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 응시했다.
지난 설 연휴, 공모전 사이트를 검색하고 일정을 확인했다. 기한이 좀 남은 공모전도 있었고, 마감 기한이 다 되어 가는 공모전도 있었다. 응모가 가능한 분야의 공모전 게시물을 정리했다. 다시 찾기 번거롭거나 어려울 수 있으니, 공모 게시물 사이트도 저장했다. 얼추 리스트 정리를 마치고, 일정을 확인했다. 2월 초와 말 마감 그리고 3월 마감 일정이 눈에 들어왔다. 공모 분야는 수필을 중심으로 살폈는데, 소설도 함께 담았다. 써놓은 소설이 있는데, 어찌 될지 몰라서였다. 기한이 남은 공모전은 새롭게 써도 될 듯했다. 소설 쓰기를 배운 것도 아니고, 즐겨 읽던 사람도 아니라 좀 생소하긴 하다. 야구를 좋아하기에, 직장 생활과 야구의 공통점을 뽑아 소설 형식을 빌린 자기계발서, <야구에서 배우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을 전자책으로 출간하긴 했었다.
언젠가부터 이야기가 빨아들이는 마법에 빠졌다.
수필만 쓰던 나에게, 이야기의 매력이 다가온 거다. 다양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어둡고 무거운 소설보다 밝고 가슴이 뛰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뾰족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염두에 두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또 아는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이야기가 나올지. 유명한 소설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쓰진 않는다고 말이다. 첫 문장을 쓰고 다음 문장을 쓰면서 떠오르는 대로 쓰다 보면,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한다. 쓰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다. 매일 글을 쓰면서 그 매력이 어떤 맛인지 알기에 기대된다.
처음 응모한 공모전은, 수필이었다.
며칠 남지 않은 공모전은, 문예지에서 주최하는 거였다. 당선되면, 등단이 된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말로만 듣던, ‘등단’이라는 걸 할 기회가 생기는 거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신춘 문예에 응모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등단 작가가 되기 위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 등단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방법이 두 가지라고 한다.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 문예와 문예지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다. 그중 하나에, 응모한 거다.
마감 전날 응모했다.
수필은 두 편을 응모하는 건데, 뽑아놓은 글 두 편을 보냈다. 출력해서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의 응모전이 많았는데, 다행이었다. 시일도 그렇고, 휴일이라 난감할뻔했는데 말이다. 당선 발표는, 마감 후 이틀 후라고 되어 있었다. 작년 말부터 응모를 받아서인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발표가 빠르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왜 그렇지 않은가? 응모했는데 몇 달 후에나 알 수 있다면, 당선되지 않는 이상, 잊고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공모전에 응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매일 쓰는 글을 전문가한테 평가받고 싶었다. 그냥 좋다는 말 말고,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떤지 냉정하게 평가받고 싶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상금이다. 글로 생활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하는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책 출간하면서, 첫 단추를 끼우긴 했었다. 하지만 저조한 판매로 인해 한계가 다분했다. 따라서 이와는 별도로, 공모전을 통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든 거다.
공모전 발표는 어제였다.
저녁 시간이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잠시 통화가 가능하겠냐는 메시지가 왔다. 공모전을 주최하는 분이었다.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낙선됐는데 통화가 가능하겠냐고 메시지가 오진 않을 테니 말이다. 전화를 걸었다. 두 편 중 하나가 당선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공모전에 응모한 이유, 첫 번째 결과를 얻어 흐뭇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등단을 위한 절차가 좀 복잡했다. 복잡하다기보다는,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긴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해는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기로 했다. 그 사이, 참조하라고 여러 자료를 보내주셨다.
어떻게 하지?
비용이 그리 큰 건 아니었다. 당선됐으니 당선금으로 일부 제외하면 더욱 그랬다. 아! 그러고 보니, 대상인지 우수인지 입선인지를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상이냐에 따라 금액이 다른데 말이다. 아무튼. 등단을 수락했다면 물어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등단하지 않기로 했다. 큰 비용은 아니지만, 부담이 전혀 안 되는 금액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이렇게 하는 게 옳은 판단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잠시 고민 끝에 하지 않기로 했다. 비용을 들어 등단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간했으니 이미 작가인데 말이다. ‘수필가’라는 타이틀이 글 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는 없었다. 어떤 분야든 그렇지만, 타이틀이 중요한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이 선택이 옳았을지, 아직은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아! 할걸…….’이라며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등단 타이틀이, 필요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 일이란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일지 모를 언젠가를 위해 현재를 감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많은데, 다 부질없었다.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 감사하고 현재에 몰입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지금도 그렇고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라 여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했냐가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