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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성훈 Mar 11. 2022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은 없다

바람이 불어도, 멈추어도 제자리일 뿐

희망의 노래는 없다. 섣부르게 삶의 끝에서 새로운 빛을 혹은 가능성을, 하다못해 작은 용기를 얻었다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나약하고 수시로 망설이며, 아무것도 아니거나 아무 곳도 아닌 곳을 향해 원망을 늘어놓는다.



어쩜 그것을 바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모든 것이 끝난 섬뜩함을 가리키진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나를 흔들지 않고,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


봄날의 햇살이 감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와 환하게 비추는 오후. 바람 기척만 있는 어느 산사 사천왕상을 무심히 바라보는 . 순수하지만 어리지 않 마음, 닳았지만 바래지 않은 노련함. 그것이 나에게 無이다.


이젠 그만 나를 흔들지 말았으면 하지만, 일이 안 되는 데에는 이백 가지도 넘는 사연이 있다는 우스개처럼 면역이 들지 않는 마음의 구석이 있다.


내 인생은 어느 쪽이냐면 가끔 즐겁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대체로 행복하지 않다. 다행히 불행 따위는 없지만 찾아오는 행운도 없다. 조각조각 돌을 주워 탑을 쌓고

'휴~ 이만하면 됐다.' 하고선 또 다른 탑을 쌓는 식이다.


언젠가 그 끝없는 탑들의 행렬을 보고 스스로에 감탄할지, 무의미한 반복에 질려버릴지 지금으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냥 그렇게 살아내면 된다.


그뿐이다. 구조주의자에겐 그뿐일지 모른다.

자신을 에워싸는 환경, 사회 체계를 뒤흔드는 행위도 그 무너뜨려야 할 구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법이다. '소명' 혹은 '마땅히 치러야 함'으로 빚어진 신의 세계가 없다면 세상에 내던져진 '실존'을 외치는 관점의 변화도 존재할 수 없다.


순응하든 반항하든 '나'는 나를 둘러싼 지금의 세상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다. 새로움이나 파격도  그 문맥에서만 나올 수밖에.


그게 우리의 삶이다.


'이후'가 없는 (혹은 그 '이상'이 없는), 말 그대로 ''을 벗어나는 순간 종지부를 찍고 마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갇혀본다. 그 위안 없음을 감당하고 살아보자.


그 어둠을 감당할 수 있을까?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이해하겠는가?

니체의 말을 따라  본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지만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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