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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 on Oct 20. 2022

사랑하는데 헤어질 수 있나요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다섯 번째 이야기

가정의 달. 묘하게 화목하고 따스한 5월. 매년 학교에서는 어버이날을 앞두곤 작은 손으로 카네이션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빨간 색종이와 초록 색종이를 접어 카네이션을 만들고 부모님께 쓰는 편지를 적어 내려가는 시간.

엄마 아빠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항상 “많이 사랑해요”로 끝나곤 했다.

 

애늙은이 같게도 어릴 적부터 '사랑이란 무엇일까' 항상 생각했다. 학교 숙제에도, 모의고사 성적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 의문은 부모님의 이혼 이후 항상 내 머릿속엔 물음표로 남아있던 숙제 비슷한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그래서 이혼을 택한 거라고 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두고 헤어질 수가 있을까.

 

 


하지만 본능적으로 내가 엄마 아빠가 말하는 사랑을 의심하고 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당신들의 사랑을 나도 알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내가 이미 힘들었을 엄마 아빠의 삶에 무게를 더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매년 “많이 사랑해요"를 적으며 언제 어떻게 진짜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 기다렸다.

 

 


“넌 결혼하지 마라”, ”결혼은 현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익숙한 세상이다. 그렇게 나에게 물음표로 남아있던 이해 못 할 사랑에 ‘현실’이라는 요소가 잉크처럼 번졌다. 현실엔 생각보다 이혼하는 부부가 훨씬 많음을 점점 알게 되었고 생각보다 자주 접하게 되었다.


다들 나처럼 말하지 않을 뿐이지 생각보다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구나.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는 것도 현실이듯이 벌어져 버린 일은 벌어져 버리는 거구나.


단념 섞인 반쪽짜리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으니 이해할 수 없을 수 있지, 하고 마음 한편에서 의문을 조금씩 지워 냈다.

 

세상엔 그런 사랑도 있는 거다. 그런 이별도 있는 거야.


나는 우연히 그런(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모습의) 사랑을 받게 된 거고, 내가 원하는 모양의 사랑이 아니었던 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라고 점점 초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내가 원하는 모양의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는 욕심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마음을 아프게도 했지만 미래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 한 사랑보다 온전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거다. 예쁘게 사랑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세상에게 외친 날이 많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내 목은 밤마다 자주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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