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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Aug 02. 2024

퇴사 후, 나의 쓰임을 찾는다는 건

산티아고 순례길 대신, 3000배 100일의 여정 (1)

"100일 들어와야겠다."


 처음부터 절에 눌러앉을 생각은 아니었다. 퇴사 후, 쉴 겸 일주일 간 절에 들어왔다. 가끔 1박 2일씩만 머물다 법사님의 끈질긴 '플러팅' 끝에 일주일을 들어오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은 정말 제대로 된 휴식을 가졌다. 퇴사 직후에도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강박에 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미래 현재 과거에 대한 어떤 걱정 없이 잘 먹고 푹 잤다. 6일 차 되는 날, 법사님이 기도과제를 주셨다.

"내일까지 자비도량참법 다 하고 가자. 다 못해도 돼. 하루 더 있으면 되지."

*<자비도량참법>은 중국의 양 무제가 세상을 뜬 황후 치 씨를 위해 여러 경전을 엮어 총 10권으로 만든 참법기도집이다. 해당 참법을 읽으며 나의 잘못 뿐만 아니라 중생들의 과보까지 참회하는 기도를 한다. 하루에 1권씩 10일 동안 하거나 3일에 나눠 기도한다.

*출처 - 자비도량참법기도 어떻게 하나, '불교신문'


이걸 하루 만에 하라니. <자비도량참법>에 포함된 절은 약 1800배. 한 권은 평균 60페이지 분량이지만, 세로 쓰기로 되어 있어 보통 1시간이 걸린다. 그 말은 즉슨 최소 10시간이고, 일부 권은 절도 많고 내용도 많다.

'법사님은 진작에 과제를 내어 주시지 왜 이제 주시지? 날 안 보낼 심산이신가?'

집으로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새벽 3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달렸다. 공양하는 시간 외엔 법당에서 박혀 열심히 기도했다. 법사님이 가끔씩 올라와 '진행상황'을 체크했다. 9권쯤 하고 있으니, "에헤이, 집에 가겠네. 다 끝났네."고 하셨다. 끝나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법사님께 갔다.


"절 잘하네. 100일 기도 들어와도 되겠다."

법사님은 법당에 올라오실 때마다 뒤에서 나의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절 자세에 대해선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10살 때, 법사님께 정석으로 배워 절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법사님은 자신이 가르쳐주신 걸 잊어버린 채, 자세를 보고 감탄하셨다. 나 역시 '절 우수학생'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날 이후로 법사님의 '100일 기도 플러팅'이 시작되었다.

"인생에서 100일은 별 거 아니야. 일주일이나 한 달이나 100일이나 똑같다?"

백수라는 기간이 길어질까 봐 두려워, 100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늘 퇴사 후, '칼이직'을 해온 터라 이렇게 길게 쉬어도 되나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이 돌았다. 그럼에도 절에서 쉬면 마음이라도 편하겠지라는 생각에, 꼬심에 넘어갔다. 몇 주간의 고민 끝에, 퇴사 후 촘촘히 짜둔 계획을 조정해 겨우 100일을 만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진하게 '100일간 절에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법사님께서 3000배 100일을 하라시네."

절에 내려가기 전, 먼저 절에 가있던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3000배라니. 어떻게 3000배를 하냐며, 찡얼찡얼대며 하소연을 했다. '3000배 100일' 경험이 있는 오빠는 절 선배로서 나를 열심히 설득했다. 그 전화도 오빠가 '동생은 계획형이라 미리 말을 해줘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연락하게 됐다고 했다. 법사님은 '서프라이즈!' 할 생각이었을지 몰라도, 오빠 덕택에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 전화를 받고 집에서 혼자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 사실, 법사님 아래 3000배 100일을 기도한 신도들이 많았다. 특히, 3000배가 끝난 뒤 법우들의 변화를 보면서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직장동료에게 추천받아 심리상담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회사가 입주한 건물에서 제공하는 무료상담이었다. 무료라 부담 없이 5회 차를 진행했다.


"아무래도 PTSD가 있으신 거 같아요. 길게 상담을 받아보시면 좋겠네요."

평소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잘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처음 만난 상담 선생님께 술술 풀었다. 마음속 깊이 담아둔 트라우마가 된 사건들까지 다 꺼냈다. 내가 PTSD라니. 트라우마가 담긴 사건의 배경이 된, 화장실 문을 못 닫고, 불 켜진 채로 문이 열려있는 화장실 문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긴 하지만 그렇게 큰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무료 상담이 끝난 뒤, 몇 달을 고민했다. 비용 문제가 컸다. 그러다 동료가 오랫동안 상담을 받고 있다 하여, 그곳을 추천받았다. 비용도 저렴했지만 같은 성별을 가진 선생님이란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상담 선생님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상담 시작 전에, 임상심리사를 통해 종합심리검사를 받았다.

"상담이 필요하겠어요."

역시, 지난번 상담 선생님과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퇴사를 앞두고 있어 오히려 해방감을 느낄 뿐, 심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안에 억눌러진 감정이 많아요. 노래방에 가서 노래라도 실컷 불러봐요. 갑자기 화가 울컥 올라오거나 공격성이 높아 보여요."

