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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Jan 22. 2022

친구야 학교 가자!

홍윤기 수필집 "예순다섯 살의 고교생"_만서 홍윤기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예전의 '국민학교' 시절엔, 이웃 친구네 집 대문에서 "아무개야! 학교 가자!"라고 리듬을 더해 불렀었다. 

중학교 시절엔 저만치 앞서 가는 친구에게 "야! 같이 가~~ 아"하고 뛰어가 친구들 무리에 끼어들곤 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는 어떻게 했을까? 그걸 모르겠다. 아마,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손에는 단어장을 들고 열심히 중얼거리기에 바빠서 옆에 지나가는 친구도 못 알아봤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친구는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같은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다 지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학교 가는 날이다.

친구를 어떻게 불러볼까? 궁리하다가 그동안 제법 가까워진 몇몇 급우들에게 전화를 했다. 가능하다면 내일 다른 급우들보다 2~30분 일찍 등교하자고... 그런데, 이 친구들 그렇잖아도 그럴 생각이란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학교 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내가 공연히 노파심에서 학교에 못 나오는 친구들이 있을까 하고 걱정을 했던 것은 단지 기우였나 보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가?

일생일대의 기회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을 성인들인데, 요즘 말로 "너나 잘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아직은 학교 생활에 익숙하지 못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주말이면 이곳저곳의 모임과 친지, 친척들의 경조사에 쫓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는데, 이젠 일요일과 주말의 약속들을 가능하면 포기해야 한다. 

얼마나 더 많이 그들에게 무슨 변명을 해야 할 것인가? 난감하기도 하다. 차라리 나 올해부터 일요일엔 학교를 가야 하고, 또 주말엔 이런저런 학교 행사 문제로 참석이 어렵다고 털어놓아야 하는데, 아직은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했다. 

어디 이 문제가 나 혼자만의 문제 일까? 다른 급우들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뭐 달리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궁리 끝에 원칙을 하나 정했다.

첫째는 모든 일정을 학교에 우선하여 맞추고, 아주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일요일의 모든 일정을 포기하기로 한다는 결정을 하고 슬슬 연막을 시작했다. 공, 사석에서 "금년부터 당분간은 일요일엔 시간이 없으니, 그런 줄 알아."라고 내 일요일 확보 작전에 들어갔는데, 평상시에 열심히 잘 쫓아다니던 내가 빠지면 안 된다고 벌써부터 난리들이다. 우선 어제만 해도 그렇다. 충무로에 나가야 할 일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만난 친구가, 다다음 주말에 사위를 본다는 다른 친구의 청첩장을 준다. 청첩장을 받긴 받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불러 점심을 사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으로, 결혼식 이틀 전, 그 친구를 불러 또 한잔 대접을 하면서 그때 축의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그 약속이 있는 날은 내가 진해 모군(母軍) 61주년 창설 기념식에 가 있을 테니, 아무래도 다른 날을 다시 잡아 그 행사(?)를 치러야 할 것 같다. 이번 일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연초에 내가 바라는 소망은 "사람 구실을 하고 살자!"는 것으로, 그 사람 구실의 제일 조건이 이웃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일이 었는데 그 목표도 수정이 불가피 해졌다. 이 문제는 아마 이미 초월했을 것 같은 선배들에게 자문을 얻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학교에 충실한 것도 포함될 테니, 당초의 소망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아닐뿐더러,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 분명하여 두 눈 질끈 감고 매사를 학교 우선으로 해야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하지만 무슨 획기적인 묘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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