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취방스님 Nov 29. 2021

머리+머리=휴대폰 번호

아주 감기 맛집 진국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지없이 훌쩍인다. 머리는 띵하고 숨 막히는 공포가 엄습한다. 이렇게 나는 또다시 숨을 쉬기 위해 병원을 향한다. 


병원 방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병원의 풍경이란 아주 진 풍경이다. 장마당의 풍경과는 사람 사는 얘기가 기다린다. 이런 환절기에는 당연히 나 같은 아니 날씨의 공격을 받고 처절하게 쓰러진 폐잔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은총과 사랑처럼 약과 주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펼쳐진다. 하지만 젖과 꿀도 기도를 해야 받을 수 있듯이 약과 주사도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 절차라는 것이 있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접수를 해야 한다.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내가 사는 곳은 아주 도심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시골도 아닌 '시'이다. 이 '시'라는 개념이 좀 뭐하다. 언뜻 보면 도심지가 맞긴 하는데 서울이나 수도권 또는 광역시에 사시는 분들이 보면 시골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광역시 내지는 수도권에서 논을 찾아보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쉽지 않지만 여기는 쉽다. 좋게 말하면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도심 생활을 즐기는 듯 한 아니면 반대적인 뭐 그런 곳이다. 그렇다 보니 어르신들이 아침 일찍 첫차를 타고 병원을 찾기 위해 터미널 근처에 있는 병원에 모여든다. 여기서부터 간호사분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쉽지 않다. 절대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다. 정신줄 살 짝 놓는 순간 어르신들이 어떤 일을 벌이 실지 모른다. 


오늘도 여지없이 병원 아침부터 어르신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골장터의 훈훈함을 병원에서도 느낄 수 있다. 고성이 오간다. 걱정하지 마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안 들리셔서 아주 큰 소리로 대략 기차소리를 뚫을 수 있고, 득음을 한 명창의 목소리가 폭포수를 뚫고 가듯이 설명을 하고 복약 지도를 하고, 호명을 할 뿐이다. 난 익숙하다. 절대 당황 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그건 수도권에서나 촌스럽게 놀랄일이다. 의연하다.

그리고 병원이라는 곳은 문서가 존재하는 곳이다. 즉 써야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아니 그저 낙서에 불과한 설문지 일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작전을 펼치는 군인처럼 모여서 굉장히 심오 하게 의논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봐 이게 뭐라고 씨였어?"

"한글로 쓴 거?"

"그려"

"휴대폰 번호?"

"엉? 핸드폰 번호?"

"아니~ 휴대폰 번호?"

지금 저 말씀을 벌써 무한 반복하고 계신 것 같다. 도와 드리고 싶은데 감히 엄두를 못 내겠다. 바다를 뛰어들려면 마음에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 몸이 지금 너무 쇠약하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제가 그렇게 싹수없는 놈은 아닌데 영 몸이 따라주지를 않네요.'

하지만 힘을 합쳐 설문지와 싸우는 노부부에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여보 우리도 앞으로 저렇게 늙읍시다. 혼자 젊어지지 말고~  

작가의 이전글 구부러진 허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