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집’ 이경민 작가
1)이름 : 이경민
2)프로필 : 좋아하는 것들을 연구/기획/탐색/탐구하는 탐험가. 현재는 도시와 서울에 푹 빠져 있다. 잘 쓰는 글보다 오래가는 글을 선호한다.
3)직업 : 기획자, 인스타그램 ‘서울수집’ 운영자
4)대표 저서 및 기획 도서 : <아파트 답사기>, <철거풍경>, <남겨진 꿈의 나라>
5)SNS
- 인스타그램 : @seoul_soozip(3,402명)
- 브런치 : https://brunch.co.kr/@seoulsoozip (446명)
서울에 상경한 이후부터 쭉 나는 구로구 개봉동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푸르지오 아파트가 들어서 주소지조차 사라져 버린 ‘개봉본동 90-96호, 2층 뒤편 방’은 처음으로 시작한 자취 생활, 언니 두 명과 함께 독립해 나온 첫 보금자리의 주소다. 당시 몇 년째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동네의 다세대주택에 사는 일은 가슴 한편에 서늘한 불안을 품는 일이었다. 일단 동네 자체가 낡았다. 오래돼서 편해진 슈퍼며, 세탁소며, 만화방이 있었지만 치안이 불안정했고(사는 동안 다급하게 경찰을 불렀던 기억이 두 번 있다), 이웃 간 방음이 되지 않아 앞집에 살던 부부 싸움 소리를 뻔질나게 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싫었던 건, 3층에 살던 주인집에 한 달에 한 번 물세를 내는 일이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물세를 낼 때마다 만나야 하는 젊은 주인아줌마의 눈치가 보였다. 부모님이 살고 있는 본가와는 달리, 서울 자취방은 셋집이었기 때문일까. 전세, 월세의 개념을 떠나 ‘세 들어 사는’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그곳에서 수년 동안 겪은 암묵적인 불편함과 뭔지 모를 서러움이 나를 주인집 문 앞에만 서면 주눅 들게 했다.
-류예지, <내가 딛고 선 자리>, p.11-12
재개발 이슈가 있는 장소에 머물렀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근데 딱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대부분은 방치되어 있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지쳐 끝끝내 마무리가 흐지부지되었지만, 오류시장은 내부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가 아닌 주민들의 편의를 고려한 시설로 개발되기를 바라며 주민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하고, 오류시장 50주년을 기념해 이를 자축하고 공공 개발을 위한 시민추진 위원회 출범식 겸 국수 나눔 잔치를 하기도 했다. 또 지역에 있는 학교 풍물패와 함께 길놀이 행사도 했다. 이들이 이러한 시간을 보냄으로써 바라는 건 딱 하나였다. 오류동 주민들을 위한 개발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경민, <남겨진 꿈의 나라> 중 ‘우연이 마주친 오류 시장’, p.71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지역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돼요. 그게 서울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도시 혹은 시골 마을에 살더라도 내가 매일 보는 풍경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에 따라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그리고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알아야 자부심도 가질 수 있고, 제대로 비판적일 수도 있잖아요.
-이경민 작가 인터뷰, 매거진 <칸> 중에서
서울에 올라와 처음 살게 된 다세대주택은 대문 하나를 여러 세대가 함께 썼다. 그 골목엔 비슷한 형태의 집들이 수없이 많았다. 집 밖 골목길은 좁고도 좁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퀵 배송 일을 하던 반지하방 아저씨의 오토바이 엔진 소리, 뻔질나게 싸우던 2층 앞집 부부의 목소리가 가로막힌 벽을 뚫고 아무렇지 않게 흘러들어 왔다. 저녁 아홉 시 무렵이면,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를 본방 사수하겠다고 저 골목길부터 달려오던 큰언니의 총총거리는 구두굽 소리, 계단을 타고 올라오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소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류예지,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P. 111 중에서
Cover-Image : 오류시장 전경 @류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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