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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성훈 Dec 30. 2020

20년 만의 랜선 동창회

페O에서 알림이 뜨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반가움을 느꼈다.


벌써 이십 년도 전인 2000년, 뭔가 근사한 미래를 열 것 같은 그 해에 나는 교환학생으로, 요새도 흔치 않은 대학원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의 어느 학교에 반년을 머물렀다.


그 학교를 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다른 학교를 지원할 만큼 성적이 우수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유는, 그 학교가 운영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교환학생으로만 구성된다는 점이다. EU 학생들이 대다수이긴 했지만, '이방인'들만 모인 사회는 훨씬 개방적이고 서로에게 관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아니었다면 평생 지도에서만 보고 말았을 나라의 친구를 사귈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가령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 인구가 200만 인 국가 사람을 만나는 일은, 굳이 거기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당연히 나를 스웨덴 사람인 줄 알고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거는 모습을 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6개월 동안 나는 두 명의 한국 태생 스웨덴인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중국 화교만큼이나 많은 한국 입양인들을 만났던 건 그 나라가 유일했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바로 그 시절 함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 중 한 명이 랜선 동창회를 제안한 것이다. 20대에 만났으니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을 것이고 (이미 몇몇은 페O으로 간간히 전한 모습을 통해 아저씨가 됐음을 인증했다.) 또 몇몇에게는 어찌 살아왔는지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랜선 동창회에, 하지만 나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달라진 일, 달라진 생활, 달라진 가치관... 아쉽지만 이미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추억'이라고 불러야 소환 가능한 단절 앞에서 당시를 회상하고, 그간의 소식을 몇 마디 전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많은 대화가 오갈 수는 없다. '앞으로는 종종 이렇게 만나자'라는 끝맺음으로 인사하겠지만, 다시는 서로에게 연락할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저 그 시절의 나는 이러저러했는데...라는 향수 아닌 향수만 자극할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을 마주하는 일은 꽤나 마음을 지치게 한다.


나의 과거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 모습에 불만이라는 뜻도 아니다.

한 때 숲 속을 흘렀던 물줄기가 평원을 가로지르고, 또 도시를 관통하는 강이 되는 것처럼, 그때 나는 '거기'에 있었고, 지금의 나는 '여기'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때 보았던 풍경은 '지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는' 삶을 살아왔다 한들, 살아가는 동안 모두가 '단절'을 경험한다. 자신의 생활이나 가치관을 바꾸게 되는 계기 말이다. 그 단절들을 바라보다 보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마도 '만약 그때 내가 OOO 했더라면 어떻게 변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동창회도 분명 그런 생각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단절을 마주하는 우리는 불편한 마음앓이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더더욱 그 시절의 내가 눈 덮인 작은 마을을 흘러가던 강물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면 말이다.




여기까지 쓰고 이 글을 마치려 했는데,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지난 20년 동안 쭉 써온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쓰다 말기를 반복하다 10년 가까이 손도 안 대던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율배반적 이게도 나는 글쓰기로, 이미 그 당시의 나와 'Reunion(동창회)'를 한 셈이다.


왠지 데카르트가 된 듯한 느낌이랄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나'인지 알 수 없다는 마음을 적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글을 쓴다, 그래서 존재한다'는 명제를 도출한 기분이다.


어쨌든 친구들에게... 나는 그때의 나처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마음으로만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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