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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Oct 20. 2022

“자기 발견을 위한 글쓰기”

글쓰는 디자이너, 오픈형 커뮤니티 ‘CORE’ 운영자  이진선 디렉터

1)이름 : 이진선
2)프로필  : 글 쓰는 디자이너이자 자기 발견 디렉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일과 전문성의 본질을 연구하며, 개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14년 동안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디자인으로 일해왔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커뮤니티형 교육 스타트업 한달어스를 공동 창업해 운영했으며, 현재 글로우 앤 베터에서 브랜드 리드로 근무하고 있다. 2020년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로 브런치 대상을 수상했다.
3)직업 : 글 쓰는 디자이너, 자기 발견 디렉터,  그로우앤베터 브랜드 리드, 오픈 커뮤니티 CORE 운영자
4)대표 저서 :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5)SNS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truth.zin/(1,542명)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truth.zin (1,4천 명)
-브런치 : https://brunch.co.kr/@jin-lab#info(6,599명)   




“자기 발견을 위한 글쓰기”

글 쓰는 디자이너, 오픈형 커뮤니티 ‘CORE’ 운영자 이진선 디렉터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디자이너와의 만남

프리랜서 기획자가 되기 전, 14년이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야말로 다양한 조직을 경험했다. 20대는 한 편의 일일드라마를 써 내려가듯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였다. 알만한 사람이라면 알음알음 알지도 모를 이북 전문 업체의 콘텐츠 MD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이북 업체가 대대적으로 사업을 접는 상황에서 강제 퇴사를 당하며 종료됐다. 이북 전문 업체를 통해 알게 된 도서 요약 전문 업체 편집팀으로 이직해 경력을 쌓던 중, 학과 교수 님의 적극 권유로 문학 전문 출판사 산하의 복합문화공간 운영팀으로 전직하게 되었다. 이십 대가 끝나갈 무렵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하고 싶어 큰마음을 먹고 퇴사했다. 당시 활발히 활동 중인 인터넷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한 작가 님의 소개로 ‘드라마의 원전이 되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신생 제작사 내 퍼블리싱팀 PD로 이직한 것. 드라마 편성과 영화 제작이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콘텐츠 개발의 안목을 쌓던 중, 제작사의 인원/규모 감축으로 3개월 만에 출판팀이, 그다음에 영화와 드라마팀 순으로 공중분해되었다. 사수였던 출판팀장은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며 제작사의 협력사 중 한 곳이었던 출판사에 나를 추천했다. 편집팀의 막내 편집자로 총 4종의 책을 편집한 후 기획사로 이직한 것이 서른한 살이 되던 해였다.


이십 대는 그야말로 복잡다단했다. 나의 의지였기 보다는 타의적 상황 속에서 이전직을 거듭해왔기에. 당시에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경력을 쌓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주 불안감을 느꼈다. 중간중간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몇 달씩 쉬어간 적은 있었지만 결국 회사라는 조직으로 돌아간 건 생존하기 위해서였다. 돌이켜보니 이십 대를 다양한 매체를 경험하며 혼종의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경험은 트렌디한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는 ‘기획사’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크고 작은 도움이 되었다. 삼십 대의 8년을 오롯이 기획사에 올인하며 세  번의 조직문화를 경험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일관된 업으로 나의 커리어를 빌드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두 번째 기획사의 경험을 유독 잊지 못한 이유는 그곳에서 보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업무 내외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판단에서다. 수많은 PT에 참여해 제안서를 써본 경험, 클라이언트 업무 및 자회사 출간물을 다양하게 핸들링하며 장르도 성격도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는 모더레이터로서의 경험을 빌어 나는 진짜 ‘종이 매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시절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밑천이 되었고, 웬만한 신규 프로젝트에는 기죽지 않는 태도를 탑재하게 된 원천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성장’의 지분에는 함께 일했던 동료 디자이너인 H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수많은 프로젝트를 치러내며 뜨거운 동료애를 다진 사람이다. 디자인 역량도 뛰어났지만, 그를 존경하게 된 데는 사실 다른 이유가 크다. 일단 업무 온, 오프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무엇보다 3년 내내 퇴근 후 어학원을 다니며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퇴근 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게 이런 모습이었다. (개인사는 배제하고) 일단 업무와 회사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거나 동료 및 상사 험담은 필수였다. 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 시절을 소비하듯 보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도  ‘회사’ 모드가 잘 꺼지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발전기가 가동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회사 험담이 아닌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동료를 만났으니 그 경험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재 그는 그때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캐나다에 살고 있다. 결혼하면서 캐나다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매체 디자인을 본업으로, 현재 영상 및 웹 디자인 분야를 공부하며 착실히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글 잘 쓰는 디자이너라고?

