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퇴사 목록 10화

마지막 화. 판넬 시공

by 안다훈



한여름이나 한겨울, 내가 일한 계절은 둘 중 하나였다. 대학생이 된 뒤에 방학에만 했으므로. 여름에는 아침 일찍 도착하면 느껴지는 선선함이, 겨울엔 오후의 따뜻한 햇빛과 해가 짧아서 집에 빨리 간다는 점이 좋았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일했던 스무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의 시간.









봉고 투인가 쓰리를 타고 여러 지역에 갔다. 모텔에서 며칠씩 자고 오고. 그러다 '조상님 업보' 운운하는 아저씨와 한방을 쓰고. 지인들 알바 시켜 주고. 어마어마한 냄새가 나는 돼지 농장에 친구와 가고. 살짝 아찔했지만 높은 지붕 위에 올라가 작업할 때를 좋아했다. 탁 트인 시야와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사람과 차. 렌탈(건설 현장에서 쓰는 탈것)을 운전하고, 피스를 박고, 판넬을 나르거나 함께 뒤집고. 바이스 플라이어를 물리고 줄을 당겨 판넬을 올릴 땐 손에 물집이 생겼지만 재밌었다. 현장에 도착하면 장비를 싹 내린 다음 드릴 배터리를 충전하고. 나사나 실리콘을 가져다 드리고. 사다리 안 흔들리게 잡고. 직사각형 모양의 스티로폼을 정리하거나 마대에 쓰레기를 모으고. 하루에 믹스 커피를 열 몇 잔씩 탔다. 나중엔 냄새만 맡아도 속이 안 좋아져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거의 못 마셨다.









어지간히 했으면 일이 늘어야 하는데, 그래야 한 사람 몫을 할 텐데 그대로였다. 겁이 많아서 그라인더 같은 장비를 다룰 수 없었고, 창피한 말이지만 불똥이 튈 때 깜짝 놀라서 멀찍이 떨어졌다. 정작 작업하는 사람은 맨살에 튀는 걸 맞아 가면서 했는데. 두어 번 하다가 시간만 버리고 잘 안 돼서 포기했다. 안전화만 신고 일하는 환경이라 그런지 다치는 사람이 많았다. 일터에 있을 때든 없을 때든 모두가 안전하기를 바랐지만 기어코 사고 소식이 들리면 심란했다. 아버지도 크게 다쳐서 입원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와 같이 일하시는 분은 손가락이 잘리셨는데 봉합이 잘 안 됐다. 여전히 일 하시며 얼마 전에 또 다치셨다고 들었다. 난 경사로를 오르는 트럭 뒤에 있다가 기다란 자재에 얼굴을 맞을 뻔한 적이 있다. 여하튼 구 년 동안 몸성히 지냈다.









판넬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일한 건 이천이십 년 사 월.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내가 다 나은 뒤에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들이 있다. 창고로 쓸 공간을 임대해 드리고 싶었다. 자재든 장비든 보관할 수 있게.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장비 욕심이 있는 편이셨는데... 전역했을 땐 캐드를 배울까 고민했다. 하다못해 내가 배운 디자인 툴로 명함을 만들어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수동 차량 운전 연수를 받아서 내가 차를 몰고 다녔더라면. 나중에야 내가 안 입는 옷을 작업복으로 입으셨으며, 그럴 때마다 자존심 상하셨다는 걸 알았다. 작업복이든 패딩이든 기왕이면 메이커로 자주 사 드렸다면. 안 쓰셨지만 방한 도구를 선물 드렸던 게 기억난다. 표현은 못 했지만 일할 때마다 도움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던 마음만은 선연하다.

부피가 크지만 가벼운 판넬 하나 제대로 못 들던 나였다. 일머리가 없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다. 그래도 꾸준히 일한 덕분에 열심히 일하는 자세가 몸에 배었다. 어딜 가나 성실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빈말로라도 일 잘한다는 말을 듣게 된 것도, 새삼스럽지만 아버지가 많이 배려해 주신 덕분이다. 내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 들을 아버지께 배웠다.









인스타그램: @anda.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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