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불교박람회 가서 법우님들이랑 보살님들 드리려고 목수건 사 왔어요."
"와 너무 가보고 싶었는데! 그 염주는 뭐예요? 알이 작아서 너무 좋은데요?"
"그 조끼는 지장사 거예요? 디자인이 제가 원하는 스타일이에요."
매달 3번째 일요일마다 가족법회가 열린다. 법회 전날 토요일 오후 2-3시쯤부터 전국 각지에 퍼져있는 청년*법우들이 절에 도착한다. 마산, 광주, 수원, 서울 등 지역도 다르고 각기 다른 사투리와 억양도 다르지만 모이면 대화가 끊기질 않는다. 서울에서 4시간, 마산에서 2시간, 광주에서 1시간 30분. 다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회에 빠지지 않고 절로 모인 이유는 이 절에 쌓여있는 '수행의 추억'덕분이다.
*법우: 불법으로 맺어진 벗이란 뜻으로, 미혼의 청년불자들을 주로 법우라고 부른다.
이 절은 희한하게 다른 절보다 법우들이 많은 편이다. 이곳에 온 법우들은 부모님을 따라오거나, 기존에 다니고 있던 법우들 소개나, (법사님이 다 거절하지만 결국 한 두 개씩 올라간) 법사님의 인터뷰 기사나 책에 실린 이야기 등을 보고 찾아와 인연을 맺는다. 수많은 법우들이 처음 절을 배워 108배를 시작하고, 3000배 100일 기도, 3년 기도를 *입재하고 회향했다. 절에서의 수행 경험들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기에, 법우들은 절에 애착이 더 생길 수밖에 없다.
*입재와 회향 : 기도 들어가는 걸 입재, 끝나는 것을 회향이라 일컫는다.
한 달 만에 만나면 절에서만 풀 수 있는 절토크가 시작된다. 매일 오늘 한 기도를 올리는 법우들만 모여있는 네이버 밴드 모임이 있다. 밴드에서 잘 안 보이는 법우에겐 '요즘 왜 뜸한지' 물어보고 기도를 독려하기도 하며 '수행근황'을 나눈다. 또한, 절에서 쓰기 좋은 요즘 아이템, 연애고민 등도 술술 나온다. 특히, 연애 토크에서 화두가 되는 건 역시 '종교'다. 다들 이 절에 애착이 많기에 나의 연인들도 이 절에 와서 애정을 같길 바라는 마음들이 크다. 종교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법우들도 많기에, 서로 팁을 공유하기도 한다.
법우들이 많이 모이는 법회인 만큼, 친구, 동료, 연인 등 새로운 법우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법우가 와도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환영한다. 대부분의 법우들이 20-30대 비슷한 또래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서로 공감한다. 법회 때 처음 온 법우들 역시 빠르게 적응해 혼자서도 둘이서도 자주 찾아오곤 한다. 한 번도 안 온 법우도 있어도, 한 번만 온 법우는 없다. 이런 '선한 영향력'으로 점점 많은 법우들이 모인다.
16시 50분, 한창 회포를 풀고 저녁공양을 한다. 오랜만에 절에 온 법우들은 '절 밑반찬'이 그리웠다며 한 입 먹을 때마다 감탄이 쏟아진다. 늘 인기 있는 메뉴는, 배추김치, 깍두기, 봄여름에만 나오는 고수간장 등이다.
간장에 김가루만 뿌려서 비벼 먹어도 한 끼 뚝딱이다. 가지나물이나 두부조림까지 넣어 비비면, 양념간장이 밥알에 스며들고 김가루가 화룡점정으로 밥맛을 살린다. 한 명이 비벼먹으면 지켜보던 다른 법우들도 2차로 밥을 비벼먹는다.
든든하게 먹고 난 뒤 18시, 저녁예불을 한다. 다 같이 금강경 독송을 한다. 오랜만에 모인 법우들 목소리가 한 데 모여 법당 안에 독송 소리가 꽉 차게 울린다. 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독송소리가 어우러지면, 신이 나 더 목소리를 크게 내고 싶어 진다.
