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든 틀이지만, 결국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틀』
새를 새장에 가둬두면 새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없다.
날개를 펴고 창공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새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새의 본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새장에 가두지 말고 풀어주고 지켜봐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새장에 가두면 그 사람의 본질을 보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새장은, 내가 만들어 놓은 생각의 틀을 말한다. 누군가를 대할 때, 그 사람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가 정해놓은 생각 틀에 가둬서는 안 된다. 새장에 가둬놓은 새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새의 본질로 착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생각의 틀인 새장을 만드는 이유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다.
새장 안에 있는 새는 도망칠 수 없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모습으로 지켜볼 수 있다.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편안한 마음은, 자신이 만든 새장이 옳다고 믿게 만든다. 그렇게 새장을 하나둘씩 늘려나간다. 새장이 많아질수록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고 착각한다. 새가 새장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착각에서 깨어나게 된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장을 벗어나면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게 상처가 된다. 내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고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상처를 받는다. 내가 배려를 하면 상대방은 그 배려에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상처를 받는다. 아이를 위해 힘들어도 장을 보고 맛있게 음식을 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상처를 받는다.
상대방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할수록 상처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다.
내 생각의 틀에 가둘 수 없는 것에 마음 아파하면서 상처를 받는다. 새장에서 벗어난 새가, 내가 원할 때 나에게 오지 않는 것은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더 날고 싶고 가고 싶은 다른 곳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것뿐인 것을, 굳이 상처로 끌고 들어와 아파한다.
아파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새장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새장을 포기하면, 날아가는 새를 따라, 보지 못했던 하늘을 볼 수 있다. 새장에 함께 갇혀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새장을 만든 것이, 자신의 욕심과 합리화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만든 새장이, 결국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키려 하면 할수록 더욱 큰 상처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새는 새장이 아닌, 자연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 아름답다.
자연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진짜 새소리다. 진짜 새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새장에 가둬두지 말고 날아다니는 모습 그대로를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울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꺾은 꽃은 내가 소유할 수 있지만, 결국 죽는다. 꺾는 순간 살아있는 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인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