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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Sep 26. 2022

“혼자가 아닌 함께 길을 모색하기”

지역 출판사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

 


1)이름 : 박대우
2)프로필  : 2006년부터 황해문화, 개마고원, 창비 등에서 13년간 인문서를 만들어왔다. 2017년 7월부터  고성 아야진에 정착해 1인 출판사 온다프레스를 설립, 현재까지 총 12종의 책을 출간했다.
3)직업 : 출판사 ‘온다프레스’  대표
4)주목 도서 :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 <동쪽의 밥상> 등
5)공식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ondapress
6)인스타그램 : 온다프레스 https://www.instagram.com/onda_press/(1,746명의 팔로워)






“혼자가 아닌 함께 길을 모색하기”

지역 출판사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



지역의 거점 서점/책방을 방문하는 이유

2020년 연말, 1박 2일로 속초와 양양에 다녀왔다. 강원도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그리워질 때면 큰 계획 없이도 이따금 떠나는 곳인데, 코로나 발발로 내내 두문불출해온 나는 그 해가 저물기 전 어떻게든 콧바람을 쐬겠다며 뒤늦은 여행길에 올랐다. 둘째 날은 낙산사와 하조대를, 첫째 날은 ‘속초 동아서점’의 여정을 느슨하게 계획했고, 오후 4시가 가까워올 무렵 동아서점 정문 앞에 도착했다.


언제부터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특정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거점 서점을 한두 군데씩 알아보고 방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지역 서점은 동네 책방처럼 자주 방문하고 얼굴 도장을 찍기가 어려우니만큼, 어떻게 해서든 관계자와(대표님이든, 매니저분이든, 점원 분이든) 인사를 나누고, 가능하면 해당 지역의 특색이 묻어난 책을 구매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독립출판으로 인터뷰집을 출간하고, 그 책을 입고하기 위해 전국의 책방과 컨택하고 유통을 한 경험 덕분이다. 만약 그러한 경험이 부재했다면 나는 특정 지역에 갔을 때 지역 서점/책방을 찾아가는 일정을 특별히 계획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성 출판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할 기회를  갖기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후, 지역 서점/책방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출판사와 책 계약을 하게 되며 전국의 책방에 신간이 입고되는 경험이 추가적으로 쌓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책이 실제로 입고되건 그렇지 않건, 지역에서 자립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해나가는 ‘서점/책방’에 대한 애정이 점점 더 커져갔다.


첫날은 속초가 목적지였던만큼 동아서점을 필수 여행 코스로 점찍어 두었다. 속초 동아서점이 어떤 곳인가? 1965년에 문을 연 이례로 무려 3대째 운영 중인 유서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점이다. 현재 3대 김영건 대표가 운영을 맡고 있는데, 김 대표의 운영 이후 서점은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운영자 교체 시기였던 2015년, 김영건 대표와 2대인 일수 대표는 뜻을 모아 대대적으로 책방 리뉴얼을 감행했고, 규모 및 서가 확장을 통해 속초의 유서 깊은 ‘지역’ 서점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속초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반드시 방문하고 싶은 ‘전국구’ 서점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좌. 동아서점 정면/우. 동아서점의 내부. 지역 콘텐츠가 모인 우측의 매대에서  엄경선 작가의 <동쪽의 밥상>을 발견했다. @류예지


속초에서 시작된 ‘파도’와 같은 인연

속초 동아서점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서점과 책방이 묘하게 공존하는 분위기라는 것과 서가 별로 큐레이팅이 잘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서점 내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로컬 섹션을 만들고, 그 자리에서만큼은 지역성을 담은 콘텐츠를 비중 있게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거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대표 지역 서점을 여행지의 일정으로 정해두고 일부러 찾아가는 ‘독자’라면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나 구입 가능한 책이 아닌, 지역(강원도)에서 지역(강원도)이 ‘기원’이 되는 책들을 지역(강원도)의 랜드마크 서점에서 구매하는 특별한 경험을 갖고 싶을 것이다.


