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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Aug 26. 2019

너는 사랑스럽다.

예쁘지는 않은데, 사랑스러운지. 사랑스러워서 예쁜 건지.  

절반은 다이애너에게 주면 안 될까요? 

나눠주면 나머지 절반이 두 배는 더 맛있을 거예요. 

그 아이에게 줄 것이 생겨서 정말 기뻐요.


- 초록지붕 집의 빨강머리 앤 중에서 (1권)






이 구절은 빨강머리 앤 전체에 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캐러멜을 가져본 앤이 딱 하나를 입에 넣고 난 후에 하는 말이다. 앤에게 캐러멜을 사준 메슈를 째려보던 마릴라도 멈추어 앤을 바라볼 만큼 어른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그런 구절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살고 싶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이런 순수를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여담이지만 지금의 나는 마릴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앤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키우게 된 까닭일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소문난 앤 덕후다. 앤의 이름으로 출간된 거의 모든 책을 다 가지고 있고, 다 읽었다. 앤에 나오는 문장을 들으면 정확하지는 않아도 몇 권 어디쯤, 어느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도 안다. 그만큼 나는 앤을 반복해서 읽었고, 깊이 좋아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씨도 모르는 딸아이 용 앤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쯤 이야기하면 대부분 왜 앤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어떤 점이 제일 좋냐고 묻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대답도 준비되어있다. "사랑스럽잖아요."


물론 앤이 좋은 이유는 100가지 정도 댈 수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그거다. 사랑스러운 거.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 ost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페이지고 연결해 할 수 있지만,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아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쁘지 않은데 사랑스러운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도 소위 "못생긴 아이"중 하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애들은 뭐든 조금 더 쉽다는 말에 공감한다. (열등감 인지도 모름 주의보) 가령 예쁜 아이가 잘 웃으면 "미소천사"소리를 듣지만 못생긴 아이가 잘 웃으면 "그래 웃기라도 잘해야 50점은 간다."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고.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이 하나 틀린 게 없음을 살면서 여러 번 깨달았다. (물론 나 역시도 이왕이면 잘 생긴 남자 쪽으로 기울어졌음을 인정하는 바다. )



그런데 최근, 나는 예쁜 것과 사랑스러운 것에 대해 다시 깨닫는다.


내게는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후배가 하나 있다. 내 눈에는 너무 예쁜 이 녀석은 스스로를 종종 돼지라고 표현한다. 아무래도 사무실 여직원 중 제일 통통하다 보니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고, 워낙 털털한 탓에 남직원들의 장난에도 웃어넘기다 보니 본인이 진짜 통통한 줄 안다. 사실은 나를 포함한 다른 여직원들이 기아체험(?) 중인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이 녀석이 무척이나 예쁘고,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그래서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예뻐서 사랑스러운 것인지, 사랑스러워서 예쁜 것인지. 아무래도 나는 사랑스러워서 예쁘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예쁜 아이도 사랑 없이는 예쁜 눈으로 바라봐지지 않는다. 가령 엄청나게 예쁜 연쇄살인마가 보도된다고 치자. 일부는 그녀의 얼굴을 평가하겠지만 대부분은 "저 얼굴로 살인을!" 혹은 "얼굴이 예쁘면 뭐하냐. 마음이 악마인데." 등의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반면 마음이 예쁜 아이는 바라보다 보면 결국 그 아이의 얼굴과 몸짓까지 다 사랑스러워지게 된다. 차가운 미인보다 따뜻한 못난이가 더 오래도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아마 우리 모두가 경험에서 한 번쯤은 느낀 적이 있을 테다.






며칠 전 오랜만에 비공식적인 회식에 참석했다. 아이 엄마가 되다 보니 공식적 자리가 아니면 잘 가지 않았고, 자꾸 거절하다 보니 이제는 점점 부르지도 않던 일명 "번개 회식"에 간 것은 순전히 그 아이 때문이었다. 전날 맥주 한잔 먹고 싶었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같이 가자고 졸라대던 녀석. 메뉴도 장소도 내 기준으로 맞추어 준 녀석이 너무 예뻐서 못 이기는 척 그 자리에 갔다. 그리고 엄청 재미있게 놀았다.


사실 그 날, 그 녀석은 재미있게 놀지 못했다. 그 녀석의 옛 남자 친구(사내연애라고 쓰고 빌어먹을 민망함이라 읽는다.)가 갑작스럽게 자리했고 착해빠진 성품이다 보니 상대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미련이 남아서도, 다시 잘해보려고도 아닌, 그저 옛 남자 친구가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안쓰러워서. 딱 그 이유였다.


그 녀석은 연애를 할 때에도 그랬다. 자신이 더 어리고 더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늘 양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느라 정작 본인의 마음이 아픈지는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 눈에는 안쓰러운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였고, 많은 이의 빈축을 샀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 "옛 남자 친구"는 늘 욕을 먹어야 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녀석은 헤어진 이후에도 오래도록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헤어진 이후에도 상대방이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게 가슴이 아파서 힘들어했다. 정작 본인의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남의 마음을 보살펴주지 못해 아파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천성이었고, 그녀가 가진 최대의 매력인데도 옆에서 바라보는 나조차 "야 이 모지란 놈아!" 하고 소리를 질러대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녀를 몇 년 째보다 보니 그것은 천성이고,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었다.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이 나쁜 놈이었을 뿐, 그녀는 충분히 사랑스럽고,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아이였던 것이다. (다음에는 부디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를)


녀석은 여전히 본인이 가진 진짜 매력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본인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인지 말이다. 나는 자상하고 다정한 언니가 아니다 보니 직접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란다."라고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혹여나 그녀가 이 글을 본다면 간접적으로라도 본인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를 알게 되면 좋겠다.


자. 오늘부터 내가 빨강머리 앤에게 붙은 깊은 오명을 때 주려 한다. (더불어 이 녀석도.)

빨강머리 앤은 "예쁘지 않은"게 아니다. 본문에도 여러 번 나오지만 매우 예쁜 코와 흰 피부를 가졌다! (흰 피부가 주근깨가 더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이 어찌 놀림감인가!) 그리고 예쁘지 않은 아이가 사랑스럽기 어렵듯, 사랑스러운 아이가 예쁘지 않기도 어렵다. 오늘부터는 "주근깨 도드라진 빨간 머리 앤, 예쁘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워~"로 노래를 바꾸어 불러보기 바란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두고 긍정의 수식어만을 붙여보자. 분명 그 사람들이 더욱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게 될 것이다. 


내가 그 녀석에게 선물한 키홀더에 적어준 말처럼 그녀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그러니 본인도 본인의 귀함을 하루빨리 깨닫게 되기를, 본인이 얼마나 예쁜지를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혹시 이거 내 이야기인가, 하고 있다면. 그래 맞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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