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향을 구분하는 두 가지가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전자는, 사람은 본래 착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이론이다. 후자는, 사람은 본래 악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다. 두 이론의 공통점은, 사람을 하나의 성향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본래 타고난 성향은 하나지만, 성장하면서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성선설에 근거해서 사람을 바라보면 그런 것으로 보인다. 태어날 때는 백지처럼 깨끗하게 태어난다. 아이를 보고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다. 자라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그 과정에서 때가 묻는다고 본다. 평소에는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어떤 계기로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을 봐도 그렇다.
성악설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재난 영화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영화라서 극적 효과를 위해 그런다고 하지만, 실제는 더 할지도 모른다. 자기와 자기 가족이 사는데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누구나 그 상황에 있으면 그렇지 않을까?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을 고비에 처한 사람을 대신해서 돌아가신 콜베 신부님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죽음 앞에서 자기 목숨을 대신 내놓는 행동을 보면서 성악설을 언급하는 것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니라는 말이다. 검은 개와 하얀 개의 비유처럼, 둘 다 존재한다. 어떤 개한테 먹이를 더 주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성향이 달라지는 거다. 검은 개에게 자주 먹이를 주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검은 개의 성향을 보인다. 하얀 개에게 먹이를 자주 주는 사람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하얀 개의 성향을 먼저 드러낸다. 먹이를 더 많이 준다는 것은, 더 관심을 품고 그 방향으로 향한다는 말과 같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하겠지만, 강력한 방법이 있다. 질문이다. 어떤 방향으로 질문하느냐에 따라, 먹이 줄 개를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진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습관적으로 해오던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질문은 삶을 무기력하게 한다. 또 어떤 질문은 삶에 즐거움이 넘치게 한다. 질문의 형태에 따라 화를 낼 수도 있고, 영감이 흘러넘칠 수도 있으며, 비참해지거나 환상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여러분은 영혼을 고양하고 잠재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 8장 ‘질문이 답을 만든다’ 중에서>
질문이 답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초점이 달라진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을 때, 화를 내는 이유는 문제 때문이 아니다. 문제를 대하는, 질문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왜, 나는 이렇게 재수 없는 일만 일어날까?’, ‘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이 문제로 어떤 불이익이 발생할까?’ 등등의 질문을 한다고 하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화가 난다. 마음에 어둠이 가득 차고 가라앉게 된다. 걱정으로 가득하게 된다.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로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이 문제가 주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떤가? 에너지가 달라지지 않는가? 문제가 발생한 상황은 같지만, 질문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초점이 달라진다. 초점이 달라지면서 에너지가 달라진다. 에너지가 달라지면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다. 생각이 방향이 달라지니, 받아들이는 감정도 달라진다. 모든 것이 달라진다. 질문 하나로, 걸림돌이 디딤돌이 된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핵심은 질문이다. 좋은 마음으로 이끄는 질문이다. 질문만 바꿔도 삶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