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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Oct 06. 2022

“세상과 연결되는 질문 던지기”

문화예술기획팀 ‘다단조’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

1)이름 : 김다은
2)프로필 : 문화예술기획자. 상상력과 예술적 실천으로 기반으로 전시, 출판, 공연, 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는 프로젝트 베이스의 문화예술 그룹인 ‘다단조’를 여혜진 디자이너와 이끌고 있다.
3)직업 : 문화예술기획자, 문화예술 그룹 ‘다단조’ 운영자
4)대표 기획 저서 : <자아, 예술가, 엄마>, <서울의 엄마들>, <자아, 예술가, 아빠>
5)SNS : 인스타그램 : @self.artist.motherhood (2,356명), 다단조 @daadaanjo (172명)




“세상과 연결되는 질문 던지기

질문하는 문화예술기획팀 ‘다단조’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



녹록지 않은 시간을 지나오다

2021년은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지만, 개인적으로 내게도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연초에 1인 출판사를 통해 첫 에세이집을 보무당당하게 출간했으나 책의 반응은 좀처럼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주변 예술가 친구들의 권유로 1월에 출간한 에세이집을 필모그래피 삼아 곧바로 예술인 인증을 신청했지만, 세 달 가까이 결과 통보가 오지 않아 그 해 상반기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지원금을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단 한 건도 신청하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수입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근근이 이어온 출판물 편집 작업은 그야말로 용돈 벌이 수준이라, 직장생활을 하며 벌어놓은 돈을 그야말로 ‘야금야금’ 탕진 중이었다. 더구나 하반기에 결혼을 계획 중이었던 나는, 그야말로 팬데믹 상황 속 ‘결혼식’ 준비라는 절벽 위 출렁다리를 출렁출렁 건너는 중이었다. 기획사를 퇴사한 후 1년 넘게 전업으로 글을 쓰며 ‘결혼’ 준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오던 나의 상황을 아주 잘 아는 가족과 친구들, 더러는 지인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간단한 안부에 제때 응답하는 일조차 커다란 스트레스로 여길 만큼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결혼 준비는 잘 돼가? 요즘은 뭘 쓰고 있어? 결혼을 해도 쭉 그 일을 할 거지?”


누구도 악의를 갖고 질문하지 않았지만, 온통 악의에 가득 찬 말로 들린 그런 질문들. 나는 가까운 이들이 전하는 나를 향한 ‘순수한 염려’마저도 ‘지나친 간섭’으로 느꼈다. 다행히 그들의 물심양면 도움과 응원 속에 결혼식을 무사히 끝냈다. 이후 모든 것을 저만치 던져두고 남해와 통영, 부산과 포항을 아우르는 신혼 여행길에 올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알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남쪽’을 유랑하듯 돌아다닌 그 시간이, 생기를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은 나의 마음을 차분히 돌아보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신혼여행지의 한 곳이었던 부산에서 총 세 곳의 책방을 들렀다. 한 곳은 중구에 자리한 주책공사였고, 또 다른 한 곳은 서구의 샵메이커즈였다(샵메이커즈는 2010년부터 운영해온 서구 장전동의 시즌을 최근 정리했고 새로운 장소에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구로 알려진 책방 주책공사는 첫 에세이집의 사인본을 입고하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다. 샵메이커즈는 독립출판으로 출간한 첫 인터뷰집의 지역 입고처를 찾던 중 인터뷰이로 참여한 지인의 권유로 입고를 하게 되었다. 두 곳 모두 오프라인 공간에서 따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기에, 너무도 오랜만에 가게 된 부산-신혼여행- 일정에 책방 방문을 끼워 넣게 되었다. (마지막은 부산 기장에 있는 아난티 힐튼 부산 내의 이터널저니. 그곳에 첫 에세이집이 입고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는데 재방문을 하고 싶을 만큼 공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좋은 에너지를 얻고 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안부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책’으로 받은 호의를 어떻게든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었고, 자주 갈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책방인 만큼, 이 기회에 느슨하게라도 연결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서점 대표 님들께 전하고 싶었다.


