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택하고 후회하는 것일까?

by 청리성 김작가

“넌 뭐 먹을 거야?”

여럿이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 자주 듣거나 하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먹을지 고르기보다, 다른 사람은 무엇을 먹을지에 더 관심을 두는 질문이다. 왜 그럴까? 먼저 선택하라는, 배려심에서 나오는 질문일까? 윗사람한테는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자기가 먼저 선택하는 것이 예의 없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윗사람과 함께할 때는, 먼저 묻고, 주문할 때 자기가 고른 것을 함께 주문한다. 하지만, 앞서 질문한 말투는 그런 의도가 아니다. 그것과는 다르다. 배려가 아닌,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라는 거다.


자기 기준으로 삼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은 무엇을 먹을지 들어보고, 자기의 메뉴를 고르려는 사람이 대체로 이렇게 질문한다. 실제 물어보진 않았지만, 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 같은 메뉴 혹은 비슷한 메뉴를 시키려는 거다. 선택할 때 타인을 기준에 두는 건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밥 먹을 때만 그러는 게 아니다.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할 때도 그렇다. “넌 어디로 갈 거야?”, “넌 뭐할 건데?”라고 물어보고, 될 수 있는 대로 함께 가거나 함께 하려고 한다. 혼자서 다른 선택하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혼자서 다른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라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거나 두려워한다.


혼자 존재하는 것 자체를 그렇게 여긴다.

의도한 혼자라도, 타인을 의식한다. 다른 사람이 혼자 있는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쓰는 거다. 혼자서 밥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때는 그냥 혼자서 밥을 먹으면 된다. 밖에서도 그렇다. 요즘은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식당이 많다. 본의 아니게 혼자서 밥 먹을 때도 있지만, 혼자서는 절대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있다. 아예 굶거나 누구라도 함께 가는 거다. 가끔 식당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 둘이서 함께 밥을 먹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 둘이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 때가 돼서야 누군가, “갈까요?”라고 말해서, 일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동행이라면, 차라리 혼자 먹는 게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자존감의 문제가 아닐지 싶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많이 의식하지 않는다. 배려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타인의 의견이나 기준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함께 밥을 먹으러 나왔는데, 원하지 않는 메뉴를 말한다고 할 때, “저는 따로 먹을게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렇다. 실제 그런 모습을 봤다.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길에서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결정된 점심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 사람이 그렇게 얘기했다. 누군가는 별나다며 부정적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보였다. 일행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그 사람을, 한참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냥 한 끼를 때우는 시간이 아닌, 자기 기준에 따른 선택으로 보였다.


우리가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이유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선택이 아닌, 타인을 따라가는 선택을 했으니 후회하는 거다. 자기가 한 선택은 비록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아쉬워하지 후회하지 않는다. 이 둘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쉬움은 잘못된 것을 알긴 했지만, 그 선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후회는 그 선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다.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그 태도에서 비롯된다. 내가 하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잘 지켜야 한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타인의 목소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 소리에 따라야 한다. 후회를 최소화하는 삶을 바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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