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삶-늦깎이 대학생
스티브 잡스가 ‘개연성 없는 상황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에 대해 말한 대학 연설이 있다.
Connecting the dot
인연1- 첫 중국 기차 여행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21년 전이다. 21년 전 여름 삼 남매가 중국 여행을 했다. 가장 싼 ‘잉쭈어’ 기차표를 사서 장춘-베이징-상하이-쑤저우-항저우를 여행했다. 20대에게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고생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90도 직각 좌석으로 등을 마주 대고 앉는 좌석이었는데 장거리 기차 여행인 만큼 앉아있기가 불편하고 괴로워 이래저래 자세를 고쳐 앉던 기억이 있다. 당시 중국의 일반 생활 수준은 알지 못하지만 같은 기차 칸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쌀부대 자루를 짐을 담는 가방 용도로 대거 사용하던 모습도 인상에 남아 있다.
여름에 이글거리는 태양만큼 뜨거웠던 중국 대륙의 열기를 기억한다. 어쩌면 20대 초반의 나의 마음의 투영이었을지 모르지만 개발도상국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변화의 바람이 용솟음치듯 느껴졌다 꿈과 희망에 부푼 청년의 기세를 중국 대륙에서 느꼈다. 언젠가는 중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싶다란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여행을 마쳤다.
인연2- 다시 찾은 베이징, 북경 어언대
그리고 6년 뒤 여름 다시 중국을 찾았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잠자고 일어나면 뭐라도 하나씩 바꿔있던 베이징에 여행객 대신 어학연수생으로 4개월 정도 머물렀다. 베이징 어언대에서 여름 방학 단기 속성반에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이 몰려있는 베이징의 대학가 우다우코에서 어언대 정규 어학 수업이 끝나면 외국인 친구들,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며 중국어를 익혔다. 열심히 놀면서 열심히 공부도 했던 시간으로 20대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경험으로 남편의 중국 부임 얘기에 마음의 장벽이 없었지만 그동안 잘못된 믿음 또한 갖고 있었단 것을 15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베이징은 수도이고 연태는 시골인 것을...
인연3- 중국 옌타이 주재원, 루동대 온라인 유학생활 시작
3월, 중국 대학 학기로는 2학기이지만 새 학기 시작일에 맞춰 집에서 가장 가까운 루동대(鲁东大学)에 등록하고 2년제 전문학사 과정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앞으로 몇 년간 지내야 할 텐데, 중국어는 여전히 까막눈이다시피 한 현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중국어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2년 정도 어학을 배울 생각이었고, 기본적인 필수 수업 내용은 어학과정과 동일하지만 학위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학사 과정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 중이다. 중국어 수업을 듣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중국어 소리, 단어 또는 문장들이 기억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것에 스스로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예전에 배운 내용은 참 기초적이고 그 양이 적었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그동안 서바이벌 중국어는 가능하다는 근자감은 무지에서 나왔던 것이었다. 자신에게 코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수업 초기에는 분위기 파악이 안 되어 책 없이 수업을 받던 시기도 있었고, 단어 시험 노트에 빈칸을 버젓이 남겨두거나, 눈에 어설프게 서려있던 한자 모양을 조합해 새로운 글자를 창조해 내며 단어 시험을 보던 시기가 있다. 고민해 만들어낸 새로운 한자를 교수님께서 보시고 웃으시며 “그럴듯하네요” 또는 “단어를 열심히 외워야겠어요”라는 말씀을 하곤 하셨지만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던 시기가 있다. 어느 시점부터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확연히 뒤떨어지는 단어 시험 결과와 더 이상 추측으로 단어의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복습을 하게 되었다.
그새
4일간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중간고사의 결과가 중요한 나이가 아니라고 가볍게 여기기로 했음에도 시험과 평가에 대한 부담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한편 '부담' 이면에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 배운 내용을 숙지했는지 확인하고 복습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배워 온 내용을 복습하면서 한자가 의미 있는 글자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한자 문맹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기쁨에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처럼 지나다니며 간판의 글자를 소리 내어 읽어보고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경험을 통해 한창 학업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부담과, 타국에서 영어와 또 중국어로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노고를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간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라며 아이들과 영어책을 읽으면서 '이 쉬운 것을 왜 모르니'라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품었던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너희들은 공부만 하면 되니 얼마나 행복한 시기니!
선택과 포기
선택은 동시에 포기를 의미했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서 그 외의 것들은 포기해야 했다. ‘가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들 때 선택한 길은 최선이었다며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기도 한다. 이곳에서도 매일 오전 4시간을 중국어 수업에 투자하면서 포기한 것들이 있다. 아이들만큼 나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낯섦을 나누고 공감해줄 친구도 필요했는데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그런 만큼 주재원 생활에 유용한 정보들이 제때 업데이트되지 않아 때로는 '섬'같이 고립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제 연태 생활 5개월째, 이곳의 삶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그래서 이제는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