서구의 샵 메이커즈. <서울의 엄마들>을 이곳에서 구입했다. 중구의 주책공사. 이성갑 대표 님과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출입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류예지


부산 일정의 첫날에 방문한 주책공사는 다행히 이성갑 대표 님을 만나 어렵지 않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둘째 날 샵메이커즈는 구나연 대표 님의 부재로 아쉽게도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지만, 돌이켜봤을 때 신혼여행 선물이라고 밖에는 설명 안 되는 한 권의 책을 샵메이커즈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바로 <서울의 엄마들>이라는 제목의 인터뷰집. 이 책은 코로나19로 예측 불가능한 삶의 연속이었던 2020년, 서로 다른 삶에 놓인 시민, 여성 그리고 엄마로서 ‘서울’에 살아가고 있는 열 명의 주체들을 만난 기록을 담아낸 인터뷰집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몇 개월 만에 야 이 책을 펼쳤을 때 코로나 첫 해의 우여곡절이 2021년이 지나서야 나를 덮쳐왔고, 이처럼 내가 괴로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대’의 상황 탓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는 나처럼 ‘단절’ 속에서 ‘연결감’을 갖고 싶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사람

주책공사 → 샵메이커즈 → 이터널져니. 그곳에서 구입한 총 6권의 책과 이성갑 대표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 1권. 내 첫 에세이집도 선물처럼 한 권 끼어 있다. @류예지



<서울의 엄마들>을 세상에 선보인 사람은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다. 나는 그가 2019년에 출간된 <자아, 예술가, 엄마 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를 기획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구매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2019년 팩토리 2를 운영하며 기획하는 팩토리 콜렉티브로 활동하면서 이 책을 기획한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는 현재 여혜진 디자이너와 함께 문화예술기획팀인 ‘다단조’를 공동 대표로 이끌고 있다. 맨 첫 시작은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예술계에 ‘엄마 됨’이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여성 예술가를 만난 기록을  <자아, 예술가, 엄마>에 담아냈다. 그녀는 특히 어머니인 상태를 ‘Motherhood’로 칭하며, 엄마인 상태에 있는 예술가들이 삶 속에서 여성과 예술 그리고 각자의 ‘엄마 됨’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11명의 인터뷰이와의 만남을 통해 조망한다.


<자아, 예술가, 엄마>에는 한국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가 전미래, 전유진, 추미림,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한국 큐레이터 조은비, 덴마크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가 헤셀홀트 & 마일방, 레아 굴디테 헤스티룬, 코펜하겐의 미술관 니콜라이 쿤스탈의 디렉터인 헬렌 뉘복 베이,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되어 현재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 앤소피 샌달, 헝가리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실라 클레냔스키, 이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면서 느낀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의 예술과 엄마 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짧은 코멘트로 수록되어 있다.(최근 개정판으로 출간한 이 책의 5쇄에는 김다은 기획자의 에세이가 추가로 수록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작과의 연결성을 짐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입한 <서울의 엄마들>을  ‘부산’의 샵메이커즈에서 구매했다는 사실이 주는 환기의 감정이 있었다. 일시적이긴 하나, 방금 떠나온 서울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아, 예술가, 엄마>가 ‘엄마가 되어 예술계로 복귀하면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과 주변에 대한 궁금증을 발단’으로 시작되었다면, <서울의 엄마들>은 조금 더 ‘엄마’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남다르게 와닿았다. 팬데믹 시대에 미혼에서 기혼이 되었고 임신, 출산의 가능성을 내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반 예술가, 가임기 여성, 서울 시민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늦은 나이의 결혼이었고 아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내 곁에는 아이를 낳아 전투적으로 육아 중인 친구 같은 언니, 워킹맘으로 고군분투 중이거나 임신 상태에서 열일하는 동지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했기에 2020년 코로나 19 시대 속, 서울을 살아가는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진 여성이자, 시민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서울의 엄마들>의 경험담은,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그다지 멀지 않게 느껴졌다.


