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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 on Oct 27. 2022

마음에도 영구결번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여섯 번째 이야기


영구결번 :
반드시 빼놓는 번호.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번호이다.
스포츠에서는 최고의 선수가 가진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고 다른 선수들에게는 부여하지 않는다. 즉, 해당 번호는 선수를 상징하는 번호며 동시에 선수에겐 최고의 영예다.


내겐 아직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은 영구결번이 있다. 함부로 사용되지 않으나, 매우 의미 있는 경우엔 사용이 허락되기도 한다. 롯데 이대호 선수의 경우 본인의 아들이 훌륭한 야구선수가 된다면 영구결번 10번을 허락해주겠다고 한다.


나의 경우엔 촌스럽고 큰 액자에 담긴 가족사진이 그것이다.


언젠가 내 손으로 채울, 소중한 결핍.






사춘기란 타인, 특히 또래집단에 대한 동일시가 강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비슷한 것을 듣고, 보고, 입고.. 옆자리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강한 결속감을 느낀다. 반대로, 친구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만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강한 상실감을 안겨준다. 중학생, 고등학생의 나에게 상실감을 안겨준 것은 그 당시 유행하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라든가, 최신 기종의 휴대폰이라든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건 눈에 보일 때 잠깐 예뻐 보이고 그만이었고 정말 원하면 가지기도 했다.


눈을 감으면 더 생각나고 원하더라도 가질 수 없던 것-나는 정말 가족사진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사진은 어딜 가서 돈이나 시간 따위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종종 보이는 벽에 걸린 큰 가족사진. 벽면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중후하고 앤틱한 느낌의 액자는 집집마다 비슷하여 당시 유행인 듯했다.


인테리어적 측면에서 보면 부단히 촌스러운 그 사진이 너무 부러워서, 마치 그 가정의 행복을 전시하는 듯 나와는 이질감이 들어서 보고 싶지 않았다. 가족사진이라는 것으로 구현된 것일 뿐 결국 실체는 '화목한 가정'이다.


일부러 시선을 돌리며 진심을 외면했지만 나는 친구 집에 다녀온 날이면 이후 한참 동안 엄마, 아빠, 언니와 다 같이 가족사진을 촬영하러 가는 꿈을 꿨다.


나중에 내가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그때의 유행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가족사진을 찍어서 커다란 액자에 넣어 집에 걸어둘 것이다. 과거의 나는 갖지 못했지만 미래의 나에겐 내가 해줄 수 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누구보다 예쁘고 온전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오래 앓게 된 듯하다.


내가 내 손으로 영구결번을 채울 수 있는 때. 그때는 다시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으로 아프지 않고 예쁘기만 한 사랑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결핍에 마음 아픈 시간과 비어있던 벽이 있어서 더 가득히 더 촌스럽게 채워질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는 내 마음속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은 그 번호를 벽면 가득 채우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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