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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May 16. 2020

프랑스 와인에 대한 거짓과 진실

프랑스 와인 제대로 알기

프랑스 문화나 프랑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바게트, 치즈 그리고 와인이 되겠습니다. 프랑스 사람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면, 바게트를 옆구리에 끼고 있거나, 식사에 치즈를 곁들이거나, 와인 잔을 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시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치즈나 바게트랑은 달리, 프랑스 와인은 뭔가 진입장벽 같은 게 느껴지지요. 왜 그럴까요?


일단 단어가 너무 어려워 보여요. 와인 전문 용어는 불어로 된 걸 그대로 쓰는 게 많은데, 프랑스 와인 메이커들이 용어 정리를 프랑스어로 먼저 해두어서입니다. 프랑스에서 개발된 와인 양조 방식도 꽤 있어서 영어나 다른 외래어로의 대체어를 못 찾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뿐 아니라, 아니 무슨 종류가 저렇게 많아! 싶게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도 다양합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지역만 꼽아도 알자스, 보르도, 상파뉴, 부르고뉴, 루아르, 프로방스 및 론 밸리이며, 그 밖에도 보졸레, 코르시카, 쥐라, 랑그독-루씰리옹, 사보아 등 전국 곳곳에서 와인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보통 와인 생산 지역별로 대표 품종이 있어요. 보르도 하면 카베르네 소비뇽, 부르고뉴라면 피노 누아나 샤도네이, 보졸레라면 가메 등등. 프랑스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을 때, 맛을 보고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으면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었는지를 확인해보세요. 처음에는 그렇게 개인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보르도 대신 보졸레 빌라쥬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와인 지식이 덜하거나 한 건 아니니까요. 모든 건 본인의 취향에 달려 있을 뿐, 특정 지역의 마니아라고 해서 모든 와인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취향이라는 건 경험치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는 거고요.


"A "wine of experience" can also be a "wine of pleasure." -Matt Kramer-

프랑스 와인 지도 (출처: winefolly)


자, 그럼 흔히들 궁금해하셨을 프랑스 와인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따져볼까요?


1. 와인의 원조는 프랑스라는 설

아닙니다. 이는 저의 다른 포스팅에서도 다루었듯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양조 기록을 가진 곳은 조지아이며,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아르메니아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와인에 갖는 자부심만큼은 대단한 거 같아요.



2. 프랑스인들은 와인을 많이 마신다는 설

네. 그렇습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11%를 프랑스인들이 소비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들의 수는 유럽 내에서도 적은 편인데, 제가 본 프랑스인들은 과음하기보다는 절제하며 마시는 편이에요.


3. 프랑스인들은 모두 와인을 좋아한다는 설

아닙니다. 와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고요.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그냥 와인 맛이 싫다고 하는 사람도 꽤 있어요. 특히 프랑스 북부 쪽으로 갈수록, 젊은 층일수록 와인보다 맥주를 더 선호한다고 해요. 특히 여름에는 맥주 판매량이 많은데, 몇 년 전부터 여름에 로제 와인을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유행이 되어 그나마 소비량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음료 전체로 보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수는 탄산수를 포함한 물이라고 합니다. 술을 권하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굳이 마시라고 강요하는 일도 없죠.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수와레를 즐길 때도, 한 두 명이 과음했을 때는 되도록 자고 가도록 하는 게 관습입니다. 그리고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수와레에서 얼마든지 같이 어울릴 수 있죠. 이런 모임은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이 목적이니까요.



4. 와인은 반드시 치즈와 먹어야 한다는 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의외로 그냥 식사에 곁들여 반주 정도를 하는 게 대부분이고요. 손님 초대 시 치즈 플레이트를 준비하는 건 사실 메인 식사 다음, 그리고 디저트 전에 치즈를 먹는 게 통상 관습이라서입니다. 그리고 올드 빈티지 시음 글에서도 썼지만, 모든 와인이 치즈와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요. 프랑스인이라고 해서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를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거나 주변에서 뭐랑 먹었는데 맛있다더라고 하면 입소문을 듣고 시도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와이너리에서 시음을 해보고 사는 경우도 많다 보니, 와인을 사면서 와인 메이커에게 꿀팁을 받기도 하죠.


