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의심

by 청리성 김작가
『합리적으로 되짚어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비딱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문제가 생기는 마음』

‘합리적 의심’

최근, 깊이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다. 사실, 의심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서로 숨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서로 견제하면서 바라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별로다.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부정적 의미에서의 의심이라기보다, 관행처럼 해왔던 것을 다시 살펴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서로 옮기면서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잘못된 것을 계승 발전시킬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의심이 난무하는 공동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함께 하는 사람끼리 의심해야 하는 상황은, 최악의 관계이고 최악의 공동체라 볼 수 있다. ‘의인막용 용인물의 (疑人莫用 用人勿疑)’ 명심보감에 나오는 문장이인데, ‘사람을 의심하거든 쓰지 말고 사람을 쓰거든 의심하지 말라’는 표현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의심하는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무리다. 누구보다, 리더가 명심해야 할 문장이다.

아! 아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리더뿐만 아니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라면 아예 마주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함께 무언가를 하기로 도모했다면, 믿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혹시 모르니….’라는 생각으로 자꾸 뒤돌아보고 다른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절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사람도 잃는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도 있듯이, 조심해서 나쁠 거 없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다. ‘의심’과 ‘확인’은 다르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의심할까?

의심이 많은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본다. 그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면, 그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이 있다. 속담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 진정성을 품고 있지 않다. 처음에는 매우 친절하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줄 것처럼 다가온다. 매우 진정성 있게 보인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다. 과장된 그 표현이,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의심이 많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과장된 표현과 친절로 포장하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본인이 자신을 더 잘 알기 때문에, 더 과장된 모습으로 감추고 덮으려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다음 보는 그 사람의 모습에서, 처음에는 속았다는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쓰럽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 자의든 타의든,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상대방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자신에게 달려 있다.

마음이든 실질적인 그 무엇이든 다르지 않다. 내가 받을 수 있는 크기와 양은, 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로 결정된다. 그럼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어떻게 결정될까? 내가 상대에게 내어주는 마음의 크기와 비례한다. 온전히 내어주는 마음이라면 온전한 크기가 될 것이고, 찔끔 내어주는 마음이라면 찔끔 정도가 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주는 것이 적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왜 나에게 적게 주는지에 대해 탓하고 원망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오른쪽 다리가 간지럽다고 하는데, 왼쪽 다리를 긁는 격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얼마나 열었는지 그리고 내 진정성의 농도가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 이상으로 받을 수 없다.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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