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서사 북콘서트를 이어서 해볼까 한다.
진행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지는 토크 방식이었다. 가수도 초대되어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에 노래를 불렀다. 토크에도 참여하여 일반인의 의견을 대변하기도 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사랑과 미안함의 마음을,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지 답변했다. 처음에는 왜 동석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행자와 신부님 그리고 일반인을 대변하는 가수. 이렇게 세 분이 무대 중앙에 위치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잘 준비된 행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신부님 말씀 중 메모한 단어가 있다.
“절박함”이다. 절박함이라는 단어가 깊이 들어왔다. 절박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하나의 예를 들어주셨다. 사람들이 물에 빠졌다. 국회의원, 의사, 부자, 거지, 친구, 가족이었다. 예로 든 사람이 다를 순 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다. 이어지는 질문은 이랬다. “가장 먼저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들었을 때,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한 번에 모두를 구할 순 없으니, 문제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대처로,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 거다. 신부님이 언급하신, 사람들의 타이틀에 집중하게 됐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타이틀로 사람의 우선순위를 떠올린 거다. 중요한 사람, 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등등의 기준이 떠오르는데, 신부님이 말씀해 주셨다.
“수영을 가장 못 하는 사람을 구해줘야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기준이었다. 듣고 보니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물에 빠졌을 때 가장 절박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에 빠진 상황에서는, 스스로 나오거나 버틸 수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수영을 잘하고 못하는지가 관건이 되고 기준이 되어야 한다. 수영을 잘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무리 없이 구할 수 있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면 어떤가? 1분도 버티기 어렵다. 당혹스러움에 그보다 더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당위성”
절박함, 다음에 나온 단어다. 이 두 단어는 절묘하게 연결된다. 절박한 사람에게는 당위성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절박함에 처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당위성이라는 말이다. 효율성이나 그밖에 다른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하는 것이, 당위성이다. 오랜만에 들은 단어인데, 더 강력하게 들렸다. 귀로만 들린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얼마나 마땅하게 하고 있는지 살폈다. 마땅하게 해야 할 것을 마땅히 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미안한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다는 말씀이 이렇게 연결되었다. ‘미안한 마음은, 사랑해야 올라오는 거구나!’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몇몇이 저녁을 먹었다.
동기 회장님이, 이 과정을 마치고 각자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연령대가 다양해서 그런지 목표하는 바가 달랐다. 강연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 좋은 코치가 되고 싶다는 사람, 은퇴 이후 삶을 보람 있게 보내고 싶다는 사람, 인사 부서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 등등 다양했다. 나는 계속 품어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코칭을 잘하는 진짜 코치와 코치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육성하고 싶다는 목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절박함을 가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코치다. 코칭이라는 도구로 내 욕망과 꿈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절박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더 의미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 말씀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