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다를 줄인 말로 ‘이생망’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듯 한 번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을 것이다. 나는 골수이식을 통해 완벽하게 죽고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 좋은 기회를 얻었다. 예전엔 큰 목표 없이 그냥 살아있기만 했다. 그래서 이번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생산적이고, 올바른 생활을 하기로 했다. 세상에 좋은 흔적들을 남기고, 한계를 뛰어넘어보는 성취감을 느끼며 성공하고 싶은 작은 목표가 생겼다. 아쉽게 끝나버린 첫 번째 삶의 목표는 간절한 목숨이었다면, 두 번째 삶은 간절한 성공이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새롭게 열린 길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다.
더 큰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 정도가 아니었다. 성공의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문을 열 용기가 없다. 긍정적인 자기 암시, 야망의 크기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좌절 속에서 아주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에 무릎 꿇지 않고, 오히려 보란 듯 멋지게 일어섰다. 극적인 변화는 믿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내가 병을 털고 일어서지 못한 것처럼 왕도를 찾으려 노력하기보다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는 걸 목표로 했다.
“형은 왜 책을 읽어요?” 학교 후배가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책을 한 두 권 더 읽는 편이었고, 어디를 가든 두 손에 책을 들고 다녔다. “내가 진짜 성공한다면 어떨까? 후배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성공한 사람들과 시대를 뛰어넘어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해”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내가 책을 읽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느 날 심리학 관련 책을 끝까지 읽고 덮었는데, 마지막 저자의 말에 ‘이 책은 나의 40년간 연구 기록을 바탕으로 쓰인 책입니다’라는 문구를 봤다. 나는 저자의 40년을 5시간으로 살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정말 책을 읽는 이유이다. 독서란 ‘시간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책 두권 읽은 사람이 한 권 읽은 사람을 지배한다.’라고 말했다. 링컨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버크셔 헤서웨이를 이끄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등 독서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시간의 소중함과 독서의 중요성을 알았을까? 나는 그 누구보다 병에 걸리기 전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소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냥 그저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성경 레위기엔 여러 가지 제사 방법이 등장한다. 그중에 번제는 제물 전체를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감사를 표현할 때, 헌신을 다짐할 때, 죄를 속할 때 실행한다. 번제는 가져온 제물을 직접 죽이면서 시작한다. 죽은 것이 확인되면 각을 뜨고, 남은 가죽만 제사장에게 준다. 그리고 전부 소각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을 통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한다. 나는 백혈병 선고를 받는 순간 죽은 몸이었다. 번제가 시작된 것이다. 각 뜨는 것은 내가 히크만 삽입, 조직검사, 골수검사 등 몸에 칼을 대는 것과 비슷했고, 불로 모든 것을 태우는 건 항암제를 통해 나의 모든 세포를 태우는 것과 비슷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욕망’이 있다. 잘 사용하면 득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살아야 한다는 욕망, 어떻게든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영원히 잊지 못할 백혈병 치료 과정, 나는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