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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엄마

by 청리성 김작가
따뜻함과 가슴 찡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평생 땔 수 없는 단어

‘어머니’라는 단어 보다, 더 가슴 따뜻한 단어가 있다.

‘엄마’다. 다 큰 어른이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철이 들지 않은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의 따뜻함을 잊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허리가 구부정한 백발의 할머니를 반기는, 할아버지라 불러도 충분한, 사람의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온 것을 들은 적도 있다. 그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져, 잠시 바라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엄마’라는 단어는 신기하게도, 따뜻함과 동시에 찡한 마음도 함께 일으킨다.

누구나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동시에 찡한 마음이 드는 기억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시간을 되돌리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억이다. 필자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커서 들은 이야기 중에 마음이 찡했던 것이 있다.


필자가 태어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마음만 그렇게 가지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셨다. 할아버지는 백일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점퍼 안에 넣고 경로당을 다니셨다고 한다. 한참 엄마 품에 있어야 할 시기에, 엄마 품이 아닌, 할아버지 품에 담겨 다녔다. 엄마는 속상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엄마가 자식을 볼 수 있고 안을 수 있는 시간은, 할아버지가 나가시기 전과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을 때뿐이었다. 첫째 아이인데, 얼마나 그리웠을까?


속상했던 또 다른 이유는, 경로당의 환경 때문이다.

그때의 경로당은 너구리 소굴이었다. 막혀있는 공간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웠다. 갓난아이가 온종일 담배 연기 속에서 지내야 했던 것이, 너무 속상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그때는, 담배 연기가 아이에게 해롭다는 생각을 못 했을 거다. 그랬으니 그렇게 사랑하는 손자를 데리고 다니셨지.


경로당 환경의 영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숨이 차서 잘 걷지 못했다. 정확한 병명을 모르지만, 폐 질환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학교 근처 작은 산으로 소풍을 하는데, 엄마가 나를 업고 갔다. 몇 걸음만 떼도 숨이 차서 움직이질 못했으니까.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를 업고 다니시면서, 얼마나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우셨을까? 아마 속상해서 눈물도 많이 훔치셨으리라 생각된다.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많이 찡했다.

당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아이가 숨이 차서 제대로 걸어 다니지도 못했으니까. 아마 그때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 거로 생각하셨을 거다. 하지만 6학년이 되고, 갑자기 몸이 좋아졌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별다른 수술이나 대단한 무언가를 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가끔 체력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있고, 등산이나 달리는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늘에서 할아버지가 하느님께 간곡히 부탁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줄 모르고 데리고 다녔는데, 당신이 하신 행동으로, 사랑하는 손자가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셨으니까. 너무 미안한 마음에 간곡히 부탁하셔서, 기적처럼 상태가 좋아졌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엄마는 당신이 잘못하지 않아도, 자책하시는 분이다.

모든 잘못이나 부정적인 모습을, 어떻게든 당신의 탓으로 끌어모으신다. 끌어안으면 뻔히 가시에 찔릴 것을 아시면서도, 자식을 위해서 꽉 끌어안으시는 분이다. 엄마가 끌어안으려 할 때, 내 몸에 가시가 튀어나오진 않았나 한 번쯤은 살펴봐야겠다. 그런 부분에 너무 무감각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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