그날 나는 지역성을 한껏 담아낸 동아서점의 큐레이션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강원도의 색채가 분명한 책을 만날 수 있었다. 강원도 속초와 강릉 출신의 작가가 쓴 책을 각각 구매했는데, 이중 엄경선 작가의 <동쪽의 밥상>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들은 동쪽으로 떠나온 만큼, 동쪽의 정서가 짙게 밴 책을 사고 싶다는 바람으로 구입한 셈인데, 무엇보다 이 책이 한 번도 가보지도/평소 들어보지도 못한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작은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데 호기심이 생겼다. 여행에서 돌아온 밤, 책 뒤쪽 날개를 펼쳤을 때 아주 심플하게 인쇄된 출판사의 소갯글을 만날 수 있었다.


온다는 이탈리어로 ‘파도’를 뜻합니다.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책을 만듭니다.


경남 통영에는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있다. 현재 70여 종에 가까운 책을 출판했고,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 예술 기행>과 <월인 정원, 밀밭의 식탁> 등 지역 색채를 한껏 담아낸 콘텐츠를 비롯해 ‘어떤 일, 어떤 삶’이라는 총서를 통해 다양한 직업군(기획자, 오너셰프, 만화가, 소셜벤처, 공무원)들의 유의미한 자취를 톺아보는 책들을 출간하고 있다. 그런데 위치 상으로 정반대인 최북단 고성에도 출판사가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인 탓일까. 내가 구입한 <동쪽의 밥상>이 출판사의 일곱 번째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저 놀라웠을 따름이다. 그렇게 ‘온다’는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더구나 이 책의 추천사를 동아서점의 김영건 대표가 썼으니,  이 무슨 기이한 우연 인지. 다시 말해, 온다프레스에서 나온

<동쪽의 밥상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지역(강원도)’에서 발간한, 지역 랜드마크 서점(속초 동아서점)에서 구입한, 지역 책방을 찾는 의미를 모든 면에서 충족한 도서였던 것이다.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는 출판사가 되기까지

2006년부터 황해문화, 개마고원, 창비 등에서 13년간 인문서를 만들어온 박대우 대표는 어느 날 ‘나는 이 일을 도저히 못하겠다’는 심정이 되어 출판사를 퇴사한 후, 2017년 가족과 함께 강원도 고성으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출판 일과 관련 없는 삶을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낯선 도시에서 본인의 업을 완전히 배제한 삶을 이어가기란 어려웠다. 박 대표는 우연히 알게 된 지자체의 창업 지원 공고를 보고 기획안을 제출했고,  2017년 7월 첫 책 <온다 씨의 강원도>를 출간하며 1인 출판사 온다프레스를 창업하게 되었다.  결국 자신의 업인 ‘출판업’을 ‘지역’만 바꾸어 새롭게 이어가게 된 셈이다.


“처음에는 출판 일을 할 생각이 없어서 매일 교차로, 벼룩시장에 나오는 일자리를 찾아봤어요. 이 근처에는 황태 덕장 일이나 명태 할복해서 진공 포장하는 일이 많거든요. 추운 겨울 새벽에 자전거 타고 덕장 바로 앞까지 가본 적이 있어요. 너무나 추운 겨울에 고무장갑 하나만 끼고 찬물에 손 담그며 일하는 모습을 보는데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러잖아도 겨울에 감기를 달고 사는데, 빌빌거리다가 욕먹고 그만둘 것 같아서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 뒤로 거의 4~5개월을 교차로 보면서 지냈어요. 그러다 지자체의 창업 지원 공고를 발견하고 기획안을 냈는데, 그게 통과돼 온다프레스를 창업할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죠. 생계 문제로 곤란하던 시기에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웠는데, 놀랐던 점은 회사 다닐 때의 심적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스트레스받는 거라면 그걸 견디기 가장 좋은 환경으로 이주한 결정은 잘한 것이다 싶었어요.”

-볼드저널 중에서


출판사의 첫 책인 <온다 씨의 강원도>에는 강원도 양양, 속초, 고성으로 이주한 20~30대 9명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서울에서 고성으로 이주한 박 대표는 ‘이주 선배'들인 그들이 왜 이 지역을 선택했고,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집자 후배이자 사진가로도 활동 중인 김준연 작가가 속초에 잘 알려진 ‘북 스테이 완벽한 날들’ 운영자 최윤복 대표와 그의 딸이 다니는 아야진초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인 박성진 씨,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주변 사람들과 이들로부터 소개받은 서핑숍 대표, 조선소 운영자, 지역 활동가 등을 만난 기록을 담아 인터뷰집으로 엮었다. 온다프레스는 영동 북부 지역 주민들과 일상을 그린 작품과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책을 선보이겠다는 지역 출판사로서의 ‘결심’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문을 열었다.


