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판단

by 청리성 김작가
『옳고 그름을 좋고 싫음의 기준으로 했을 때, 얻을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것』

우리는 다양한 판단을 하면서 살아간다.

매 순간,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은, 선택이다. 하지만 어떤 메뉴를 고르기 위해서는 판단을 해야 한다. 지금 먹고 싶은 것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있지만, 배고픈 상태나 저녁 약속 등을 고려해서 판단하기도 한다. 예전에 이런 직원이 있었다. 밥을 많이 잘 먹기로 알려진 한 직원이 어느 날, 점심을 먹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저녁에 소고기를 많이 먹으려고 배를 비워둔다는 거였다. 그날은 부서에 좋은 성과가 나와, 저녁 회식을 소고기로 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 직원은 저녁 회식 메뉴를 생각해서 점심을 먹지 않기로 판단을 한 거다.


판단의 기준은 개인에 따라 다양하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고 실리가 중심일 수도 있다. 이타심이 강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이나 이익을 그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판단 기준에 따라 선택의 결과는 매우 달라진다. 기준이 상반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고기를 먹을 때 흔히 보는 장면이 있다.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 있고, 밥이 없으면 고기가 안 넘어간다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사람은 후자의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다. ‘왜, 밥으로 배를 채워?’ 후자의 사람도 마찬가지로 바라본다. ‘고기만 먹는데 넘어가나?’


이런 판단이라면,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고르거나 고기를 먹을 때 밥을 먹을지 말지만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긴박한 것들을 판단하고 선택해서 행동해야 하게 된다. 직장에서는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그래서 앞서든 예처럼, 모든 판단의 기준을 개인 취향으로 할 수만은 없다. 좋고 싫고라는 기준으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흘러나오는 감정에 휩쓸려 판단했는데도, 객관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했다고 착각하는 거다. 왜? 설명이 되니까. 변명이 설명으로 포장되는 순간이다.


중요한 판단을 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옳고 그름을, 좋고 싫고라는 기준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무조건 그르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머리가 따라는 건 본능이라 할 만큼, 어쩌면 당연한 순서다. 하지만 따라가는 걸 잠시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좋고 싫고의 문제인가? 옳고 그름의 문제인가?’ 좋고 싫고의 문제는 앞선 예들처럼, 내 감정에 따라 판단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좋고 싫고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오판할 가능성이 크다.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위기를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은, 듣는 순간부터 판단하게 된다.

‘아, 뭐래?’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듣는 족족 부정적인 마음 바구니에 넣어버린다. 세탁이 된 건지 세탁해야 하는 건지 구분하지 않고, 빨래 바구니에 넣는 꼴이다. 살펴야 한다. 세탁이 된 건지 세탁해야 하는 건지 살펴야 한다. 이걸 건넨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감정을 세탁물에 투사하면 본인만 손해다. 개인을 떠나 자신이 속한 조직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도 한다. 결정 권한이 큰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때, 사람은 빼야 한다.

누가 말했는지는 빼고, 내용만을 가지고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한쪽으로 쏠려 다른 한쪽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 그랬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의 말은 무조건 부정했다. 어느 순간,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때도 좋고 싫은 감정으로 판단하는 나를 자각하게 됐다. 그래서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그 말에 담긴 의미와 그로 인해 발생할 효과 등에만 초점을 맞췄다.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때로는 너무 좋은 의견이라 느낄 때도 있었다. 맞지 안경을 벗고 내 눈 상태에 맞는 안경으로 바꿔쓴 느낌이었다.


무슨 말만 하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사람이 있는가?

마주하는 순간, 마음에 바리케이드를 치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 한 번쯤은 그 마음을 걷어내고 들어볼 필요가 있다. 싫어하는 사람이 말하는 의견이 아닌, 그냥 누군가의 의견이라 생각하고 말이다. 좋고 싫음은 잠시 내려놓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대보는 거다. 그러면 지금까지 가려졌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그게 나에게 너무도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기회가 오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막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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