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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Oct 03. 2022

“변함 없는 장소로 존재하기”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유희경 시인

“세상 단 하나의 장소로 존재하기”

1)이름 : 유희경
2)프로필  :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으로 등단했고, 문학과지성사와 위즈덤하우스에서 10년 넘게 문학 편집자로 일했다. 2016년부터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 운영 중. 2016년 신촌에 문을 연 위트 앤 시니컬은 2022년 현재, 혜화동 로터리 앞 동양서림 2층에서 혜화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3)직업 : 시인,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서점지기
4)대표 저서 :  시집 <오늘 아침 단어>,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당신의 자리, 나무로 자라는 방법>, <이다음  봄에 우리는>, 산문집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5)SNS : 인스타그램 : @witncynical (1.9만 명),
블로그 : https://blog.naver.com/witncynical

“세상 단 하나의 장소로 존재하기”

“변함 없는 장소로 존재하기”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유희경 시인



지나온 한 시절을 떠올리다

2015년부터 2017년에 걸쳐 출판사 론칭을 준비 중인 업력 10년 편집 대행사의 기획팀 과장으로 일했다. 기획팀 직속 사수였던 대표 님은 주요 업무로써 클라이언트 잡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출판 브랜드를 통해 자체적으로 책을 출판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6년 여름,  기획사는 신촌 기찻길 앞에 문을 연 ‘서점’과 브랜딩 협업을 진행하게 된다. 아마 그때가 회사가 자체 출판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 출판업에 대한 감각을 다지는 ‘베타 테스트’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오래전부터 클라이언트를 위한 글이 아닌 내 글을 쓰거나 만지고 싶었다. 자체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인 회사의 목표가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길 바랐다. 만약 회사 자체 브랜드 내에서  발행될 출간물에 ‘필자’ 혹은 ‘기획 편집자’로 일할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그리 하리라 마음먹은 것은 그 바람의 연장선상이었다. 서점은 오픈과 동시에 그 해 내내 유니크한 정체성을 가진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는 동안 나를 포함한 회사 팀원들은  회사에서 수주한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성실히 수행하며, 회사가 새롭게 시도하는 출판사 신규 업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디자이너들은 서점 SNS 계정에 올라갈 포스터 한 장까지도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었다. 서점은 서점 그 자체가 가진 정체성 외에도 독자를 끌어들일 ‘시그니처’ 활동들을 수시로 기획했다. 대표적으로는 매월 낭독회를 열어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다. 대부분 평일 저녁에 진행되는 행사였지만, 바쁜 일정 틈틈이 시간을 내 서점 스태프를 자처하며 낭독회에 참여했다. 평일 밤, 믿을 수 없는 에너지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빈틈없이 좌석을 채우며 발산하는 공간에 함께 한다는 건,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는 내게도 적잖은 힘이 되었다.


그 시기를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글을 가만가만 낭독하는 작가들, 낭독하는 글을 가만가만 듣던 관객들이 숨죽여 한 곳을 응시하던 그때를. 2016년 여름부터 이듬해 2017년 여름, 네 번의 계절에 걸쳐 경험한 시간을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한다. ‘조건 없이 나의 일과 내가 속한 공간을 사랑한 시기였다고.’ 그랬기에 낮 동안 발을 잃은 유령처럼 부유하던 몸이, 낭독을 듣는 순간만큼은 기분 좋은 ‘중력’을 느끼듯 바닥에 가라앉았다고.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서 있게 해 준 서점의 이름은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있는,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었다. 그리고 내가 삼 년 가까이 애정을 갖고 다닌 기획사는 이제는 기획사 이름인 ‘디자인수다’보다 더 잘 알려진 ‘아침달’이다. 이제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출판사 아침달의 초기 멤버였다. (아침달은 2022년 10월 기준, 시집, 에세이, 앤솔로지를 포함 6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내가 참여한  아침달의 작업은 아침달의 첫 시집인 유희경 시인의 <당신의 자리, 나무가 자라는 방법>과 시화되는 모든 일상의 순간을 담은 시 잡지, <일상시화> vol. 0, 위트 앤 시니컬에서 기획한 낭독회에 참여한 황인찬, 신해욱, 박준 시인 등의 낭독 시집, 알라딘서점 및 인터파크 등과 진행했던 굿즈 프로젝트인 원고지 노트 시리즈  등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퇴사'를 하는 데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즈음 내적으로 크게 번아웃이 왔던 이유가 가장 컸다.  회사는 충실히 성장 중이었고, 수주하는 프로젝트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어느 날 급작스레 나는 ‘방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성장에 발맞추지 못하는 직원이 되어, 자꾸만 자꾸만 안이 아닌 ‘밖’으로 미끄러지며 끝없는 불안에 잠 못 이루는 몇 날 며칠을 보낸 후에야 깨달았다. 이러다가는 그토록 사랑한 내 일과 공간을,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마저 사랑할 수 없게 되겠구나, 하고.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성급히 ‘퇴사’로 결론지었던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다. 반년 넘게 휴식기를 가진 후, 이듬해 봄 독립출판으로 인터뷰집을 만들었고, 새로운 편집 대행사로 이직했다. 이직한 회사를 다시 나와 현재 한 권의 인터뷰집, 두 권의 에세이집을 낸 작가이자 프리랜서 기획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 시절이 잊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행복했고 동시에 불안했던 나의 한 시기가 고스란히 봉인된 채 ‘그곳에’ 묻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좌. 신촌역 시절의 낭독회 사진. 이날은 유진목 시인의 <연애의 책> 낭독회가 열린 날이었다. 우. 신촌/합정 시절에 자주 만났던 김상혁 시인이 선물한 사인본 시집 @류예지