업력 5년 차, 현재까지 총 11종의 책을 출간했지만 온다프레스에 대한 뚜렷한 인상을 갖게 된 건, 앞서 언급한 <동쪽의 밥상>를 통해서였다.  이 책은 속초 토박이인 엄경선 작가가 동해 바다에서 나는 서른 가지 물고기 등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음식·생태 산문집이다. 이 책이 유독 빼어나게 느껴진 이유는 작가 본인이 어린 시절 맛보았고 이제는 자취를 감췄거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토산품에서부터, 과거에는 귀했으나 이제는 도리어 흔해진 것들의 사연을 두루 깊이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강원도 속초 지역, 특히 바다를 근간으로 한 ‘음식 문화’에 대한 고유한 이야기는 다른 여타의 음식 에세이집이 갖지 못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됐다.


말 그대로 ‘동쪽의 맛’이 고스란히 망라된 이 책을 차근차근 읽는 동안, 쉬고 싶을 때 잠시 잠깐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 갔던 여행지로서의 ‘속초’가 아닌, 드넓은 동해 바다에서 건져 올린 특별한 맛의 역사를 가진 지역이자 장소로 ‘속초’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소비자로서 지역서점에 방문해 그 지역의 콘텐츠를 다룬 책을 사면서 얻고 싶었던 정서적 만족감을 충족한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거주 지역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선보이는 시도를 통해 지역 출판사가 어떻게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지에 대한 기준점이 될 적합한 콘텐츠라고 생각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지역출판사가 나아가는 법_어딘가에는 @@시리즈가 있다


“한국 사회의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하지만, ‘출판계의 지역균형발전’만은 우리가 해낼 수 있습니다. 아니 해낼 겁니다.”

-경향신문 중에서


좌. 땡스북스에서 진행된 ‘어딘가에는 @@ 이 있다’ 展/우. 땡스북스에서 구매한 두 권의 에세이집(어금니 깨물기/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 @류예지


2022년 7월 온다프레스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론칭한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이 프로젝트를 위해 대전의 이유출판,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이 힘을 모았다. ‘어딘가에는 @@이 있다’라는 공통의 주제로 꾸민 책 5권을 동시에 펴낸 것.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꼬박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소규모 인력/부족한 인프라로 운영되는 지역 출판사에게는 엄청난 공력을 들여야 했을 대장정의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좀처럼 대면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던 5개 출판사는 시간을 쪼개 줌 회의를 열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지역에 거주하며 독특한 서사를 생성해나가는 저자를 발굴해나갔다.  디자인과 편집 작업까지 공동으로 진행하고, 같은 서체와 디자인을 활용한 덕에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물로서 연대의 힘을 극대화했다. 이렇게 해서 22년 7월에 나온 책이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온다프레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포도밭출판사),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이유출판),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열매하나),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남해의봄날)이다.


5권의 책은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장소에서 자신의 생활과 일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온다프레스는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를 통해 도시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부부가 ‘우연’에 이끌려 레터프레스에 입문한 후, 강원도 속초의 산속 마을로 이주해 살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유출판의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는 대전역 인근 원동 철공소 거리에서 70여 년 동안 청춘을 바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장인 3명의 이야기를, 남해의봄날의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는 통영을 찾는 모든 이들이 애정 하는 음식이지만 막상 통영 토박이들에게는 대표 음식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충무김밥을 발로 뛰어 취재하면서 기록한 이야기를 담았다. 포도밭출판사의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 여성이 있다>는 차별과 편견을 일상적으로 겪는 옥천 이주여성들의 투쟁기를, 열매하나의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는 순천에서 활동하는 청년 생태문화기획자가 쓴 생태활동과 고민을 담았다.


