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내 마음의 출발을 살펴야 하는 행동 』
어차피 가는 군대 끌려가지 말고 내 발로 걸어서 가자는 심정으로 해병대에 지원했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호기 넘치던 20대라 그랬던 것 같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셌다. 얼핏 듣기로는 10대 1 정도의 경쟁률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서울대 연고대 다음이 해병대라는 말도 돌았다. 그 이유를 입대하고 조금 지나 알게 되었다. 내가 입대한 시점이 98년 1월이었는데, IMF라는 쓰나미가 밀려올 때였다. 동기 중에는 4수 끝에 입대한 놈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처음 맞는 인생의 파도를 군대 안에서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군 생활이 녹록했던 건 아니었지만,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내 몸 하나로 때우면 됐다. 사회적으로 가장 문제가 됐던, 경제적인 걱정을 할 필요는 더욱 없었다.
2년 2개월의 군 생활을 의미 있게 보냈다고 자부한다.
짧지만 긴 시간 안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깨닫는 것도 많았다. 함께 했던 동료 중에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 안에서의 시간은 참 값졌다. 고된 훈련으로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적도 있었고, 2~3교대 해안 경계 근무로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몇 달을 보낸 적도 있었다. 내무반에서 숨 막히는 시간을 오랜 시간 보내기도 했다. 이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삶을 살아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백령도에서 근무했는데, 제대하는 날 기상이 좋지 않았다.
배가 떠야 인천 연안 부두에 도착할 수 있고, 그래야 전역증을 받을 수 있었다. 제대 신고를 하고 부대를 빠져나왔다고 제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참 대기를 하면서 조마조마했는데 가까스로 배가 떴고 인천에 도착해서 전역증을 받았다.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동기 몇이 함께 신촌으로 향했다. 우리만 알고 있는 수선집에서 제대복에 이것저것 오버로크를 치고, 술 한잔하러 지하에 있는 호프집을 찾아갔다.
꿈같던 시절을 보낸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연신 떠들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우리를 불렀다.
‘뭐지?’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부른 아저씨한테 어정쩡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몇 기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소리로 경례하고 기수를 말했다. 그게 서로를 알아보는 우리만의 암호(?)였다. 그때부터 그 아저씨는 거드름 피우는 자세를 시작으로 반말과 그리 유쾌하지 않은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우리는 선배니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기 전 지금도 적지 않지만, 그때는 더 크게 느껴졌던 돈, 십만 원짜리 수표를 건네주고 자리를 떠났다. 돈 액수에는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 사람에 대해선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자리에 돌아와 좋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한 어정쩡한 기분으로, 맥주잔을 부딪쳤다.
서빙하던 형(?)이 멋쩍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의 인원수에 맞게 산 담배를 테이블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난 000기야. 반가워. 난 돈이 없어서 이것밖에 줄 게 없네. 제대 축하해.” 이번에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섰는데, 테이블에 허벅지가 걸쳐진 상태로 경례를 했다. 그리고 그 형은 자신은 일을 마쳤다며 가계 문을 빠져나갔다.
잠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는 서로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에서 올라오는 짠함을 느끼고 있었다. 짧은 시간 마주한 두 선배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떤 선배가 되어야 할지 각자가 자신에게 약속하는 듯했다.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그 여운이 컸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지만, 가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일이 떠오른다.
정말 가진 게 없는 것인지, 나눌 마음이 없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누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게 무엇이라도 충분히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20년도 더 지난 오래전에 깨달았음에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연륜이 쌓일수록 그런 생각이 더 강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더 계산적으로 변한다.
내 마음보다, 주변의 시선을 더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주면 남들이 뭐라 하겠어?’, ‘그래도 체면이 있지!’, ‘안 하느니만 못한 거 아냐?’라는 마음에 머뭇거리게 된다. 마음이 진심이라면 손에 든 것이 무엇이든 좋은 나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무엇을 나눌지를 고민하기보다, 나누는 내 마음의 출발을 먼저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