세상 어딘가 하나쯤, 그중 하나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은 시인 유희경이 운영하는 시 전문 서점이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위즈덤하우스에서 오랫동안 문학 전문 편집자로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그는, 서점 오픈 당시 이미 문학계에서 2권의 시집을 출간한 주목받는 시인이었다. 그런 그가 출판사 퇴사와 함께 2016년 6월, 신촌 기찻길 역 앞에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이름의 서점을 열었다. 위트 앤 시니컬은 탄생 즉시 그야말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신촌점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그는 이듬해 합정점을 열게 된다. 2016년, 2017년 두 해에 걸쳐 신촌/합정 시절은 만개하듯 꽃을 피웠다. 그 시절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위트 앤 시니컬은 바로 이런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집’ 외에 다른 책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다시 말해 시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시집으로 채워진 시 전문 서점 말이다.


위트 앤 시니컬 신촌점에서 진행된 시 잡지 행사 <일상시화> day. 잡지 발간일에 맞춰 진행했고, 행사의 호스트로 자리를 지켰다. @류예지


누군가에게는 ‘시’ 하나만을 고집스럽게 내세운다는 것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위트 앤 시니컬의 시를 향한 ‘뚝심’은 시를 이미 잘 알았던/시를 아예 몰랐던/시를 읽지 않았던 독자들의 마음에 ‘시심’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신촌/합정 시절을 보냈던 위트 앤 시니컬은 2018년 12월 큰 변화를 감행한다. 바로 혜화동 로터리 앞에서 1952년부터 터를 잡고 운영 중인 동양 서림 2층으로 공간을 옮겨, 이른바 위트 앤 시니컬의 혜화 시절을 새롭게 연 것.  누군가에는 공간이 이동한다는 아쉬운 소식이었을 테지만, 변화한 공간과 이동한 장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되겠다는 마음. 그것이 지금까지도 ‘시집 전문 서점’이라는 단 하나의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며 위트 앤 시니컬만의 시절을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챙기고 어떤 것은 잊지 못하고 어떤 것은 애써 잊으며 혜화 시절을 맞이한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지만 단 하나 단단히 새겨두고 되새기는 것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되겠다는 처음의 다짐입니다. 언제든 찾아오셔서 시를 시집을 살펴봐주시길 바랍니다.

-위트 앤 시니컬, 혜화 시절_블로그 소개글 중에서


나에게 신촌/합정 시절의 위트 앤 시니컬은 ‘낭독회’가 주를 이루던 장소였다. 시인의 수업, 대관 행사가 간혹 진행되긴 했지만, 주로는 ‘시’만을 위한 오록 한 ‘낭독회’가 더 많았다. 사람들마다 시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시집 전문 서점에서 고집스럽게 ‘시’를 낭독하는 행사를 여는 시도를 (관계자를 넘어) 독자로서 ‘사랑’했다.


