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사랑해 보는 거야

by 연승

문제는 인간관계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사람을 통해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많은 상처를 얻기도 한다. 골수이식을 받은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주치의 교수님에게 복학하겠다고 말했다. 좀 더 늦어지면 너무 늦게 학교를 졸업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지만, 천천히 학교 수업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퉁퉁 부은 얼굴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고, 이식편대 숙주반응으로 피부가 완전히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감염에 취약해 마스크는 어딜 가든 항상 쓰고 다녔다.


군대를 전역한 뒤 학교에 복학했을 때 좋은 성적을 받아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성적은 항상 상위권에 있었다. 그런데 복학 후 나의 목표는 오로지 ‘졸업’이기 때문에, 성적보다 출석 일수를 채우는 게 중요했다. 복학 신청을 완료하고, 학과 사무실에 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매주 병원 외래가 있어서 학기당 채워야 하는 수업을 알 수 있을까요?” 마스크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내 상태는 누가 봐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조교의 답변은 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너 그렇게 하고 어떻게 학교 다니려고 하냐? 백혈병 다 낫고 오던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백혈병을 다 낫고 오란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 약만 먹고 며칠 푹 쉬면 낫는 감기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몇 개월 전 내가 구토 바구니를 끌어안고 자던 모습, 시간에 강박감이 생길 정도로 정해진 시간에 약을 챙겨 먹어야 했던 모습, 엄청난 통증과 중환자실에 누워 한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백혈병은 완치 판정을 받긴 하지만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병입니다. 그렇게 쉽게 낫는 병이라면 누구든 쉽게 털고 일어나겠죠. 복학해서 학교 다닐 수 있습니다.” 이후 나는 전과 신청을 비롯해 많은 차별을 느꼈지만, 그들의 손가락질을 다 받아내리란 결심을 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지언정, 패배하긴 싫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자신을 더 믿고 ‘용기’라는 말로 무장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모든 사람은 그렇게 태어난다. 그런데 무시당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자기 주관이 없으면 자존감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한번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건 굉장히 힘들다.


외적으로 망가진 나의 겉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전혀 보지 못했다. 이런 모습으로 남에게 사랑받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는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어딜 가든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면 ‘그때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자책했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존감이 내려갔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항상 화가 많았다. 옆에 있는 동생에게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냈다. 화를 실컷 내면 기분이 풀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에 적을 만들고, 그때 생긴 이미지는 어떻게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화를 낸다는 건 받은 상처를 상대방에게 그대로 주는 행위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자존감이 높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그런 사람은 누가 봐도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누구든 한 번쯤 바닥을 찍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왜냐고? 분명히 세상을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에는 이런 명언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싶으면 남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견뎌라.’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낮아진 자존감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것은 또 하나의 고난임에 분명하다. 물론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과 같은 고난 임도 충분히 알고 있다.


마음에 병이 생겼을 때 골든타임이 있다. 짧은 시간 내에 빨리 치료하지 못하면 정말 큰 흉터로 남게 된다. 우선 중심을 올바르게 잡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나를 물어봤다. 그들의 피드백이 좋았지만, 우선 내가 나를 칭찬하고, 챙기기 시작했다.


깊게 호흡하며 치료받던 모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고, 기계로부터 호흡을 해야만 했던 나는 지금 고통스러운 모든 감정을 병 안에 넣고 보이지 않는 선반에 보관하기로 했다. 가끔 생각하지 못한 시련 폭풍이 와서 선반에 올려놓은 병을 떨어뜨려 그때 감정이 다시 한번 괴로워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들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뒤를 돌아보고 위를 보고 앞을 본다. 뒤를 돌아보며 지나온 날을 깊이 반성하고 위를 보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앞을 보며 미래를 준비한다. 검색보다는 사색하는 것이다.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 때문에 나의 시선은 정말 엉뚱한 곳에 있었다.


이제부터 시선은 옆이 아닌 앞 한눈팔지 말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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