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표현하면 자연스레 받을 수 있는 마음
땅 짚고 헤엄치기.
아주 쉬운 일을 할 때, 빗대어 표현하는 속담이다. 실제 낮은 곳에서 바닥에 손을 짚고 헤엄을 쳐본 사람은 안다. 정말 쉽다. 중요한 건 밖에서 볼 때는 진짜 수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누워서 떡 먹기’라는 속담도 있지만, 누워서 떡을 먹으면 체한다는 말 때문에, 논란(?)에 소지가 있다. 그러니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속담이 제격이다. 하지만 이 또한 완전한 말은 아니다. 물이 깊으면, 다시 말해 땅이 한참 밑에 있으면, 땅 짚고 헤엄치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아니 매우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다. 부력 때문이다. 바닥으로 내려가 땅을 짚고 이동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또한 해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숨쉬기가 힘들어 오랫동안 헤엄치기가 어렵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할 때가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의 원래 의미처럼 매우 쉽거나 다른 해석처럼 매우 어려운 상황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누군가는 웃음을 지으며 땅 짚고 헤엄치고, 누군가는 답답한 표정으로 땅 짚고 헤엄친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가장 흔한 예로 이런 게임을 들 수 있다.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뒤에 서 있다. 서 있는 사람은 스케치북을 하나 들고 있다. 한 장에 한 단어씩 적혀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단어를 맞출 수 있게 설명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볼 수 없는 단어를 맞춰야 한다.
시작 신호가 울리면 게임이 시작된다.
설명하는 사람은 말과 몸짓을 총동원하여 그 단어를 맞출 수 있게 알려준다. 정말 쉽게 잘 맞추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다. ‘아니 저걸 왜 모르지?’ 설명하는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나중에는 짜증을 부릴 때도 있다. 시간이 끝나면 이렇게 쉬운 걸 왜 모르냐며,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을 타박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억울한 표정으로, “그걸 그렇게 설명하면 어떻게 해?”라며 오히려 따져 묻는다. 그렇게 답답해하면서 타박했던 사람이 의자에 앉으면 어떨까? 생각보다 잘 못 맞춘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생각보다’라는 표현이다.
설명했던 사람은, 몇 마디만으로도 맞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헤맨다. 역할이 바뀐 것처럼 표정과 상황도 바뀐다. 왜 그럴까? 쉬었던 문제가 갑자기 어려워져서 그럴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게 쉬운 문제가 누군가한테는 매우 어려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다. 설명하는 사람은 답을 안다. 그래서 맞추지 못하는 모습에 답답해한다. 답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답을 알면 “아!”라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거였어?”
게임만 그럴까?
신뢰도 이와 같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면,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람만은 이해한다. 그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소통을 많이 하고 깊이 한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에, 이해의 폭이 깊고 넓어진다.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없다면,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걷어내게 된다. 마치 생맥주를 덮고 있는 거품을 걷어내듯이 말이다. 적절한 거품이 있어야 더 맛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를 귀찮게 만드는 포장지일 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표정과 행동이 다르다. 자신이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그대로,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한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어떤가?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가? 아니면 모르는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혹시 내가 결정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든다. 마지막 의문, 내가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 앞의 물음에도 자연스레 답을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표정과 행동에 차이가 난다고 했다.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감사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 표현한다. 이 부분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표현하는 건 할 수 있다. 그런 감사의 표현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후배가 두 명 있다고 하자. 한 명은 작은 것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표현한다. 한 명은 어지간하지 않으면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다. 누가 더 사랑스럽나? 누구를 더 챙겨주고 싶은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