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1900년대 중반쯤, 그러니까 대략 1960~70대가 아닐지 싶다. 역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군인들도 많았는데 어느 부대 소속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 장교가 자기 부하를 만나야 하는데, 만날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일지 모르고, 역 광장에서 보자고 했던 거다. 그때를 생각하면, 방송해서 찾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전화는 생각지도 못한다. 찾는 방법은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면서 이곳저곳을 헤매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공간에서, 그렇게 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장교는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약간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이렇게 외쳤다. “부대 차렷! 국기에 경례!”
어떻게 됐을까?
다른 군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 군인만 구령에 따라 행동했다. 역 중앙에 걸린 국기에 경례한 거다. 장교는 그렇게 한 군인을 발견했다. 그 군인이 바로 장교가 만나기로 한 부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이 부대는 국기에 경례하는 것을 매우 엄격하게 진행했던 거다. 자다가도 이 구령을 들으면 경례할 정도로 철저하게 시켰다. 이 생각이 난 장교는, 구령에 맞게 행동하는 군인이 바로 자기 부하일 거로 생각했던 거다. 예상처럼 다른 군인들은 들은 척 만 척했지만, 자기 부하는 구령에 맞게 행동했다.
실제 이야기가 맞을까?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의구심이 든다. 들었을 때는 ‘와!’ 하면서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구령 소리를 들었다는 것도 의아하고, 그렇게 하는 군인을 발견했다는 것도 그렇다. 하긴 금방 이해될 이야기라면 이렇게 전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이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가 있다. 목소리라는 단어 때문이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귀에 걸리는 목소리 혹은 단어나 문장이 있다는 거다.
우리 일상에서도 가끔 경험한다.
길거리를 걷는 게 아니라, 떠밀려 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파가 많을 때가 있다. 크리스마스 혹은 행사나 축제할 때가 그렇다. 사람들의 소리가 뒤섞여 귀가 먹먹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혼잡스럽고 시끄러운 상태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소리가 있다. 부모님의 목소리 혹은 친구의 목소리다. 내 이름을 부를 때는 더 또렷하게 들린다. 그렇게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말이다.
왜 그럴까?
익숙한 목소리이고 많이 들었던 단어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고, 감각적으로 그 소리에 깨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기할 정도로 그렇다. 심지어 시끄러운 상황에서 큰 목소리가 아닌 작은 목소리임에도 알아차릴 때도 있다. 들은 자신도 신기하다고 말한다. 비단, 목소리만이 아니다. 누군가 전하는 메시지도 그렇다. 같은 말이지만, 누군가의 말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잘 내려앉는다. 누군가의 말은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흘러 나간다. 어떤 차이 때문일까? 신뢰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다. 누군가에게 조언하기 전에, 관계를 먼저 형성하라는 말이 있다. 신뢰나 관계 형성은 결을 같이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