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말하라고 조언할 때가 있다.
황당한 말을 하거나 맞지 않는 말을 할 때가 그렇다. 일단 내뱉고 보자는 식으로 말할 때가 그렇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그렇다.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생각하고 말해라! 말하고 생각하지 말고!” 공감한다. 타인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타인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세 가지 필터에 거르라고 한다. 사실인가? 꼭 필요한 말인가? 누군가 피해를 보진 않는가? 이 세 가지 필터를 무사히 통과하면, 말하라는 거다. 웬만하면 타인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생각하고 말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최소한 판단하고 내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판단하고 내뱉을 여력이 되지 않을 때다. 순간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그렇다. 급작스러울 때는 말이 아닌 반응이 나온다.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하자. 크게 두 가지의, 반응을 듣게 된다. “아! 깜짝이야!” 매우 일반적이며 모범적인 반응이다. “아이! xx” 매우 거칠고 난감한 반응이다. 이 반응은 생각하고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그냥, 반응이다. 이 반응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갈린다. 앞서 말한 생각이 의식적인 생각이라면, 지금 말하는 생각은 무의식적인 생각이다. 품고 있던 생각이라고 봐도 좋겠다.
긴박한 상황이 아닐 때도 잘 나타난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말할 때,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판단하고 단죄하는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보이는 모습이 아닌, 그 안에 숨겨진 그 사람만의 사정을 헤아리는 거다. 후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 자기만 생각해!” 평소 마음에 담았던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그대로 흘러나오는 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이다. 무의식적인 생각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은 날 것의 말이 나가기 때문이다.
날것의 말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영업을 잘하던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 깍듯한 말투와 태도로 많은 사람의 신뢰를 받던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말투와 태도의 변화도 없었다. 사람들이 믿고 맡기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한결같은 모습 말이다. 한결같은 모습은, 편안함을 준다.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는 개인적이든 업무적이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사람이 한순간의 실수(?)로 큰 거래처 사람을 잃게 된다. 불편한 상황으로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는데, 거래처 사람의 수화기에 이런 말이 들린 거다. “아이, 씨X” 전화가 끊긴 줄로 알고 내뱉은 한마디였다. 의식의 통제를 받지 못한 한마디였다. 이 한마디로 그동안의 신뢰는 무너지고, 거래가 끊기게 되었다. 쌓는 건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말이, 이런 상황을 말하는 거다.
북 콘서트에서 청중이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글을 잘 쓸 수 있는 작가만의 방법을 이야기했을까? 아니면 많은 작가가 말하는 공통된 조언을 이야기했을까? 작가는 글쓰기에 관련된 말은 하지 않았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살면 글을 잘 쓰게 됩니다.” 글을 잘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잘 사는 거라고 했다. 글이 표현이라면 그 표현을 하는 밑거름은 삶 자체라는 거다. 깊이 공감했고 마음에 새겼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답하기는 어렵다. 답하진 못하지만, 지금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판단할 수 있다. 잘하는 것은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잘못하는 것은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닐지 짐작해 본다. 잘 살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