이 시리즈는 온다프레스를 비롯한 지역 출판사가 중심부의 목소리로 가득 메워진 한국의 이야기/출판 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지방의 목소리를 보태기 위해 노력한 결실이 맺어진 협업 프로젝트다. 나는 책이 출간된 후 8월 말에 있었던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출판문화심포지엄 중의 하나인 ‘흐르고 모여 이어지는 책들 : 총서의 지형학’의 줌 미팅에 참여했다.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을 기쁘게 지켜봤기에 내 안에서 몸집을 키워가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거주 중인  나는 오래전부터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때때로 지역 출판인들이 말하는 ‘지역 콘텐츠’란 무엇인지, 현업에 종사하는 각 출판사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박대우 대표는 줌 채팅창에 남긴 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중점은 어떤 키워드를 다루느냐겠지만, 진짜 지역 콘텐츠란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이주하던 첫 해 지역 잡지를 보고 건방지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고, 현지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지? 그런데 막상 지역 콘텐츠를 만들어도 지역 분들의 반응은 대게 이렇더라고요. ‘어, 이거 내가 아는 얘기랑 다른데? 내가 진짜를 아는데 말이야’하며 지적을 받기 시작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거든요. 지역 콘텐츠란 그런 것 같아요.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 사는 어르신들이 인정하는 이야기… 그런데 그런 건 결코 닿을 수 없는 목표 같기도 해요.”

-박대우 대표, ‘총서의 협업’ 심포지엄에서


결코 닿을 수 없는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지역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의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까지 수용하는 겸손함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지역에서 발굴하는 이야기이기에 지역 콘텐츠라 불리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중앙, 지방 할 것 없이 현시대의 문제들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지역 출판사라고 해서 꼭 지역으로 국한되는 이야기만 발굴하진 않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써나가겠다 ’(이유출판), ‘중심에 조금 비껴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삶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열매 하나)의 고민들이 어찌 ‘지역 콘텐츠’로써만 오롯이 소비될 수 있겠는가?


나는 심포지엄이 끝난 며칠 후 합정에 있는 땡스북스에 들렀다. ‘어딘가에는 @@이 있다’ 시리즈 벽면 전시가 땡스북스에서 3주간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뜻깊게 느껴진 이벤트는 정식 출간 전, 5개 출판사가 지역 서점 용 굿즈를 제공하는 초판 이벤트를 열었는 점이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출판사이니만큼, 이번 시리즈를 통해 전국의 서점에 두루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 상생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다각도의 노력이 엿보인 부분이었다. 자연스레 이를 응원하는 전국 책방들의 반응은 뜨거웠을 터. 구미의 삼일문고에서는 시리즈 발간과 더불어 발 빠르게 공동 북토크를 열었고, 땡스북스는 별도의 전시 테이블을 마련해 각 출판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땡스북스의 전시 현장에서 각 출판사의 소갯글과 함께 출판사가 위치한 지역의 풍경 사진을 관람했다. 심포지엄에서 보았던 몇 회에 걸쳐 수정 진행되었다는 표지 디자인 변천 과정도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이번 총서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디자인은 서체 디자이너로 유명한 안삼열 디자이너가 맡아서 화제가 되었다. 안 디자이너는 글자를 통해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한글의 매력을 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시리즈의 모든 디자인에 안삼열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협업 총서로서의 ‘디자인적인 연결성’을 놓치지 않았다. 시리즈 책은 책장에 함께 있을 때 더욱 아름다움을 발한다는 점에서, 독자로서 전 권 구매하고 싶은 소장 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명의 마음을 훔친 자, 1,000명의 마음도 훔칠지니!

이번 심포지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 하나를 공유해본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역 사람이 된 지 16년 차이자 지역 기록 활동가로 글을 쓴 지 6년 차가 다 되어간다는 한 여성 작가 분의 질문이었다.

그는 이번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에 대한 손익분기점에 대해 궁금해했다. 나 역시 궁금했지만 다소 망설여지는 주제였는데 감사하게도 그분이 나의 마음을 대신해 세심한 톤 앤 매너로 질문을 던져주었다. 나는 이 질문이 ‘지역 출판사’가 ‘지역 콘텐츠’를 발굴해 대중적인 소구력을 갖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얼만큼의 경제적/현실적 반응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으로 읽혔다.


박대우 대표는  각각의 출판사마다 제작 수량이 다르고 그에 따른 손익분기점이 다를 것으로 판단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시리즈물로 기획된 총서이긴 하나, 각각의 출판사가 선택한 주제에 따라 독자분들의 관심도나 소구력에 의해 판매 편차가 확연히 나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간단히 답했다.