<서울의 엄마들>은 인트로를 포함해 총 8개의 카테고리로 서울에 살아가는 여성이자 엄마로서 겪어온/겪어갈 개인적/사회적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을 읽으며 기획사에서 사외보 매거진을 만들 때, 매호 가장 힘들게 준비했던 인터뷰 코너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인터뷰어로서 내가 만나야 할 인터뷰이들을 위해 ‘정확한’ 질문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느낀 바를 내 것으로 체화해 기사로 만들어내는 일이 좋았다. 그 과정을 거치며 삶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을 배우며 성장 중이라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만큼 힘들기도 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평소 인터뷰집이 가져야 할 ‘질문’의 덕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뷰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인터뷰어의 '질문'이기에,  인터뷰이에 대한 명확한 질문이 선행될수록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구성적인 측면에서) 참여한 인터뷰이들의 대답들이 익명으로 기술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하나의 맥락을 띤 '목소리'로 들리게 했다는 점이다. 인트로에 배치한 이름 없이 오로지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인터뷰이들의 화보는 황예지 작가가 진행했는데,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개별적 존재인 동시에 유기적인 연결 선상에 있는 하나의 뭉뚱그려진 '인물'처럼 보였다. 나이와 직업이 달랐지만, 서울에 사는 ‘엄마’라는 공통점만으로도 10인의 인터뷰이가 내놓은 '자신이 딛고 선 세상'에 대해 답변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나 역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이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미혼의 시기를 거쳐 기혼자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결혼 후 스스로를 절반의 예술가로 칭하며 살다 보니, 으레 겪게 되는 문제들이 있었다. ‘양육과 돌봄’, ‘여성으로서 엄마 바라보기’, ‘나이 듦의 문제’,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 ‘기후 위기와 환경에 대한 생각’, ‘코로나 시국 속 불안정한 일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시대, 세대, 지역, 공간을 가르지 않고 고스란히 관통하는 ‘질문’은 어느 것 하나 나와 유리된 문제가 없었다.  그리하여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서울의 엄마들>의 목소리는 마치 창작을 위해 자발적 고립을 자처했지만, 그 누구보다 세상과 연결감을 갖고 싶었던 나의 마음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서울의 엄마들>을 읽고 느낀 부분을 필사한 저녁. SNS에 짧게 리뷰를 게재했고, 얼마 후 김다은 기획자로부터 자신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하다는 댓글을 받았다. @류예지



질문을 하게 만드는 브랜드의 힘

이번 칼럼을 쓰면서 구입한 <자아, 예술가, 엄마>.  엄마 됨의 분투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국적과 나이, 예술가 비예술가를 구분하지 않고 일어난다. @류예지


김다은 기획자는 2018년 초 아기를 낳고, 곧바로 ‘엄마’와 ‘문화예술기획자’라는 두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 가정에서 자연적으로 ‘여자-엄마-아내’가 되었으며, 동시에 ‘시민-사회 구성원-문화예술기획자’로서 자아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예술가가 된 셈이다. 그는 두 역할을 균형감 있게 유지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하고 싶지 않은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야 했을 것이다.  엄마-육아의 상태에서 얻는 행복이 컸음은 분명했을 테지만, 자아실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뒤 따르는 일(리서치-기획-프로젝트)의 희생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이므로. 수많은 엄마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때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예술가인 남편과 공동으로 육아를 했음에도 각자의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고, 주어진 24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계획대로 흘러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는 김다은 기획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엄마-기획자이자 엄마-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여성,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자신 안의 질문들이 아마, <자아, 예술가, 엄마>라는 책을 거쳐 <서울의 엄마들>이라는 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상태 및 현재 삶의 위치를 계속해서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입을 꼭 다물고 이 힘든 코로나 19 시기를 견뎠던 이유는 우리 안에 무언가를 잘 참아내는 인내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그걸 인류애라고 간단히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질문을 먼저 ‘입 밖으로’ 꺼내게 해 준 ‘질문자’가 부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로서 삶이 시작되면서 예술계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엄마 됨을 마주할 기회가 극히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상태와 예술의 틈에서 자주 외로웠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찾아 공감하고 연대하고 싶었다.   예술계 안에서의 엄마 됨은 어떤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의 외로움과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김다은 기획자 코멘트, <자아, 예술가, 엄마> p.35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짐과 동시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또 출산 전에는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싶다. 이런 것을 표현하고 싶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사회 혹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사람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예술이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이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추미림 작가 인터뷰, <자아, 예술가, 엄마> ‘선택한 삶 속의 빛나는 순간들’ 중에서, p63


아이들과 계속 집에 있으면서 동시에 일도 해야 하는 전쟁 같은 한 해였다. 한동안 거실 테이블에서 아이들과 다 같이 공동생활을 했는데, 온라인 미팅도 해야 해서 집 안에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거의 창고처럼 쓰이던 남편의 작은 서재를 정리했다. 원래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방이었는데, 다 버리고 내 것들로 채웠다. 예쁘지 않고 크기도 작지만, 그곳에선 내가 안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고 애들 밥과 섞인 뒤죽박죽 속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19 덕분에 내 개인 공간이 생긴 셈이다.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여성인 나에게 ‘자기만의 방’이 생긴 거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나의 책상’이 없다가 집에서 처음 내 책상에 앉는 순간, 버지니아 울프가 왜 그런 책을 썼는지 공감이 갔다. ‘이제 여기는 엄마가 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아이들에게도 심어졌다. 노트북을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되는, 내 생각을 오롯이 펼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올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인터뷰이 미상, <서울의 엄마들>  ‘2020년을 응시하다’ 중에서, p.63