행사가 열릴 무렵, 유 시인은 그 공간의 주인장이자 서점지기 답게 누구보다 분주하게 서점을 활보했다. 낭독 전달이 용이하게끔 마이크와 스피커를 세심히 조정하고, 공들여 읽지 않으면 도무지 해석할 것이 막막한, 이른바 미지의 의미로 가득한 시어를 스크린 가득 띄웠다. 하이라이트는 그날의 낭독 시집을 배치하는 일이었다. 위트 앤 시니컬 신촌 시절의 시그니처 원목 평면 서가 가득, 한 폭의 ‘갤러리’처럼 시집을 전시했다. 행사 전후, 관객들은 시를 조망하는 갤러리처럼 그 평면 서가를 휘돌며 그날의 낭독 시집을 구매했다. 시집 판매는 낭독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행사 종료 후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나 역시 몇 권의 시집을 구매했는지 일일이 헤아려 보지 않았지만, 신촌/합정 시절을 거치며  그 해의 모든 시집을 위트 앤 시니컬에서 구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촌/합정 시절을 거쳐 혜화동으로 이전하면서 위트 앤 시니컬은 시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다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유튜브 채널 ‘위트 앤 시니컬 tv’은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온라인으로 '시'와의 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시 독자들을 위해  ‘온라인’ 시 공론장을 열었다. 오픈했다 하면 서둘러 마감되는 유료 낭독회,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시인을 초청해 진행하는 시 창작 강의는 서점 공간 한쪽에 마련된 '사가독서'에서 이루어진다. 공간과 시절의 변화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긴 했어도 매월 진행되는 기획 낭독회, 한 시인의 시집을 탐독해나가는 '사가독서 워크숍', 유명 시인들이 진행하는 '시_쓰기' 등은 여전한 그때와 변화된 지금을 떠올리게 하는 서점의 핵심 프로그램들이다. 여전히 시를 사랑하는 독자의 발길을 신촌을 지나 합정역을 거쳐, 이곳 혜화역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공간이 아닌, 이어지는 장소로 ‘서점’을 운영하는 일

유희경 시인과는 오랜 세월 교유 중인 김소연 시인이 최근 출간한 에세이집 <어금니 깨물기>에서 ‘공간’과 ‘장소’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장소는 유일하고 공간은 보편이다. 장소는 변화를 겪고 공간은 그대로다. 장소는 파괴되지 않지만 공간은 파괴될 수 있다.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져도 그곳에 깃든 이야기마저 소멸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장소는 언제까지나 건재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고 한 도 시가 파괴되어도, 재개발이 진행되어 한 지역이 송두리째 변해가도, 공간의 이미지만이 달라질 뿐 장소는 이야기를 꼭 붙들고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김소연 시인, <어금니 깨물기> ‘장소애’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초창기 시절의 위트 앤 시니컬을 떠올렸다. 물론 내가 어느 한 시점에 묻어버리고 떠나온 ‘봉인된 시간’마저도. 공간으로서 서점이 한 지역에 ‘부동’할수록 이점이 많다. 광화문에 갔을 때 자연스레 교보문고를 떠올리듯, 신촌을 갔을 때 우리는 위트 앤 시니컬을 갈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권리금과 월세를 감당하며 공간을 운영하는 동네 서점들의 뻔한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피치 못할 변수로 ‘이동’ 해야 하는 일은 비일비재한 이벤트일 것이다. 어쩌면 10%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이 아닌, 제 값 주고 단골 거점인 ‘동네서점’에서 기꺼이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에게 공간의 이동 유무는 그리 중요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한 시절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어준 ‘장소’에 대한 추억을 오래도록 공유하는 일일 테니까, 그 장소가 더는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버텨주는 일일 테니까.


