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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Jul 19. 2024

울력, 번아웃 없는 진짜 노동

 가짜 노동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노동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조치를 취하는 데 필요한 '자기 인식' 개발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노동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p.111

잉여 인력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근무시간은 뭔가에 사용돼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대한 천천히 일하고, 삼중으로 확인하고, 잠깐씩 딴 데 신경을 분산시킨다. p. 127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 <가짜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중에서


  <가짜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이하 <가짜노동>) 에선 텅 빈 노동을 인정한 노동자들의 고백과, 현 사회에서 가짜노동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점을 다룬다. 하루종일 회의를 하거나 매일 바쁘다고 느껴도 사실은 우리가 모른 척하고 있는 '가짜노동'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사무실에 하루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시절이 떠올랐다. 매번 같은 문제점만 지적하며 뱅뱅 도는 주간회의, '을'이 맞는지 '의'가 맞는지 조사를 따지느라 오히려 일을 지연시킨 보고서 작업들, 잘못된 의사소통으로 쓴 수많은 시간들.


진짜 필요한 노동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일의 본질을 보지못한 많은 곳에 시간을 쓴 뒤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퇴근 후 허망한 느낌은 커져갔다. 이런 일들은 이직할 때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한 회사만의 문제만이 아닌 걸 느끼면서도 모른 척했다. 일할수록 왜 허무감이 점점 커지는지 깨닫지 못했다. 절에 살면서 '진짜 노동'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까진.



"절에 살면 심심하지 않아요?"

"하루종일 뭐해요?"

"절에선 조용하고 한가해서 좋겠다."


대부분의 절은 자연에 위치했으니 고요하고 한적할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선 지루할 거라 생각해 '하루종일 뭐하는지' 궁금해했다. 많은 이들의 예상보다 절 생활은 분주하고 바쁘다.

[기본 스케줄]
- 3:30 새벽예불
- 5:50 아침공양
- 6:30~10:00 휴식 및 *울력
- 10:00 사시예불
- 11:20 점심공양 (법회 있을 경우 12:00)
- 12:30~16:45 자유시간(휴식 및 개인 수행) 및 울력
- 16:45 저녁공양
- 18:00 저녁예불
- 18:50~ 저녁 울력 및 휴식

*울력 :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하는 일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평상시엔 위와 같은 스케줄로 흘러간다. 자신이 맡은 소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공양과 예불시간 외엔 울력을 하고 개인수행으로 시간을 보낸다.


평상시엔 루틴처럼 하는 울력들이 있다. 설거지, 거의 매일 돌아가는 수건과 행주 빨래는 물론, 봄엔 고사리 따기, 여름이면 항상 목마른 수국 물 주기, 잡초 뽑기, 가을이면 낙엽 쓸기, 겨울엔 눈 쓸기 등을 한다. 천도재나 법회 전날엔 , 부처님을 모시는 상단과 영가를 모시는 영단에 올릴 과일을 쌓는다. 틈틈이 울력을 하다 보면, 새벽 3시가 어느새 오후 3시가 되어 있다.


이 스케줄이 조금 더 hard 버전으로 바뀔 때가 있다. 기독교에선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불교엔 부처님 오신 날이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엔 대부분의 시간을 울력에 쏟아붓는다. 시간이 촉박해질수록 법사님과 스님께 상의 후 예불시간에도 울력을 할 때도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절까지 오는 길과 도량 안이 연등으로 꽉 채워진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울력은 연등설치. 연등은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리는 풍습에서 비롯되어, 등에 불을 밝히면 큰 덕을 쌓는다고 여겨진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 한 달 전부터 매일 접수가 들어온다. 등 밑에 다는 '연등표'엔 가족 이름을 달아 발원하곤 한다. 같은 가족이라도 등을 여러 개 올리시는 분도 있고 이름이나 주소가 바뀌면 작년 파일에서 수정해 새롭게 올린다. 파일이 누락되는 일 없이 꼼꼼히 체크가 필요하다. 낮엔 연등을 설치하고 저녁엔 연등표를 한글파일에 입력하고 정리하느라 조근과 야근을 반복한다.

*출처 : '부처님 오신 날엔 왜 '연등'을 달까' - 소년한국일보(2022.04.29) 발췌


 연등을 설치할 땐 접수되는 예상 연등 수보다 넉넉하게 달아야 한다. 외등부터 연등을 지지할 기둥과 전선이 우선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보통 거사님들이 이 작업을 맡으신다.


이젠 법우들이 나설 차례! 햇살 아래 밀짚모자와 팔토시는 필수. 단단히 챙겨 입고 나간다. 올해 바깥 외등 연등컬러 순서는 파랑 - 빨강 - 핑크 - 노랑- 초록으로 정했다. 그럼 색깔 순서대로 간격에 맞춰 연등을 바닥에 깐다. "절대 순서 헷갈리면 안 돼!" 파빨핑노초, 파빨핑노초, 파빨핑노초.. 중얼거리며 절까지 올라오는 길에 연등을 깐다. 이제 전선에 전구를 꽂는다. LED전구는 깨지기 쉽고 내년에도 써야 하기 때문에 살살 다뤄야 한다. 주머니에 살살 넣고 하나씩 전구를 끼워 넣는다. 너무 살살 넣으면 불이 안 들어오고, 세게 돌리면 엇갈려서 또 불이 안 들어올 수 있다. 전구를 꽂으면 그 위에 연등을 씌운다. 연등을 씌울 땐 X자를 기억해야 한다.