https://brunch.co.kr/@andreakimgu1k/22



5. 와인은 따라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자작하면 안 된다는 설

글쎄요. 저도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오기 전에 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현지에서는 한 번도 그렇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와인을 더 마시고 싶은데, 와인 병이 내 근처에 있다면 충분히 스스로 따라 마셔도 됩니다. 물론 이때 내 잔을 채운 후에 다른 사람의 의향도 물어보고 잔에 와인을 따라주거나 거리가 멀다면 아예 병을 넘기기도 하죠. 특히 내 집에 온 손님이라면 집주인은 다른 사람들의 잔이 비었는지 살펴보고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따라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마시기 싫거나 천천히 마시고 싶다면 충분히 사양할 수 있고요. 보통 식사 초대 시 식전주, 에피타이저나 메인에 곁들이는 와인, 디저트 와인, 그리고 식사를 마무리하는 술 등으로 여러 종류의 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내 잔에 원하는 술을 직접 채우는 것이 무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음에 나올 술도 다양하게 조금씩 마셔보고 싶다면 한 가지를 너무 많이 마시지 않는 게 좋겠죠?


6. 식당에서 와인을 주문한 경우, 고른 사람이 먼저 마셔보고 판단한다는 설

그렇습니다. 보통 소믈리에가 와인을 가지고 와서 와인 라벨을 확인시킨 후, 오픈하여 와인을 고른 사람에게 소량 따라주고 반응을 봅니다. 부쇼네 현상이 있거나 와인 상태가 나쁜지 판단하는 방법이죠.



7. 프랑스 식당에서는 무조건 병으로 시켜야 한다는 설

아닙니다. 본인이 원하면 몰라도 굳이 병으로 시켜야 하는 의무는 없어요. 프랑스에서는 글라스나, 피처 사이즈를 시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가벼운 점심이라면 더 그렇죠. 피처 사이즈는 보통 2-3잔 정도의 양이고 하우스 와인이기 때문에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8. 건배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지 않으면 상대방이 최소 7년은 재수가 없다는 설

이건 미신인 것 같아요. 건배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게 예의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인원이 많다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과 건배를 하는 것이 예의이지요.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혹시나 한 명이라도 까먹게 되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한 해 마지막 날 파티를 하며 자정을 기다리다가 비쥬 인사를 할 때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에티켓이죠. 물론 자러 간 사람을 깨우면서까지 인사를 하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한국에서 '건배', '짠!'이라고 하듯이 프랑스에서는 친친(Tchin Tchin)이라고 합니다.

9. 오래된 와인일수록 품질이 더 좋다는 설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처럼 와인 양조 기술이 많이 발달한 때에는 와인의 잠재력을  일찍 끌어올려 주는 것도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와인 심사를 하러 가보면 아니 겨우 작년에 만든 건데, 이럴 수가 있을까! 싶게 완성도가 높고 이미 마실 준비가 되어 있는 와인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와인의 특성에 따라 구매  바로 마시는 것이 좋을  있을 것이고, 취향에 따라 조금  묵혀 두었다가 마시는 것이 나을 수도 있죠. 하지만 오래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에요.



10. 좋은 와인은 반드시 비싸다는 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와인이 맛있느냐 아니냐는 대부분 취향의 문제예요. 비싼 와인을 마셨는데 맛있더라 하면 그게 그 사람의 취향에 맞았던 거죠. 그리고 와인의 가격은 마케팅이나 와이너리의 명성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유명한 와이너리에서 엔트리 레벨로 내놓는 와인들이 사실 값어치를 그만큼 못하기도 하죠. 프랑스에서는 슈퍼마켓만 가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맛있는 와인을 고를 수 있습니다. 물론 특정 지역이나 품종만을 선호하시는 경우에는 예외겠고요.


11. 코르크 마개로 된 것은 반드시 뉘어서 보관해야 한다는 설

맞습니다. 코르크가 마르지 않아야 코르크가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미량의 산소가 드나들어 와인을 보관하기에 좋아요.




글을 끝맺으며, 프랑스어로 된 간단한 와인 용어를 살펴볼까요?



뱅(vin) - 와인

루즈(rouge)/ 블랑(blanc)/ 로제(rosé) - 각각 레드, 화이트 및 로제

뱅 무스(vin mousseux) - 샴페인을 제외한 스파클링 와인에 많이 씁니다. effervescent이나 pétillant이라는 단어 역시 스파클링 와인을 뜻합니다.

떼루아르 - 와인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기후/환경/자연적 요소입니다. 떼루아르는 나중에 별도의 포스팅으로 다루도록 할게요.

밀레짐(millésime) - 빈티지

베흐(verre) - 글라스, 샴페인의 경우에는 플뤼트(flute)라고 합니다.

피쉐(pichet) - 와인이 담긴 작은 유리 주전자를 일컫습니다. 보통 2-3잔 정도의 양이 나와요.


일반적인 피쉐 사이즈 비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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