다른 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라, INFJ 임에도 '너 T야?'라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 반면, '황희정승' 소리를 들을 만큼 '그럴 수 있지 뭐' 같은 태도로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의견을 수용했다. 그 사이 나의 감정을 억누르다, 뒤늦게 '그때 그렇게 말할걸!' 하고 혼자 후회하는 날도 없진 않았다. 그러한 태도들이 결과에 고스란히 나와있었다.


상담 선생님께서도 검사결과를 받고 지속적인 상담을 권유해 시작했다. 100일 기도를 제안받았을 때쯤, 상담이 두 달 정도 진행되었다. 선생님께 3000배 100일 기도 제안을 말씀드리며 '좋은 건 알지만 하기 싫은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


"절에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나, 마음을 다 비우고 와도 돌아오면 다시 채워질 거예요. 시간을 낼 거면 마음이 내키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도 있고요. 저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겠어요. 물론, 이건 돈이 많이 들 수도 있겠지만요.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상담이 끝나고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대표적인 트래킹 코스가 된 산티아고 순례길도 사실상 수행의 일종이다.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왜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까? 스스로 답을 찾으며 지는 저녁노을을 보고 한참을 걸었다.



겨울이 시작되려는 11월, 절에 내려왔다. 바로 3000배를 100일간 시작하긴 어렵다. 몸에도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절에 내려오기 전 기존에 하던 108배보다 절 양을 늘렸다. 약 10일 간 300배, 500배, 1000배를 해왔다. 절에 내려와서도, 보름간 매일 1000배를 했다.


'가뿐한데? 바로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내일부터 할까?'

빨리 100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라, 할 수만 있다면 얼른 시작하고 싶었다. 108배만 익숙해져도 1000배는 쉽다. 평소 파워리프팅으로 단련된 체력과 근력 덕분에 더 가뿐했다. 근육통도 거의 없었다. 약간 무릎이 뻐근하긴 했지만, 운동이 끝난 후 느껴지는 근육통 정도였다. 새벽에 절을 끝내고 오후에는 울력을 했다.


어느 날, 법사님이 오래된 나뭇가지를 자르고 옮겨야 된다고 하셨다. 법사님이 나무를 베어내면, 난 나무를 옮겼다. 내 몸의 2~3배 되는 크기와 정형화되지 않은 모양들로 가지에 찔리기 쉬웠다. 옷을 뚫고 나올 만큼 뾰족해, 잘못 들으면 얼굴도 찔릴 것 같았다. 한참을 옮기니 겨울인데도 땀이 나려고 했다.

"법사님, 절이 더 쉬운데요."

깔깔 웃는 법사님의 웃음소리가 허공을 채웠다.

"그래, 절은 쉽다니까. 근데, 절할 때 무슨 발원해요?"

절이 다 끝나면, 마지막 절에서 고두례를 한다. *고두례는 ‘무수히 예경 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칩니다'라는 뜻으로, 엎드린 상태로 합장한 손을 이마에 대는 동작이다. 이때, *발원을 함께 한다. 작은 충격에도 마음이 잘 흔들리고 불안감이 높았던 나는, 늘 '단단하게 해 달라'는 발원을 했다.

"그만 단단해져도 될 거 같은데. 오히려 부드러워져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말씀이 처음엔 와닿지 않았다. 또 한 무더기 나무를 옮기고 나니, 머리가 댕 하고 울리듯 충격이 왔다.

*출처 - 고두례, <불교신문>

*발원은 어떤 일을 스스로 해내겠다는 다짐의 불교적 표현이다. 출처 - 불교적 발원의 의미, <불교신문>


사회에선 '착하다'는 말이 싫었다. 도움이 필요한 동료의 일을 함께 고민하다 다 떠맡을 때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걱정을 듣고 내가 더 괴로워하는 날도 많았다.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어떡하지?'에서 시작한 상상으로 스스로 불안감을 키웠다. 나를 지키려고 방벽을 세웠지만 그 벽은 늘 허술했다. 법사님의 말씀을 되새기다, 단단하지만 가느다란 나뭇가지처럼 똑하고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쓰임이 뭔지 찾아보세요."

법사님이 정해주신 발원. 그동안 마케터로 일했지만, 다른 직종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 발원이 더 와닿았다. 직업이 아니더라도 내 안의 나도 모를 잠재력을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업'으로 삼을 일들이 무엇일지 기대하며 그날부터 나의 쓰임을 찾기 시작했다.


절 시작 전, 3000배가 끝났을 때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겨우 '내가 앞으로 할 일' 정도만 방향이 정해질 줄 알았다. 겨울부터 시작한 3000배는 봄이 올 때쯤 끝났다. 절이 끝난 뒤, 내가 운전하는 삶이란 보트의 방향키를 360도 돌린 느낌이었다. 불과 100일 만에 나에게 이러한 변화가 찾아올지 몰랐다. 내가 절이 끝났을 때쯤, 법사님은 오빠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젠 살았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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