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붙어야 할 수식어는, ‘그저’이다.

by 청리성 김작가

‘믿음’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아이가 높은 곳에서 두 팔을 벌리고, 뛰어내리는 모습이다. 그 밑에는 아빠가 양팔을 벌리고 서 있다. 아이는 자기 키보다 몇 배는 높은 곳에서, 아빠를 믿고 뛰어내린다. 망설임도 없다. 한 번 맛 들인(?) 아이는 아빠가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계속 뛰어내린다. 이 장면을 본 이후로는, 믿음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이 모습이 떠오른다. 진정한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다. 아이는 아빠와 조율하지 않는다. 자기가 뛰어내릴 때, 문제없이 잘 안아줘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뛰어내리지 않겠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아빠가 있으니 뛰어내리는 거다.


확실하지 않지만, 그저 내맡기는 것.

이것이 믿음의 정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지 싶다. 이 문장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두 곳이다. 확실하지 않은 것과 내맡기는 것.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있다. 하지만 온전히 내맡기지는 않는다. 안전장치를 걸거나, 플랜B를 구상한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온전히 내맡기는 사람에게 용기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무모하다고 말하거나 자만에 빠졌다고 말한다.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온전히 내맡김은,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맡긴다는 표현에서는, 아이가 아빠에게 자신을 던지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던지는 것만 있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내맡긴다는 것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믿음은 일방적이지 않다. 믿음에는 바라는 모습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모습도 있다. 아빠가 뛰어내리는 아이를, 받아 안는 모습이 그렇다. 아빠는 그저, 뛰어내리는 아이를 받아 안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아빠도 아이가 자신에게 온전히 내어 맡기기를 바란다. 믿을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는 거다.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길 바란다.

아이가 어디서 안 좋은 일에 휘말린다고 할 때,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며, 아이가 들어오기만을 벼르고 있을 것인가? 일반적으로는 이럴 수 있다. 최근에 눈에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더 확신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이가 오면 아이 이야기부터 들어봐야겠다!’라며, 차분히 기다리는 거다. 쉽지 않지만, 이렇게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아이에 관한 믿음이 확실하다는 증거다. 내 아이라고, 막연하게 감싸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고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보낼 수 있는 아이에 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온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믿음은 참 어렵다.

나 자신도 믿기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다. 믿음은 확인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 관한 믿음도 그렇지 않은가? 어떤 선택을 했다고 하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자기의 믿음에 확신을 품기 어렵다. 자기 선택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거 반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를 믿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를 믿어준다고 믿는 사람이,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아! 다음에는 잘해서 믿음을 다시 살리도록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까? 아니면, ‘뭐야! 믿지도 않는데 그렇게 할 필요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까?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믿음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그렇게 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것처럼, 믿음을 줄 거라고 믿은 크기만큼 허탈함도 크다.


믿음은 따져서는 주기도 받기도 어렵다.

그저, 주어야 한다. 그저, 받아야 한다. 믿음이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논리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합당해야 하는, 현실 세계에서 그런 것을 무시하고 막연하게 마음을 열어야 하기가 쉽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어려운 것을 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는다는 거다. 믿음에 대한 가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러니, 그 어려운 것을 하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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