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추는 작은 시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의 시작』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를 말할 때, 언급되는 두 가지가 있다.
빛과 소금이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암흑에서 어디선가 세어져 나오는 작은 불빛은, 보인다는 것 이상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게 한다. 요즘은 다양한 조미료로 음식에 간을 맞추지만, 그래도 대표적으로 간을 맞추는 건 소금이다. 빛과 소금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존재를 언급하는데, 이름을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빛과 소금이 소중했던 시기를 가만히 떠올려보면, 군대 시절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풍족할 수 없는 환경 때문이었는지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기여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 처음 배치를 받아가 간 곳은 해안 초소였다. 생각했던 군대의 모습과는 달리 작은 건물에 열 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땐, 3~4명이 깔깔이만 입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신병 배치가 거의 되지 않는 곳이라 더 반가워했다는 것을, 일 년이 다 돼서야 깨닫게 되었다.
반가운 만남은 잠깐. 날이 어두워지고, 첫 근무를 서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바로 윗선임이라는 사람이 장비를 챙겨줬고, 랜턴을 주면서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가장 중요한 건, 흔들림 없이 같은 지점을 비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계속 강조하는 선임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출발했는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근무지는 산 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근무지로 가는 길은 산길이었다.
일반인의 표현으로 하면 등산로, 그것도 가파른 등산로였다. 처음 가는 가파른 산길 그것도 어둠이 짙게 깔린 산길을, 그냥 가기도 힘든데 내 몸에는 여러 가지 장비가 덜렁덜렁 달려있었다. 거기에 더해 선임의 앞길을 잘 비춰야 한다는 특명(?)도 있었다.
가는 내내 엄청나게 혼났다.
몇 번을 멈춰 섰는지 모른다. 겨울이었고 해안가는 바닷바람이 차니 두툼하게 입고 가라고 챙겨줬던 선임이 원망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땀이 눈을 가릴 정도로 떨어져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근무지에 도착한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혼나게 될 2시간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선임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더했다. 길 줄 알았던 2시간이 금방 지났고,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보며 잔잔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도 느꼈다. 그래서 ‘빛’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이 장면이 떠오른다.
소금이 간을 맞추는 것 이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행군하면서 알았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 그늘도 없는 길을 완전군장 한 채로 걸었다. 거의 온종일 걸었는데, 나중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이 움직였다.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내 발은 그렇게 앞으로 무심하게 나아갔다. 지쳐 쓰러진 동료가 있어 무장을 나눠 들고 누군가는 부축해서 부대까지 복귀했다.
그날 하루는 정말 길었다.
하루가 길다 길다 하지만, 그때만큼 길었던 적은 없었다. 그날 많은 사람이 힘들어했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소금이라 생각한다. 땀으로 흠뻑 젖은 군복의 소금기만큼은 아니지만, 쉬는 시간에 입에 넣어서 목으로 넘긴 소금이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기운이 빠졌을 때 입 안에 넣은 적은 양의 소금으로 몸이 조금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빛과 소금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주 작은 양으로 매우 큰 효과를 본다는 사실이다. 깊은 산속에서 작은 랜턴 불빛 하나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 길을 바로 걸을 수 있다. 몸에서 소금기가 많이 빠져나간다 해도, 적은 양의 소금으로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다. 작은 소금으로 기력이 빠진 몸을 버텨낼 수 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 무조건 반응처럼,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무슨….’ 넘사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양이 되라는 것도, 염전을 차리라는 것도 아니다. 랜턴처럼 작은 불빛 그리고 손가락 한 마디에도 다 차지 않는 적은 양의 소금이 되어보자는 말이다. 그거 한 번 해보는 거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게 모이면 개인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빛과 소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촛불의 힘도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