예불이 끝나고, 19시쯤 법사님 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법사님이 내려주시는 차를 마신다.
"저녁이니까 비트차 내려줄게."
법사님은 저녁엔 늘 카페인이 없는 비트차를 내려주신다. 법사님 방에 들어가면 다들 묵혀둔 고민을 살살 꺼낸다. 집 이사 문제, 동료 문제, 일, 가족, 밥 먹고 사는 이야기 등 사소한 고민이라도 말하는 순간 모두들 마음이 편해진다. 좀 더 솔루션이 필요할 땐 법사님이 몸소 경험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
ENFP인 법사님은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셨다. 고민에 따라 딱 맞는 에피소드들을 풀어주신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힘들어요."- 학원강사 법우 A
"애들은 일단 먹이고 시작해야지~ 내가 30대 때 우리 집에서 공부방을 했거든."으로 시작되는 법사님의 옛날이야기는 참으로 경이롭다. 문제아에 가까운 아이들도 법사님을 만나면 180도 바뀐다. 화가 쌓인 아이들도 법사님이 주는 간식을 먹고 같이 놀고 나면, 다 풀렸으니 공부도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성적도 오를 수밖에. 한때 이런 법사님을 보고 아이들이 '도사님'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박소담)이 말 안 듣는 다송을 몇 분만에 바꾼 것처럼 법사님 역시 '마법처럼'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참, 법사님들은 오랜만에 법우들이 오면 일단 먹이고 시작한다.
"조계사에서 나는 절로 했다는 거 봤어요? 법사님, 저희도 '나는 절로' 해요. '나는 솔로' 연애 프로그램과 비슷한 건데 젊은 남녀 모아서 같이 템플스테이 하고 짝지어 준대요."
"난 너무 좋지~"
법우들이 법사님께 자주 꺼내는 주제는 연애와 결혼. 법사님은 수행으로 갈고닦은 법우들의 유전자를 썩히면 아깝다는 주의라, 늘 법우들의 결혼과 연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 또한, 법우들이 만나는 상대에 대해 쉬이 판단하거나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다른 *대중이 그 커플에 대해 '어울리녜, 마녜' 하더라도 법사님은 '본인 마음에 들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서.
*대중: 불교에선 많은 수의 군중을 일컫는 말이다.
다들 마음이 힘들거나 삶이 고달플 때 법사님을 찾아온다. 처음 온 법우들도 법사님만 오면,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고민거리를 툭 터놓는다. 이 절에 많은 법우들이 모인 걸 보면 인연이란 것이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든다. *인연 따라왔다가 인연 따라 흩어진다는 말이 딱 맞다.
*영가천도문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다.
다음 날, 새벽 3시 30분 새벽예불이 시작된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법우들은 평소 생활패턴과 시차가 달라도 하루 만에 적응한다. 다들 사회에서 삶에 힘들었는지 머리만 붙이면 잠이 든다. 도시에선 새벽 1-2시에 잠들던 법우들도 다들 늦지 않고 예불에 참석한다.
새벽예불과 아침공양이 끝나면, 다 같이 법회준비를 한다. 아침 7시와 8시 사이, 법당에 모여 일을 분담한다. 몇 명은 법당 앞을 비질하고, 한 명은 청소기를 돌리고, 나머지는 쌓아둔 좌복방석을 꺼낸다. 청소기를 다 돌리고 나면 빼곡하게 좌복과 금강경 등을 자리에 깐다. 법회마다 법사님의 지시에 따라, 불교성전, 영가천도문 등이 추가되기도 된다. 자리를 다 깔고 나면 8시 30분 정도가 된다. 법회 시작은 10시. 다들 신나게 헤어진 뒤 그전까지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
가족법회라고 평소와 다른 특별한 의식을 치르는 건 아니다. 사시(10시) 예불을 드리고 마지를 올리고 금강경을 다 같이 독송한다. 독송이 끝나면 광명진언 독송, 몇 분의 좌선으로 바람이 부는 소리, 서로의 숨소리를 느낀다. 법회 마무리쯤에는 법사님께서 불교성전에 있는 글을 골라 읽어주시거나, 최근에 인상 깊었던 글들이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나에게 인상 깊었던 글 중 하나는, 지금은 결혼한 한 법우의 수행담이다. 법사님을 만나 20대부터 꾸준히 절 수행을 해왔다. 출산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법사님과 대화 후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꾸준히 쌓아온 수행의 공덕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 출산 후 회복을 위해 다시 시작한 108배로 경험한 몸의 변화, 소회에 대해 법우가 쓴 글을 읽어주셨다.
