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 중심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바라보고 나아가는 방향과 맞을 때, 행복할 수 있는 기준

작년 말부터 지구 기도회 찬양을 하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하게 되었는데, 기존에 있던 팀에 합류하게 된 거다. 오래전에 함께 찬양했던 분이 지구 기도회 회장님이신데,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다. 신기한 건, 매주 셋째 주 목요일 저녁이라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본당에 두 가지 일정이 겹쳐있던 날이었다. 사목회 상임위원회 회의 날짜와 해설단 회합 날짜였다. 작년 9월, 사목회가 다시 꾸려지면서 해설단에 사목 위원이 많아졌다. 그래서 회합 날짜를 금요일로 옮겼다. 그런데 상임위원회 회의 날짜가, 해설단 회합 날짜를 바꾼 다음 달, 수요일로 옮겨졌다. 수요일 새벽 미사가 목요일 저녁 미사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붙박이로 있던 두 개의 회합이 각각 수요일과 금요일로 옮겨진 거다. 그래서 지구 기도회 찬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두 달 사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적을 체험했다. 정말 오랜만에 찬양을 하자는 의뢰가 들어온 것도 신기했는데, 몇 년을 이어오던 두 단체의 회합 날짜가 바뀐 것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이어온, 나의 신앙생활에 중심은 찬양이다.

어릴 때부터, 미사 시간에 성가 부르는 걸 좋아했다. 노래를 좋아했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성향이 성가까지 이어진 거다. 미사 시간에 큰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은, ‘쟤 뭐야?’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눈치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됐고, 성가를 마음껏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 어딘지 고민했다. 성가대였다. 당연한 것을 왜 그리 고민했는지. 어쨌든. 그때는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고 성당에서 사귄 친구가 거의 없어서 미사 참례만 했었다. 선뜻 성가대에 가서 하고 싶다고 말할 처지가 안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방법은 있는 법.


같은 반에 성가대 반주자가 있었다.

성가대 단원도 한 명 있다는 걸 알았다. 남녀공학의 장점이 여기서 드러난 거다. 나를 성가대에 데려가 달라고 했고, 그렇게 성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너무 좋았다. 성가를 크게 불러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 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아! 진작 들어올걸!’ 지금까지 왜 성가대 생각을 못 했는지 아쉬웠다. 그렇게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교리도 들어갔다. 친구들과 선후배를 급격하게 사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성당 활동을 시작했다.


성당 활동에 모든 걸 걸었다.

10대 후반부터 20배 초반은 말 그대로,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될 만큼 깊이 활동했다. 하긴, 그때 성가대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살고 있으니, 인생이라는 단어가 과장은 아닌 듯하다. 단기간에 학생회 회장도 됐고, 중 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도 했다. 학교보다 성당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았다. 재미있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지금까지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됐다는 것을 말이다. 재미있어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 모든 순간 안에서, 신앙의 씨앗이 뿌려졌고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신앙이 중심에 자리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 버티면서 치고 나갈 힘을 얻는다. 어려운 여건에서 진행한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 둘 사이에 신앙이 없었다면, 지금 현재의 모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힘겨운 시간과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그렇다. 신앙이 없었다면 아이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키우기 어려웠을 거라 장담한다. 아주 훌륭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나름 자부한다. 주변에서도 아이들 잘 키웠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데, 그렇게 잘 자라주어 너무 감사하다.


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정말 중요한 질문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의 중심에 어떤 것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내 생각과 말과 행동, 그리고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느냐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내 마음의 중심, 내 행복의 중심, 내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 가만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한 이유가 어쩌면, 내 안의 중심과 내가 걷는 길이 달라서 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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