이북/도서 요약 전문 업체 편집자, 출판사 산하 복합문화공간 운영팀, 퍼블리싱 기획 PD, 출판사 편집사, 편집 대행사(기획사)의 기획자… 수년 동안 나를 수식해온 호칭이다. 그나마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느껴지는 부분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곳에서 좀처럼 ‘책’과는 거리를 두지 않고 살았다는 점이다. 하다 못해 신규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는 순간에도 서점, 도서관을 밥 먹듯이 돌아다녔다. 기획자는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책’을 떼어놓고 살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매체 디자인을 주업으로 하면서도 좀처럼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기획자가 편집 작업을 위해 인디자인을 공부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이야 편집 및 영상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획자도, 콘텐츠를 자체 개발하여 자신의 디자인으로 제작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디자이너들도 많지만  초창기 시절에 만난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편집 툴을 다루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에 관심을 두는 디자이너 역시 손꼽을 정도였다. 그러니 책 읽기를 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을 잘 쓰는 디자이너’로 자기 정체성을 공고히 다져나가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디자이너'에 대한 고정된 사고를 전복시킨 하나의 사건이었다. 마치, 어느 날의 가벼운 맥주 타임에서 자기는 영어 공부를 디자인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외치던 H를 만났을 때의 느낌과도 같았다.(그는 내가 거쳐온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속 '자기 자신으로 살아요, 우리'라는 이진선 디렉터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크다. @류예지


이진선 디렉터를 알게 된 건, 2020년 브런치 대상작인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를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책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온 건 제목의 일부인 ‘사수가 없어도’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나 역시 세 번의 기획사 시절을 거쳤지만 ‘선배’라 부르고 싶은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선배를 선배로 모시지 못한 모난 성정 탓이 가장 컸지만, 현업에서 정작 힘이 된 존재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비슷한 직급의 ‘동료’나 ‘후배’였다. 얕은 꼼수를 부리지 않고 진중한 태도로 묵묵히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깔끔하게 도움을 요구하고 최대한 결과물을 잘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필요할 때면 야근을 불사하지만 때가 되면 군말 없이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개인 정비에 힘쓰던 사람들 말이다.


공을 가로채는 데 능숙한 사람들,  동료의 성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야근을 밥 먹듯 하지만 정작 성과는 없는 사람들, 추태에 가까운 막말을 일삼던 사람들은 대부분 ‘선배’ 영역에 있던 사람이었다. 회사라는 조직을 나오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더 이상 좋은 (선배) 기획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어느 분야에서건 ‘후배’가 되는 일을 자처했다. 다양한 영역에서 선배를 찾았다. 현업에서 종사하는 친구와 동료들을 '인생 선배', 책을 쓰며 만난 사람들을 '글쓰기 선배', 관심사로 얽힌 사람들을 기꺼이 ‘선생님’으로 불렀다. 수업 시간에는 '진선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선생님'으로 불렀던 이진선 디렉터를 디자이너도 작가도 아닌 ‘디렉터’로 부르게 된 건 그의 수업을 듣고 난 다음이었다.


2020년에 선정된 브런치 프로젝트 대상작 중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는 -적어도 내게는- 가장 주목할만한  ‘키워드’를 가진 책이었다. 서울국제도서전과 북 마켓 이후 무기력의 정점을 찍었던 지난 6월,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 꽤 오래 담겨 있었던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를 결제했다. 무기력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책의 어떤 부분에 나는 그렇게 끌렸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구하고 싶어서였다.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는 ‘태초 이래 완벽한 사수는 없었나니, 가장 좋은 멘토는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면서 시작하는 책이다. 아무것도 몰라 모니터만 응시하는 신입에게도, 퇴사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성과 내기 급급한 관리자에게도 일을 가르쳐 줄 사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조직 안에서는 주니어 기획자를 넘어 시니어 기획자로 나름 단단하게 성장한 후 보무당당하게 프리랜서를 선언했다고 자부했지만, 그 자부심이 자만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조직 밖에서 나는 나를 브랜딩 하는 일에서만큼은 ‘주니어급’이나 다름없었기에.