전구 위에 연등을 씌우고, 연등에 달린 철사줄을 전구가 고정된 커넥터에 X자로 돌린다. 철사줄을 꼼꼼히 돌려야 연등이 떨어지지 않고, 예쁘게 달랑달랑 매달린다. 잘 고정하면 꼭 커넥터가 멜빵바지를 맨 모양이 된다. 이 작업을 외등과 도량 안에 등까지 포함해 약 1000번을 반복한다.



하루를 날잡고 도량 안에 있는 연등을 다 달기로 한 날이었다. 도량 안 연등 컬러 순서는 빨초노핑파! 바깥 외등컬러랑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 도량 안에 다는 연등은 더 높이 설치되기 때문에 트럭을 타고, 무대설치용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달아야한다.

나와 다른 법우가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세 줄씩 달고 다음 줄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트럭 위에 이번 줄에 달 연등을 잔뜩 실어둔다. 전구를 달고 전구에 멜빵을 입히고 연등이 잘 매달려있는지 체크한다. 한 줄에 5~6개를 달고 트럭을 운전하는 거사님을 힘껏 부른다. "거사님! 앞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동할 땐, 줄에 머리가 걸리지 않도록 바짝 눕는다. 트럭 위에서 보는 하늘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바람도 선선히 불고, 시야가 높아지니 절도 새롭게 보였다.

"거기가 바로 연화장 세계네."

연등을 다는 법사님이 우리를 보고 한 말이다. *연화장세계는 한량없는 공덕을 갖춘 이상적인 불국토 세계다. 즉, 수행으로 갈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다. 울력도 수행의 일부. 게다가 하늘에 연등이 꽃처럼 피어나고 하늘과 가까이 하니, 그 말이 딱 맞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루종일 연등을 달다 보면 달고 맵고 짠 게 당긴다.

"빵 먹고 싶지 않아요?"

"제가 가져올게요."

"매콤한 거 당기는데요?"

"라면 같은 거요?"

트럭 위에 있다가 입이 궁금할 때면,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과감히 내려와 간식을 두둑이 챙겨 다시 올라간다. 처음엔 무서웠던 2층 높이의 사다리도 여러 번 올라가니 더 이상 무섭지 않고 내 집 같았다.


트럭 위에서 연등을 달고 본 하늘(좌측). 손가락이 아릿하지만 다 달고나면 뿌듯하다. 밤이 되면 빛나는 연등들이 눈부시다.(우측)

똑똑똑. 16시 45분, 목탁소리가 들린다. 벌써 저녁공양시간이 되었다. 사다리를 내려오자마자 나는 익숙한 냄새. 라면이다! 하루종일 연등을 다는 법우들을 위해 공양실에서 특식을 준비해 주셨다. 무한반복으로 철사줄을 동여매느라 엄지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그러나, 젓가락질을 멈출 순 없다. 면치기로 순식간에 라면 두 대접을 비웠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저녁시간이 되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남은 줄은 단 세 줄. 이대로 멈출 수 없었다. 밀짚모자로 비를 막고 박차를 가했다. 마지막 한 줄! 빗줄기가 더 세졌다.

"안되겠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해도 지니 위험하니 내일 해요."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도 집착을 버리는 일이겠거니 생각하여 여기서 마무리했다.

울력 후 먹은 라면은 쉬지 않고 넘어갔다.

부처님 오신 날처럼 일이 많고 바쁘게 움직일 땐 서로서로 갈등이 생길 요소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모두가 잠을 줄여가며 일하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위기를 넘기는 법은 바로 '당신이 옳다'. 재밌게 본 책 <당신이 옳다>에선 상대에 대한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나의 생각대로 하지 말라고 한다. 법사님 역시 '말은 말 그대로 들으세요'라고 하셨다.


내 마음의 힘들수록 꼬아듣기 쉽고 내 생각이 섞여, 내지 않아도 될 화가 나기도 한다. 절에 사는 동안 마음에 울림이 많이 오는 말 역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낸다는 것이다.

협력지수가 높은 울력일수록 누가 옳고 그르고에 대한 판단을 버리는 법을 배운다. '내가 옳다'가 계속되면 협업이 어렵고, 정말 나의 의견이 맞더라도 '역시 내가 맞았어'가 돼버려 남을 아래로 두게 된다. 상대방이 옳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할수록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된다.


 사회에서 일할 때, 피로가 쌓여 방전되고 무기력함을 느끼며 번아웃이 오는 이유. 난 결국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온다고 느껴졌다. 내가 일하고 성과에 따라 평가받고 보상을 받기에 스스로의 가치를 어필하고 '나'를 더 드러낼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난, 그 조건에 충족하기 위해 일에 몰두할수록,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떠맡고 책임감이 높아질수록 나를 태우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절에선, 울력을 하면서 스스로 '아상(我相)'이 많이 버려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아상은 '오온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 '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모두를 위한 일들에 오로지 마음만 쓰면 되는 이 과정에서 '나'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가짜노동>에서 말한 것처럼, 회사에선 스스로 잉여인력이 되기 싫어 자신의 업무와 시간을 부풀린다. 아상은 더 심해지고, 아상이 커지면 '나만 옳다'는 생각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반면, 절에선 '자아(ego)'가 자연스레 놓아지는 과정에 집착을 놓을수록 '나'를 만난다. 법정스님께선 불교를 배우는 것이 자기 자신을 배우는 것이고, 자신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텅 비우는 일이라고 하셨다. 불법을 다 깨치진 못했지만 나를 배우는 중이다.


울력을 하다 보면, 고민과 번뇌가 한껏 올라오다가도 어느 순간 일에 몰입해 사라지곤 한다. 이 과정과 시간이 반복되면 어느새 하루, 한 달, 6개월이 지나가 있다. 절에선 정말 심심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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