법사님이 들려주신 여러 수행담엔 늘 '알아차림'이 있었다. 수행을 통해 삶에서 외면하고 있었거나 숨겨온 내면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도 하고 원결(원수를 지는 것, 원통하고 억울함)이 풀리기도 한다. 법사님이 말씀하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다음 한 달을 살아갈 힘을 주곤 한다.
"오늘은 국수 삶아서 면 분다고 공양실에서 난리일 거예요. 얼른 공양합시다."
법회가 끝나면, 12시. 기다리던 공양시간(식사시간)이다. 가족법회 때는 '특식'이 나온다. 비빔밥, 짜장밥, 볶음밥은 물론, 면도 종류가 다양하게 나온다. 여름이면 냉모밀, 쌀쌀해지면 잔치국수, 쌀밥이 나올 땐 잡채, 버섯탕수, 깐풍가지, 두부강정 등 다양한 메뉴들이 입맛을 싹- 돋운다. 가족법회 때만 오는 법우들도 이때 먹는 공양을 잊지 못해 찾아온다.
날씨 좋은 봄날엔, 야외에서 먹는 공양이 낭만적이다. 소나무 밑에서 돗자리를 깔고 벚꽃나무를 바라보며 공양을 하면 산자락의 풍경은 물론, 새소리와 물소리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과 함께라서 맛이 2배다. 절에 살고 있어도 법회날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야외공양은 쉽게 오지 않는 기회다.
법회가 끝나면 배식과 함께 떡과 과일을 나눠주시곤 한다. 신기하게 같은 채소와 과일이라도 이곳 물로 씻은 과일은 더 신선하게 오래 유지된다. 지금은 절에서 실컷 먹지만, 집으로 돌아갈 땐 꼭 떡이나 과일을 챙긴다. 집에서 과일맛까지 온전히 느껴야 법회에 제대로 다녀온 기분이 든다.
공양이 끝나고 13시가 지나면, 다 같이 법당정리를 끝내고 모든 대중들이 순식간에 빠진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법우들은 떠나기 전에 다 같이 가까운 카페로 향한다. 이 지역카페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메뉴를 맛본다. 절에서 가까운 지역카페에선 꼭 계절마다 이곳에 나는 과일로 '스페셜 메뉴'를 선보인다. 봄엔 딸기, 여름엔 오렌지나 복숭아, 가을엔 밤 등. 성수동 뺨치는 맛에 신선한 재료. 이곳에 오면 꼭 들려야 할 맛집이다.
카페에서 그날 들은 법사님의 법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마저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달을 기약한다. 법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땐 다들 쌓여있던 번뇌를 이곳에 내려두고 간다.
법사님은, 절에 처음 온 법우에게 꼭 주시는 기도과제가 있다. 바로 '절 생활 잘하기'. 첫 번째 기도과제를 잘하면 '매달 한 번씩 가족법회 참석하기'란 과제가 모두에게 주어진다. 매일 기도를 못하더라도, 법회에 와서 푹 쉬고 공양하고 법문 듣고 가면 그것만으로도 수행이 되고 내 마음이 밝아진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많은 대중들이 법회에 올 때마다 절에 살고 싶은 로망을 꿈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역시 운때와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난 뜻밖에 기회로 그 복을 잘 꿰차, 지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법우들이 오고 가면 진하게 채운 즐거움 에너지가 오래간다. 늘 다음 법회가 기다려진다. 고민이 많은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걸 털어놓고 싶을 때 언제든 올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