이진선 디렉터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내실을 다져온 일 잘하는 디자이너, 연봉 1억까지 달성한 프리랜서… 정작 내 눈에 들어온 부분은 이거였다. '원래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글 쓰는 디자이너'라는 부분이다. 이진선 디렉터는 '글쓰기'를 자신의 본업인 디자이너가 가진 브랜딩 도구로 삼아 2019년 일터에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해 2020년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로 제8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2020년엔 커뮤니티형 교육 스타트업인 ‘한달어스’를 공동 창업해 코로나19로 대면의 기회가 사라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자기 발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셀프 커리어 브랜딩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코칭법을 공유했다. 현재 그는 실전 중심 교육 서비스인 ‘그로우앤베터’의 브랜딩 리드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실무자 역량 강화를 돕는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책에는 이렇듯 일 잘하는 디자이너 → 연봉 1억 프리랜서 → 교육 스타트업 창업가 → 자기 발견 디렉터 등으로 불리며 자신의 커리어를 단단히 쌓아온 이진선 디렉터가 일터에서 직접 부딪히고 깨지며 얻은 교훈과 자기 성장의 비결이 아낌없이 담겨 있다.


코로나 19가 터지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이의 ‘단절감’ 속에서 2여 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SNS상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바로 ‘리추얼’, ‘자기 발견’이었다. 무너진 일상, 회복이 요원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가다듬고 어떻게든 바로 세우는 방법에 몰두했다. 삶을 변화시키는 원대한 계획보다는 ‘미라클 모닝’, ‘필사 하기’, ‘하루에 물 2L 마시기’ 등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소소한 루틴을 실천하는 분위기로 사람들은 '자기 발견'의 길을 적극 모색했다. 나는 그러한 흐름에 편승하지 못했다. 일단 그 시기는 글을 쓰느라 바빴고,  책을  출간하는 일에 집중하느라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첫 번째 에세이집을 거쳐 두 번째 에세이집을 출간했지만, 독자/외부 매체의 피드백은 점점 더 줄어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며 깊은 산중에서 ‘야호’를 외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단절되었음을 인지하면서 사람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각도로 세상과 연결되는 소소한 시도들을 이어온 배경이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그런 자기 발견과 성찰의 시간이 '이제쯤'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책을 읽고 난 다음, 이진선 디렉터와의 접점을 금세 찾았다. 7월 말, 직장인을 위한 교육 플랫폼을 운영 중인 러닝스푼즈에서 커리어 브랜딩을 돕는 오프라인 강좌를 열게 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 내 기준, 적지 않은 수강료였지만 단번에 수업 신청을 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주니어는 아니지만 커리어 브랜딩엔 초짜라서

<스타트업 주니어를 위한 커리어 성장 셀프 브랜딩 글쓰기> 수업 첫날.  긴 강의명에서 스스로 어느 단어에 방점을 찍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류예지


7월 말에 시작해 8월 말까지 총 4주에 걸쳐 진행된 이진선 디렉터의 수업은 바로 <스타트업 주니어를 위한 커리어 성장 셀프 브랜딩 글쓰기>였다. 그가 말한 ‘스타트업 주니어’라 함은 말 그대로 ‘스타트업 신’의 사회 초년생 중에서 이/전직을 꿈꾸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여니, 업직종을 불문하고 다수의 시니어들이 속해 있긴 했지만. ‘글을 쓰는 디자이너이자 자기 발견 디렉터’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는 그는 ‘온라인 플랫폼’에 자신의 전문 분야인 셀프 브랜딩/커리어 브랜딩에 대한 자료를 아카이빙하는 일을 주요 브랜딩 도구로 삼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 이르기 위해 맨 처음으로 선행된 과제는 책에도 언급된 것처럼 자기 성장을 책임지는 ‘의식적 연습’을 진행하는 일이었고, 나를 포함한 10여 명의 수강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수업에 임했다.


