 패스하고 각자 금강경을 읽으라고 하셨다.
"자, 그동안 고생한 법우들께 스님께서 주신 선물이에요."
고생했다고 스님께서 포상금을 주셨다. 대가를 바랐던 울력은 아니었지만, 기쁜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얼른 씻고 쉴 생각에, 빠르게 수건과 옷을 챙겼다.
뚝-피융-
갑자기 도량 안 모든 전기가 나갔다. 앗, 정전이다. 이곳이 시골이란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 당일은 우리 절뿐만 아니라 주변 절에도 몇 천명이 오가고 행사에 쓰는 전력도 많다. 과부하가 걸렸는지, 온 마을에 정전됐다. '누워있다가 씻으러 가야지'라고 생각한 1시간 뒤. 점점 해가 지고 전기가 들어올 기미가 안 보였다.
내가 쓰는 욕실에서 씻어야 할 인원은 3-4명. 한 사람이 15분씩만 씻어도 1시간이다. "문 열어놓고 씻으면 되지!"라는 룸메이트 법우 말을 듣고, 일단 욕실에 들어갔다. 그래도 문을 열어둘 순 없었다. 욕실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본다! 일단, 목욕바구니에서 개인 샤워용품을 다 꺼내 샤워기 앞에 줄지었다.
'씻는 패턴은 늘 똑같은데, 눈 감고 씻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눈을 감고, 몸에 밴 습관과 손 끝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눈을 감아도 샤워기 위치가 잘 보였고(?), 늘 씻던 순서대로 페이스 클렌저 - 샴푸 - 바디워시가 손에 착착 들어왔다. 살짝 눈을 떴다. 그 사이 더 어두워졌다. 눈을 뜨니, 오히려 더듬거렸다. 다시 눈을 감았다. 평소처럼 딱 12분 만에 모든 샤워를 끝냈다.
'왜 눈을 감으니, 더 씻기가 편했을까?'
평소 패턴에 맞춰 내 몸을 맡겼을 뿐이다. 눈을 떴을 땐, 눈으로 보려고 했던 마음이 들수록 오히려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버리고 몸의 조종에 따라가니 쉬웠다.
정말 '원효대사 해골물'같은 사건들이다. 원효대사가 말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낸다는 말이 또 한 번 와닿은 순간이었다.
회사 다닐 때, 사이드 잡으로 지식컨텐츠 플랫폼에서 객원 에디터를 했었다. 그때 인연이 됐던, 에디터님이 올해 초 안부차 연락이 왔다. 다른 곳으로 이직해 그곳에서 편집장을 맡고 계셨다. 안부를 주고받다, 아직 객원에디터 일을 하시냐고 여쭤보셨다. 요즘은 퇴사 후 절에 살고 있어, 절 스케줄에 무리가 없다면 리모트로 가능하다고 했다. 하나의 콘텐츠를 맡기 전에 플랫폼의 콘텐츠 톤 앤 매너에 익숙해질 겸, '교열'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교열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나에게 잘 맞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독자'가 봐도 흐름이 막힘이 없는지, 어색한 문장은 없는지, 처음 언급한 정보와 뒤에 나온 정보들 사이에 오류는 없는지 하나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꼭 짚어보고 넘어갔다.
교열의 세계가 궁금해, 교열을 주제로 한 일드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를 봤다. 패션지 에디터로 지원한 에츠코는, 뜬금없이 교열부로 채용이 된다. 이때, 에츠코를 뽑은 면접관이 이런 말을 한다.
"교열 일은 문자 하나라도 의문점이 들어야 해요. 일단 의문이 들면 설령 제삼자가 옳다고 해도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코노 씨는 그걸 행동으로 옮겼어요."
에츠코는 면접장에서 면접관의 넥타이핀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분명 넥타이핀이 아닌 것 같은데, 넥타이핀이 맞는지 거듭 묻고 확인했다. 면접이 끝난 뒤, 에츠코는 옷가게에 가 그 넥타이핀이 사실은 '귀걸이'였다는 점을 확인하고 '역시!'라고 외치며 시원해한다. 그 모습을 우연히 본 면접관이 에츠코를 채용하게 된 것이다.
교열도, 수행에도 공통점이 있다. 불교에선 화두를 드는 '간화선' 수행법이 있다. *화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의심하여 진리를 찾아가는 문제다. 법사님께서도 의심이 들 땐, 끝까지 의심해 보라고 하셨다. 내가 지네에 물린 뒤 고통에 대해 의문을 가진 것도, 눈감고 샤워하는 것이 편한 이유를 찾는 것도, 교열이 잘 맞는 것도 모두 '의심'에서 출발했다.
이 모든 일들의 공통점은 '의심 후 스스로 답을 찾아나간다'는 점이다. 의심을 하다 보면 어느새 '아하 모먼트'가 찾아온다. 절에서 산다는 건, 방탈출 힌트를 얻는 것과 같다. 삶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로 얻은 깨달음이, 생을 살아가는 '실마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