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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성훈 Mar 05. 2022

그만, 바람이 분다

작은 일렁임은 때론 나비효과처럼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본래의 평온함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회복의 시간이 다를 뿐.


시간이 만들어가는 모든 멸망하는 것들처럼 마땅히 흘러가는 마음의 흐름에는 별다른 동요 없지만, 한 번씩 예고 없이 찾아오는 돌멩이에 그만 넘어져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된다. (일상의 흐름에는 변화가 없다. 다만 글에 손을 대는 순간 모든 걸 망가뜨리고  것 같은 기분일 뿐이다.)


열흘쯤 전이려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본인상'


엄밀히 말해 부고도 아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했던 일을, 그만 나만 뒤늦게 접했다.


그에게 인생이란 이런 오르막처럼 힘들게만 느껴졌으려나? 풍경도 바라보며 걸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간의 나를 붙들던 고민이나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삶을 괴롭히는 많은 고민 잠시 덮망각한 것에 불과하다. 매서운 북서풍다시 불면 이 추운 땅을 피해 남쪽으로 도망가고 싶다 생각할지 모른다.


다만 오늘의 나는 길을 걷고,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과 평안을 느낀다. 아마 부시게 비추는 햇살 탓인지도 그도 아니라면 봄을 느끼는 사람들의 환한 표정 탓인지도 모른다.


뜻하지 않은 부고가 일으킨 동요는 가라앉고, 기억은 망각되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아마도 그곳은 원래 있던 그 자리와는 아주 미세하게 비껴간 지점일 것이다. 소위 연륜이라고 하는, 무수히 작은  상처들이 만든 마음은 예전의 내 것과 다른 것처럼 말이다.




세상 반대편에 일어나는 전쟁을 보며 한결같이 말한다. 내가 그 나라 사람이고 우연히 그 나라 밖에 있었다면, '국경을 넘어 그 안으로 되돌갈 용기가 있을까?'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망자에게 우린 그렇게 말한다. 꼭 그랬어야만 하냐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린 그를 알 수 없는 울타리 밖에 있고, 그와 꼭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섣불리 말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 끝을 선택하기보다, 지겹도록 투덜대며 모두를 향해 푸념을 늘어놓으며 비겁하게 살.아.나.가.는  인간이기를 바란다.


나에게, 그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평온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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