이진선 디렉터가 만든 수업 자료들. 한 권의 책으로 느껴질 정도로 묵직하다. @류예지


수업 초반에는 자기 발견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가지며, 책에도 언급된  전문가로서 가져야 할 여섯 가지 역량의 기둥(태도, 지식, 리더십, 기술, 사고력, 커뮤니케이션)을 세워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고백하자면, 이 시기에 심리적 저항감이 상당히 컸다. 셀프/커리어 브랜딩이 결국에는 자기를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인생을 변화시킨 핵심 전환점, 업무의 역량 수준, 강점과 약점, 두드러지는 성향, 14년 동안의 커리어를 한 호흡에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저항감은 스스로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개인사를 처음 만난 수강생들과 문서화된 형태로 (이진선 디렉터가 운영하는) 오픈형 커뮤니티 채널인 Core에 공유하는 일도 한몫했다. 그것은 산발적으로 흩어진 생각들을 '이성적'으로 긁어모아 집약시키는 하나의 과정이었는데, 그간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 '감성적' 사고를 주로 단련하는 데만 치중한 터라, 나의 커리어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일에 대한 심리적 부침이었다.


내향적인 성향도 한 몫했다. 커뮤니티 플랫폼에 적응하기 무섭게,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 개인사부터 공유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고되게 느껴져 수업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과제를 업로드하곤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기 발견의 과정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연차, 종사하는 분야, 평소 관심사를 훌쩍 초월한다는 . 주니어는 주니어라서, 시니어는 시니어라서, 이직자는 이직자라서, 전직자는 전직자라서, 글을 처음 써보는 사람은 이런 글을 처음 써보는 사람이라서, 나처럼 글쓰기와 밀접한 연관을 지으며 살아왔던 사람은 단 한 번도 써보지 않는 사고의 근육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서 감당해야 할 저항감이 있음을,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환기되는 감정이 이러한 저항감을 불시에 누그러뜨렸다. 일요일 아침 10시라는 시간, 집에서 물리적으로 먼 강남이라는 지역, 글쓰기 전공자로 이루어지지 않은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난 경험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큰 자극제가 되었다. 해당 수업에는 스타트업 씬에서 일하는 UX, CX, BX 디자이너, 부동산 마케터로 전직을 꿈꾸는 구직자, 도서관 관리자, 영어 교육 종사자, 대기업 기업문화 담당자 등 평소 만나보기 힘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께 했다.  4주 동안 주 1회, 두 시간 반 가까이 펼쳐지는 이론 수업과 페이퍼 툴킷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실습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두 시간 수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금세 흘러가버리곤 했다. 저마다 다른 분야에 종사한다차이점은 분명 존재했지만, 자신의 업을 어떻게든 잘 정돈해서 세상 밖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공통점이 '초짜 브랜더'로써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전략이요? 저한테 그런 거 없는데요….

이진선 디렉터의 커리어 브랜딩 수업을 들으면서 늘 가슴 아프게 깨달은 사실은 이거였다. ‘전략전무(戰略全無)’. 나는 전략 없는 작가이자 프리랜서 기획자라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 수업을 끝내고 돌아온 어느 날, 남편을 붙잡고 이런 하소연을 했다.  “있잖아. 난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썼던 것 같아.”하고. 남편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당신만큼 좋은 글을 쓰는 작가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지만, 이어진 설명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나의 글은 누구도 고려하지 않은 그저 나를 만족시킨 글에 가까웠던 게 아닌가 싶다고.  그때그때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나다운 언어로 글을 썼지만, 그것은 어쩌면 출판 시장도 독자조차도 고려하지 않은 주제의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 글의 가치를 알아봐 준 고마운 출판사, 작은 작가의 활동을 응원해준 소수의 독자들의 기대 속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결과물을 내놓은 사실은 변함없지만, 세상에 그런 노력 없이 탄생한 책이 어디 있을까?


퍼스널 브랜딩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바로 지식 자산, 감성 자산 그리고 고객 자산이다. 디자인 실력과 책을 읽고 쓰는 능력은 지식 자산에 속한다. 지식 자산만을 가지고 쓴 글은 이성적이면서 전문적이지만 동시에 건조하면서 딱딱하다. 나는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나’라는 작가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 성향과 삶의 태도가 드러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즉 ‘감성 자산’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식 자산과 감성 자산을 모두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이야기에 주제를 담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숨기고 싶은 내 약점과 핸디캡까지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 스토리 리텔링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꾸미는 세 가지 자산’,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p.190-191 중에서



