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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17. 2020

육아가 이렇게 힘들 줄은

결혼 이야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4)

아이를 낳기 전 맘카페에서 무수히 많은 출산-육아 후기들을 봤었다. 도와줄 친정 식구가 없었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고, 잘 준비한 시험에 합격하듯 무리없이 아이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들 다 하는 건데, 나도 할 수 있을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까운 지인 중 출산-육아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라이브 찐 후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나는 조리원이 쉬는 곳인 줄 알았다. 임신-출산으로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곳. 고생한 나를 위해 '밥이 맛있다'는 후기가 많은 조리원을 예약했었다. 알고보니 그곳은 '전화 지옥'이었고, 젖소양성소였다. 잠시 쉴 만하면 '수유콜'이 울려댔다. 신생아 수유텀은 2~3시간 간격이기에 밥을 먹고 돌아서면 전화가 울렸고, 전화를 받으면 수유실로 가야했다. 책으로 육아를 배운 나는 아이를 안는 법조차 서툰 상태였다. 그런 아이를 어찌저찌 젖을 물리면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1시간도 금방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와 잠시 누워있으면 또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많은 나는 더위를 잘 탔기에 깊은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한증막같은 곳에서 깊은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멍한 정신으로 아침을 맞고 문 앞에 놓여져 있는 밥이라도 먹으려 수저를 들면 또 따르릉. 수유실은 멍한 눈을 한 산모들로 가득했다. 가슴의 새로운 용도와 이용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내 아이의 주식이 될 모유를 좀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삼시 세끼 미역국도 먹었다. 조리원에서는 조개미역국, 소고기미역국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돌려가며 미역국에 넣었지만, 결국 미역국은 미역국이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은 12월 24일. 쉽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보내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역시 현실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토록 힘든 일을 주변 어른 모두가 당연하듯 해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복잡다단하고 엄청난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된 인류가,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니, 대체 다들 어떻게 아이를 키워낸 거지 진심으로 궁금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몇월 며칠이더라.

기본적인 질문들이 머리에서 지워져갔다.


아이가 잔다, 나도 자야지.

아이가 깼다, 20분만 더 자지.

아이가 운다, 대체! 왜 우는 거지. 아니, 왜! 안그치는거지.


내 생활의 주어는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출산휴가 3개월 동안 나는 육아의 위대함을 절실히 느끼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고작 3개월의 휴직이었지만, 그 전과 후의 내 생활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가장 달라진 점은 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해야 한다는 것. 출근할 때면 유축기를 챙겨 가방에 넣었고 회사 화장실에서 남몰래 유축을 했다. 따끈따끈한 그 팩을 누가 볼세라 냉동실에 넣어 얼렸고, 하루 2~3개쯤 쌓이는 그 팩을 퇴근할 때 챙겨와 다시 냉동실에 넣어두면 아이는 그것을 먹고 하루를 지냈다. 나의 근무시간 동안 아이는 남편이 키웠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나와 남편의 사이는 이즈음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퇴근이 조금만 늦어져도 닦달하는 남편을 당시의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늘 짜증내고 신경질적인 남편을 이해하기엔 내 생활도 결코 만만치 않다 느꼈다. 나는 출산 육아 우울증이라 여겨지는 감정의 파도를 겪고 있었고, '엄마'의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고, 3개월 쉰 회사일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유축을 하는 나의 노고를 인정받고 싶었었다.

그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3개월 동안 겪었던 신생아 육아를 남편은 평일 매일매일 겪고 있었으니 그의 생활도 엄청나게 고단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에겐 서로를 위로할 힘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퇴근하면 아이를 넘기고 일을 하러 갔다. 나는 나대로 퇴근 후에 엉망이 되어 있는 집안 정리를 하고 아이를 돌보다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런 매일이었다. 서로가 지치니 싸움은 잦아졌다. 남편은 "엄마 자격이 없다"며 나를 다그쳤고 나는 참고 참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냐"며 싸웠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꾸역꾸역 흘렀고 시간이 흐르는 만큼 아이는 자랐다. 남편은 직장을 가졌다가 사업을 했고 나는 동앗줄처럼 회사를 꼭 쥐고 매일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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