시의적절하게 질문을 건네는 위치에 자신이 서있을 수 있었던 데는 김다은 기획자 역시 그 ‘문제’ 안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어서였다. ‘예술가-여성’이자 ‘서울-여성’의 현실에 밀착해 있다 보니, 그로 하여금 ‘질문’이 차오르게 된 것.  그의 질문을 빌어  <자아, 예술가, 엄마> 속 추미림 작가는 엄마가 되면서 세상을 향한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고, <서울의 엄마들>  속 미상의 인터뷰이는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전쟁 같은 한 해를 보내면서 비로소 자기만의 ‘방’을 만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의 브랜드가 지속성을 갖고 ‘시대를 향한 필요한 질문’을 해나갈 때,  단절된 세상과의 점접을 만들어내고 송곳처럼 뚫고 나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질문을 잃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좌. 작은 방을 '작업실'로 만든 기념. 우. 작업실에서 맨 처음 읽은 <버지니아 울프 단편 소설 전집>.  ‘자기만의 방’에 대한 인터뷰이의 답변이 준 영향이 컸다. @류예지


2020년, 회사를 나온 나는 스스로에게 프리랜서 출판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이후 나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자칭 반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단절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지만, 코로나의 위세가 꺾이지 않은 시대적 상황 속에 타의적으로 단절감을 느꼈을 때의 무력감은 꽤나 심했고, 그 후유증은 오래갔다.


때때로 후회했다. 주어진 공동의 미션을 수행하는 일에 헌신하던 회사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프리랜서는 그랬다. 명확한 미션이랄 게 없이,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를 수행하며, 누구도 던지지 않는 질문에 대비해 미리 답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회사로 ‘돌아갈 이유’는 수백 개였지만, 나는 단 하나의 이유로 돌아가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나만의 고유한 브랜드로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고 싶었다는 것. 나는 여태 그 선택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다.


삶에 대한 ‘질문’을 잃어버리면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대는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무력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건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가 이끄는 다단조가  ‘알지도 못하는 기획자의 제안인 데다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음에도(28p, <서울의 엄마들>)’ 10명의 ‘서울 엄마’들을 설득해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일 수 있게 한 프로젝트는 놀라운 하나의 ‘사건’으로 봐도 무방하다.  ‘엄마이자 동시에 예술가인 상태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 됨은  새로운 힘을 발현한다. 특히나 이 여정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렇다.(p.89, <자아, 예술가, 엄마>)’를 통해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줌으로써 10명의 예술가들이 기꺼이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게 한 일 역시도.  이는 다단조가 건네는 ‘질문’이 그들의 ‘현재’와 ‘상태’를 돌아볼 수 있게끔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들이 ‘팬데믹’이라는 견고한 성 밖으로 그들을 끌어내 주었음은 물론, 나와 같은 절반의 예술가이자, 기혼 여성이자, 서울 시민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소비자이자 독자)에게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끊임없이 삶을 향한 질문을 던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2년 3월,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의 다단조는 <자아, 예술가, 아빠 Selfhood, Artisthood, Fatherhood>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 이 결과물 역시  ‘계속해서 이어가야 할 예술가-엄마 됨/아빠 됨의 ‘상태’를 점검하는 질문’의 연장선상이다. 그들이 ‘예술’의 영역에 발을 담근 이들과 혹은 그렇지 못한 이들까지 두루 아우르며 언제까지 질문 공세를 퍼부을지는 알 수 없지만, 까딱하다간 깜박할지도 모를, 소중한 당신의 상태를 점검해주는 ‘질문’에 답변을, 부디  '질문하는' 문화예술기획팀 다단조를 통해 한 번쯤 깊이 있게 짚고 넘어가 보길 바란다.




Cover-Image : <서울의 엄마들> 표지 @류예지

최신 근황

- 이데일리 :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59526625667240&mediaCodeNo=257&OutLnkChk=Y

- 매거진 포포  : https://youtu.be/IxEqaCReY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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