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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정당성

by 청리성 김작가
『목적이 순수해도 수단이 옳지 않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명분 』

오랜만에 쉬는 주말이라, 혼자 영화 몇 편을 봤다.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는 <보통 사람>이었다. 예전에 봤던 영화다. 줄거리도 대충 기억이 났는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걸 아내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용을 아는데 뭘 또 보냐는 생각이다.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는, 책도 그렇지만,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얻는다는 기대 때문이다. 어떤 장면일 때도 있고 대사일 때도 있다. 아니면 몰랐던 사실일 때도 있다.

보물 찾기에서 숨겨진 쪽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는 무게가 다르다.

가슴으로 묵직하게 밀려 들어올 때도 있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번쩍일 때도 있다. 때로는 코끝에서 찡하게 울릴 때도 있다. 그래서 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온전히 몰입해서 봐야, 앞에서 언급한 느낌을 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어떤 느낌을 주었다기보다, 나에게 질문하고 생각하게 했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영화의 배경은, ‘남산’이라는 단어만으로 충분히 위협할 수 있던 시절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라 불리던 안기부의 계획에 따라, 평범히 살던 가장이자 형사 한 사람이 이용된다. 그에게는 친형과도 같은 기자가 있었는데,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손을 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형사는 그 사람들로부터,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있는, 다리가 불편한 아들의 수술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음의 짐이었던 아이의 다리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안기부에서는 기자가 눈엣가시였다.

수배를 내려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있는데, 형사의 집에 찾아온다. 형사는 갈등하다, 몸만 성하게만 나오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기자를 안기부에 넘긴다. 하지만 기자는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한다. 형사는 정신을 차리고 모든 사실을 알리기로 마음먹지만, 기자회견을 하기 전날, 가족 모두 가스 테러를 당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아내는 죽고 아들마저 죽었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 가족을 죽게 만든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형사의 선택을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더라도, 형사와 같은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가장이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목적이 순수해도 수단이 잘못되었다면, 잘못된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영화가 말해준다. 형사가 안기부의 앞잡이가 되어 죄수 한 명에게 다른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갖은 고문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 형사는 이 죄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신의 가족을 잃고 깨닫게 된 것이다.


<스토브 리그>라고, 야구를 배경을 한 드라마가 있다.

순수한 캐릭터로 나오는 감독이 아픈 자기 아들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불의와 타협을 한다.

주인공으로 나온 단장이 병원으로 감독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한다. “내 가족을 위한 것이, 남의 가족을 울게도 합니다.” 내 가족을 위한 행동이라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따끔한 일침이었다.


<보통 사람>에 나온 형사나, <스토브 리그>에 나온 감독이나 악한 사람은 아니다.

가족을 위한 마음에 다른 가족을 보지 못한 것뿐이다. 이런 이들의 약점을 쥐고 흔든 사람들이 잘못된 사람이고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하지만 가장이라면, 언제나 이런 사람들로부터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유혹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흔들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렇게 질문해보면 어떨까 싶다.

‘내 가족을 위한 것이 남의 가족을 울리게 한다면?’ ‘수단이 과연 정당한 방법인가?’ 지금 내 발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고 조금 더 앞을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 앞이, 늪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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