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보면 예측한다.
지금 일어난 현상을 보고, 이러저러하리라 예측하는 것이다. 예측에 기반을 두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과 자기 생각이 정리된 내용이다. 대체로 예측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이나 상식 등이 예측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방향과 달리, 전혀 다르게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일반적이지 않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벌어진 상황이나 현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선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거다. 자기만의 시선이라고 할까?
자기만의 시선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남들과 같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름대로 갖춰진 지식 혹은 깨달음 등을 통해,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한다. 가장 많이 언급하는 예가 있다. 물컵에 물이 담긴 모습에 관한 표현이다. 물컵에 물이 반이 담겨있다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물이 반밖에 없네!”라는 사람이 있고, “물이 반이나 있네!”라는 사람이 있다. 같은 상황이지만, 표현하는 시선이 완전히 다르다.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과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표현이 갈린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물이 조금이라도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내는 거다. 누군가는 반밖에 없음을 탓하겠지만, 누군가는 반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낸다. 이 차이는, 각자의 경험과 깨달음 그리고 마음에 따라 갈린다.
“어둠을 욕하지 말고, 촛불 하나를 더 밝히는 마음으로.”
마음에 품고 사는 표현이다. 몇 년 전, 신부님이 강론 시간에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듣는데,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조용히 촛불 하나를 밝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밝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다수 사람은 어떤가? 어둠을 만나면 욕한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말한다. 어둠을 욕하면 어둠이 사라지는가? 빛이 들어오는가? 아니다. 더 어두워진다. 빛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시선을 바꾸자는 말이다. 어둠을 욕하지 말고, 촛불 하나를 켜는 행동을 하자는 의미다. 이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깨닫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노력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계속 어둠을 욕한다.
어떤 쪽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반적으로 하는 선택에 쏠리기 쉽다.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괜히 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야 마음이 더 편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럴까? 대다수 사람이 하는 행동을 따라가면, 마음이 편할까? 이 질문에 관한 답이, 그런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해 줄 것으로 본다. “어떤 행동을 하고, 후회하는가?” 어둠을 욕한 것을 후회할까? 촛불 하나를 켠 것을 후회할까?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힘써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나 행동을 따라가는 것이 옳은가?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옳은가?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지 모른다. 불편하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 마음은 금방 결과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노력은 조금씩 쌓인다. 촛불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세 개 네 개가 되는데, 시간이 걸린다. 하나둘씩 켜지면서 내 주변이 밝아지고, 공동체에 빛을 비출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촛불을 밝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작지만, 절대 미약하지 않다. 하나가 어렵고 처음이 어렵지, 시작하면 힘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