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면도하는데 피가 났다.
면도날에 베인 것 같진 않았고, 작은 뾰루지가 떨어지면서 난 듯 보였다. 작은 부위였지만, 피가 계속 올라왔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휴지 한 칸을 떼서 피가 나는 부위에 반복적으로 댔다. 휴지에 빨간 점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계속 닦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쩌나 싶었다. 버스를 타고 휴지를 작게 잘라서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럴 때가 있었는데, 휴지를 붙이고 시간이 지나면, 피가 멈췄던 기억이 났다.
월요일 출근할 때 타는 버스는, 예약 버스다.
예약해야 탈 수 있는데, 일주일 전에 예약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에, 다음 주 자리를 예약한다. 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붙이기는 뭣했다.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니 신경이 쓰였다. 두 정거장만 지나면 더는 타는 사람이 없으니, 그때 붙이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휴지를 댔다. 사람들이 차에 오르고 마지막 정거장 사람들이 다 탔다. 자리가 남으면 예약하지 않은 사람이 타기도 하는데, 한 사람이 그렇게 차에 올랐다. 내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이리로 오나 했는데, 중간 다른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출발했고, 옆자리는 비워진 채로 이동했다.
가방을 옆에 두고, 휴지를 떼서 붙였다.
옆자리가 가끔 빌 때가 있는데, 그러면 자리의 여유도 있지만,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오늘은 더 그랬다. 옆자리가 비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편안하게 닦을 수 있고 휴지를 붙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꼈다. 월요일 아침부터 피가 나서 짜증이 날 만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짜증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마음이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또 하나.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낀다.
다른 자리는 다 찼는데 내 옆자리만 비워졌을 때,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평소에는 옆자리가 비었다고 이런 느낌이 들진 않았는데, 오늘은 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리를 지켜준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게 피를 닦고 휴지를 부치라고 말이다. 엉뚱한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 가끔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수호천사가 보호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무심코 거리를 걷거나 무언가를 하지만, 그냥이 아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보호해 주고, 안 되는 상황을 되게 해준다. 주인공은 보이지 않고 자연스러워, 원래 그런 줄 안다.
일상이 기적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을까?
무심코 보내는 하루지만, 그냥이 아닐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이동하는 시간. 출근해서 사람들과 일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그밖에 여러 일을 하는 모든 시간. 일을 마치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 집에서 쉬고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 이 모든 시간이 그냥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어나지 않을까?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혹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다 감사하게 여기게 된다. 좋은 일이 생기면 좋은 마음으로 감사함이 올라온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감사함이 올라온다.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 믿으며 감사함을 낸다. 모든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삶이라 말로, 행복한 삶이 아닐지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감사한 마음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