신촌/합정 시절을 마무리 짓고 다시금 새롭게 단장한 위트 앤 시니컬을 가만가만 응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떠나온 길’을 반추하듯, 새로운 장소인 ‘혜화’에서 이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공간으로서 위트 앤 시니컬 신촌/합정 시절은 종료됐지만 장소로서 위트 앤 시니컬 신촌/합정 시절은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니까. 신촌, 합정 시절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는 아득한 추억이, 그 시절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풍문처럼 떠도는 하나의 브랜드 스토리가 되어 위트 앤 시니컬의 혜화 시절을 든든하게 받쳐줄 것이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업력 6년 차의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7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킨 동양서림과 공간을 함께 나누어 운영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 새 단장 후 혜화동 로터리 쪽으로 이전했다는 소식을 진작에 들었다. 지난 9월에야 혜화동을 찾아간 이유는, 한 시절이 저물고 나면 대부분 그 시절과 함께한 추억을 그 장소에 봉인하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떠나고 난 자리, 사라진 시절의 뒤통수에 대고 후회를 쏟아붓는 사람이 되었다. 기민하게 시절을 쫓아 신촌에서 합정으로, 다시 혜화로 이동하지 못했지만 너무 늦지 않게 나의 안부를 전하고 싶었고, 서점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위트 앤 시니컬 혜화를 방문한 날.  유희경 시인의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과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를 사랑하고>를 동양서림 매니저를 통해 구입했다. @류예지


운명의 장난인 건지, 서점에 방문한 날은 서점지기인 유희경 시인이 부재했다. 다소 한적한 1층의 동양서림을 통과해, 서점의 출입구인 나선형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삐그덕 삐그덕 올라가는 동안, 5년이라는 시간을 단번에 점프하는 듯한 '문'을 통과한 것만 같았다. 삐그덕 삐그덕, 왜 이제야 왔냐고 항변하는 계단의 울림이 없었다면, 아마 어린아이처럼 왈칵 눈물을 터뜨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의 문을 통과해 마주한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은, 장소와 나 사이에 뚫려 있던 거대한 공동(空洞)의 세월이 무색하게 기대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저 공간이 바뀌었을 뿐이구나, 나는 깊이 안도했다.


“100년 된 서점이 없는 게 아쉬웠는데, 동양서림과 함께 그런 100년 된 서점을 지향해 보고 싶어요.”

-아시아경제 인터뷰 중에서


동양서림은 혜화에서만  69년을 운영해온 서울에서도 가장 오래된 서점 중 한 곳이다. 서점이 문을 열 당시만 해도 70년 가까이 한 장소에서 서점을 운영하게 될 줄은 몰랐을 테고, 시집 서점과 공간을 나누며 '함께'가게 될지도 몰랐을 것이다. 한 자리에서, 하나의 가치만을 고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시대착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참히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변화’만을 뒤쫓아갈수록 하나의 브랜드가 가진, 브랜드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독자로서 서점이라는 공간에 기대하는 바는 늘 그랬다. 속도를 모르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무참히 깨지지 않은 부동의 ‘장소’로 존재해주기를. 위트 앤 시니컬이 오래된 전통성을 가진 동양서림과 어우러지듯 섞여 들고, 시대와 어긋나지 않는 시도를 거듭하며 어쩔 수 없이 닥쳐 드는 변화를 자신만의 속도로 감내하는 시집 서점으로서 기능한다면,  위트 앤 시니컬은 공간의 변동성에 더는 휘둘리지 않은 채 오래오래 혜화 시절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고.


한 곳에 머물러 맞이하는 입장이 되어서야 떠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세상 모든 장소가 그렇듯 떠나는 이들이 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거리가, 마음이 멀어져서. 불가피하게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 사람들은 돌아오기도 하고 여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여기 남아 있는 나는, 나의 서점은 그저 그들의 안녕을 궁금해하고 바라고 짐작할 뿐이며 어쩔 도리가 없으니 잘 있다가 그들이 돌아오면 환대를 해주어야겠다 다짐한다. 매일매일 다짐을 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이 자리에 있고 있을 것이다.

-‘단골, 떠남과 버팀’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p.116 중에서


그러니 부디, 위트 앤 시니컬이여! 다시는 지나온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지만, 여전히 시를 사랑하나 불가피한 저마다의 이유로 여태 돌아가지 못하는/일찍이 다녀가지 못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머물러 갈 수 있는 ‘장소’로, 세상 어딘가에서 '변함 없는' 가치를 전하는 단 하나의 시집 서점이라는 브랜드로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길.



최신 근황

-아시아경제 : https://view.asiae.co.kr/article/2020101513031179105


-연합뉴스 : https://www.yna.co.kr/view/AKR20181120068800005?input=1195m


-유튜브 : 위트 앤 시니컬 TV :  https://www.youtube.com/watch?v=zIfyKk4kaWw&list=PLqLF45kUNsAx5YNe8IMk-g9DD53izaP-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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