이진선 디렉터가 내세운 ‘전략’은 글쓰기 방법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열심히 썼다면,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널리 알릴 전략적인 채널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브랜딩을 위한 ‘글쓰기’ 수업이 주요 핵심이었기에, 자신의 글이 어느 채널과 매체에서 소비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서치 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변했다. 브랜딩의 핵심인 경력을 일목요연하게 톺아보면서, 연결감을 갖는 저마다의 방법을 찾는 일... 그러기 위해서는 커리어 브랜딩의 핵심인 ‘자기 발견’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자신이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 과정을 생략한 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해낼 길이 없다는 것, 하나의 브랜드로써 사람을 ‘설득’시키기는 요원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강점을 발굴한 후, 그것을 '메타 인지'(자기 자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모니터링하는 능력) 차원에서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브랜딩 공부를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업의 가치, 남과는 다른 유일무이한 강점을 발견해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반대급부에서 자신의 ‘한계’까지도 겸허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


마지막 수업 날. 우리는 미래일기를 쓰고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류예지



이진선 디렉터의 브랜딩 수업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내가 되고 싶은 롤모델을 선정하고 그 롤모델에 대해 서치하거나 써보는 일'이었다. 그는 롤모델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지금 당장 나와 가까운 위치에서 자신만의 브랜딩을 공고하게 다져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주 먼 곳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로 자기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손에 잡힐 듯 지척의 가까움도, 지향점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머나멈도  ‘롤모델’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용기를 내 보라고도 조언했다.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궁금증을 호소해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내내, 빙빙 떠돌았던 목소리는 이거였다.


‘어떻게, 롤모델과 대화를 해보라는 거지? 나는 소속도 없을뿐더러,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수줍음은 또 얼마나 많고... 생각만 해도 너무나 쑥스러운 일이야.


수업 중엔 도무지 그럴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부터는 조금씩 달라지려고 노력했다. 당장 먼 곳의 인물로 롤모델을 특정하지 않고, 평소 관심사와 연결된 작은 브랜드와 브랜드를 이끄는 인물로 범위를 넓혀나간 것. 나와 어떤 식으로든 교직한 적이 있는 브랜드, 그렇지 않다면 관심에서 출발한 브랜드에 대한 연결감을 갖고 탐구하고 나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탐방하거나, 브랜드와 관련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자료를 얻기 위해 지역 기관들의 담당자와 컨택하는 일이 한동안 주를 이루었다. 기관 담당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었다. 거주 지역 콘텐츠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이 극히 드문데, 다음에 기관과 함께할 프로젝트가 있다면 작가 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더욱 큰 변화는 나중에 찾아왔다. 바로, 브랜드 대표들에게 DM을 보낸 후의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브랜드를 탐구자로서
브랜드 에세이를 쓰고 있는 류예지라고 합니다.
일전에 북토크가 끝나고 잠시 스몰토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부터 톺아보기 시작한 브랜드 에세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링크 주소와 함께 보내 드립니다.
브랜드 탐구를 통해 저를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지라
브랜드에 대한 탐구가 기대한 것보다 미진하게 진행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넓은 세상 속에서 이런 관점으로 브랜드를 탐구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북토크라는 직접적인 연결점이 생겨 DM을 보낸 곳도 있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작은 인연으로 연락을 받은 브랜드 관계자들은 대부분 즉각적으로 회신을 주었다. 무엇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든 말은 최근의 응답 속에 모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나의 브랜드 에세이를 ‘다정하고 깊은 기록’(라이프컬러링 유보라 대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도구로서 자신의 브랜드를 언급해주셔서 감사하다'(라이프컬러링 박유진 BX 디자이너),  '지속적으로 나만의 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바로 관심을 가져주시고 글로 남겨주시는 작가 님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서울수집 이경민 작가), '누가 내 삶을 이렇듯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감동스럽다'(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의 메시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진선 디렉터의 브랜딩 수업이 일으킨 작은 변화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세상 속’으로, ‘사람 속’으로 나를 이끈 일. 그토록 닿고 싶어 '밖'으로 향한 일이, 결국 누군가의 마음 '속'에 날아들어 조그만 인연의 씨앗을 심어준 일이다. 이것은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라는 한 권의 책, 그 책을 쓴 이진선 디렉터라는 하나의 브랜드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인연이라 해도 무방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찌는듯한 한여름의 더위를 뚫고 자기 발견을 위해 브랜딩 수업을 수강한 후, 책으로도 수업으로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해결하려고 노력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Cover-image : @류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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