“명쾌합니다. 저로서는 1천 부를 넘길 수 있나, 없나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박대우 대표, ‘총서의 협업’ 심포지엄에서


이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 속초와 양양을 거친 후 집으로 돌아와 <동쪽의 밥상>을 속초 동아서점에서 구매했다는 인증 리뷰를 남겼다. 얼마 후 온다프레스로부터 책 출간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 이벤트 운이 지지리도 없는 편인데, 그 해 연말을 의미 없이 흘러 보내지 않고 속초와 양양에 다녀온 덕분에, 나는 강원 지역 특산물 중의 하나인 양미리를 선물 받게 되었다. 출판사 DM으로 양미리를 본가가 있는 경북 예천으로 배송해주십사 부탁드렸다.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양미리를 잘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제법 양이 많았는지 이웃 분들과 몇 마리씩 소분해 나누었다며, 어느 저녁 경북 특유의 맵짠한 양미리 무조림을 했다는 엄마로부터 사진 한 장을 받게 되었다.


이후, 지역 콘텐츠를 다룬 지역 출판사에서 출간한 음식 에세이집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생물 굿즈를 받았던 일을, 출판사 이벤트로 받은 양미리 몇 마리로 괜스레 엄마에게 우쭐한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 생물 굿즈 이벤트는 내게 강원도 고성에서 경북 예천으로, 출판사에서 독자로, 다시 독자의 어머니로 이어지는 가슴 따뜻한 ‘추억’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책 이벤트로 받은 양미리로 양미리 무조림을 만든 엄마가 보내준 (초첨이 맞지 않는) 사진.  양파와 대파를 양껏 넣어 맵싸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류예지



한 권의 인터뷰집과 두 권의 에세이집을 내면서, 나는 독자의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훔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와 나의 콘텐츠를 발견해준 출판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지만, 열악한 출판 시장에서 1쇄를 소진하고 2쇄를 당당하게 찍는 작가로 우뚝 서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2쇄를 거쳐 3쇄를 찍는다 하더라도 '작가'나 '출판사'가 잘 먹고 잘 살기가 얼마나 녹록지 않은 지를 세 번의 출판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역으로 출판사 역시도 고민이 클 것이다. 더구나 -출간된 모든 도서가 '지역성'을 담아내진 않더라도-온다프레스처럼 지역 출판사가 지역 콘텐츠를 발굴해 책을 잘 읽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책 읽을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막강한 인프라를 가진 대형 출판사와 경쟁하며, 그 속에서 오직 ‘온다프레스’만의 브랜드로 천 명의 독자의 마음을 사수하기란 얼마나 어려울지를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처음 듣는 낯선 지명, 낯선 사람, 생소한 사물들이 등장해도 놀라지 마세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이미 알던 것도 새롭게 보일 테니까요. 어쩌면 평소 접하지 못하고 또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연들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찬찬히 보면 우리 둘레에는 함께 나눌 만한 매력적인 것들이 참 많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 대도시가 아닌 곳에도 자신의 생활과 일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간의 풍화를 견디고 새로운 파도를 타고 온 지역의 삶을 여행처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 p.157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인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우리가 지역 출판사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그 지역에서 발화된 ‘특별한’ 목소리가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것을 보는 일일 테니.  ‘어딘가에는 @@가 있다’ 시리즈의 출현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소비자가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가 아닌 함께 길을 모색하는 마음과 마음이 모인 과정과 결과를 살피는 기회는 물론, 지역 출판사가 뜻을 모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커다란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믿음직한 이름의 지역 출판사들끼리 힘을 보탠 자리에 '온다프레스'를 발견한 후, 온다프레스의 다음 한 걸음을 더욱 기대하는 독자가 되었다. 1명의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훔쳤으니, 분명 1,000명의 마음을 찬찬히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Cover Image 출처 : @류예지

원고 참고

- 경향신문 : https://v.daum.net/v/20220712140631424

- 강원도민일보 :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52973

- 한겨례신문 :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39863.html

- 볼드 저널 : https://m.blog.naver.com/ondapress/222699803371

-온다프레스의 책들 : https://search.kyobobook.co.kr/web/search?vPstrKeyWord=%ec%98%a8%eb%8b%a4%ed%94%84%eb%a0%88%ec%8a%a4&orderClick=LOA&searchPcondition=1&searchPubCd=39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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