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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17. 2020

임신

결혼 이야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3)

삶은,

살아간다는 것은,

초보운전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디로 흘러가든 늘 초행길. 넓은 대로를 달리며 이쯤이면 할 만하지 생각하다가 좁은 골목길을 헤매며 아슬아슬 장애물들을 굽이굽이 피하면서는 와 이러다 사고내겠네 싶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그런 것. 후진하기엔 멀리 왔고 전진하기엔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그동안의 삶이 녹록치 않았기에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삶은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생리예정일에 생리가 없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원래 불규칙한 편이었기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보다, 결국은 하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늘 마시던 생수에서 비린내가 느껴지고, 남편이 끓여준 짜파구리에서 화학약물 냄새가 나서 한 입도 삼키지 못하고(...설마, 독을 탄 건가?), 길을 지나다 맡은 된장찌개 냄새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 후에는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왔다. 결정타는 맥주였다. 한두캔쯤은 꿀꺽꿀꺽 비워대던 내가, 그 목넘김을 즐기던 내가, 한두 모금을 마시고는 더는 못먹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캔을 내려놓으며 임신테스크기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역시나 양성.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부인과를 찾아갔고 임신 6주임을 알게 되었다.


팔딱팔딱 펄떡펄떡 뛰는, 그 힘찬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엔 온갖 감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뻐야 했다. 생명이라니. 기쁜 것이 당연한 감정이라 생각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전개에 솔직히 기쁨보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앞으로의 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회사는 어쩌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애를 키우면 생활비는 어쩌지, 혼자 벌어 둘이 사는 건 버틸 만 했지만 셋도 버틸 수 있을까, 지금 이 집에서 신생아를 기를 수 있을까. 어떻게든 되겠지라 생각했던 막연한 미래에 한층 더 안개가 끼는 느낌이었다.


당시 회사 상황에서 육아휴직이 보편적이지 않았기에 출산휴가 3달만을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예정일 직전까지 근무를 이어갔다. 4.5kg으로 태어난 우량아답게 아이는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배가 불러도 식욕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아이가 먹고 싶은가보다'라는 멋진 핑계로 쉼없이 먹었더니 임신 전 체중보다 20kg이 불어났다. 집에 남편을 두고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해도 집에 있는 남편을 보면 솔직히 화가 났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 퉁퉁 부은 다리를 마사지 해주는 남편이었지만 그의 다정함도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마사지 할 시간에 직장을 구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싸우기도 싫고 무서워 참고 참고 참아 삼켰다. 이즈음부터 나는 남편이 무서웠다. 다정했다가 갑자기 분노하는 남편을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어떤 이야기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계속계속 화가 났지만 내 상황 때문인지 임신호르몬 때문인지 그마저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해야할 일들을 처리할 뿐이었다. 회사를 가고, 시간이 날 때면 출산준비로 무엇을 해야할 지 정리하고 조리원을 알아보고... 마음은 바빴지만 몸은 늘 피곤하고 늘어졌다. 붓고 붓고 또 부은 몸뚱이는 내 것 같지 않았고 전신거울이 있으면 눈을 내리 깔고 지나갔다.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와.. 저게 나야?' 쇼윈도 앞에서 팔을 하나 들어 올려보고 고개를 움직여 보고서야 내 모습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발톱을 깎는 것이, 내 손을 내 발에 닿게 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 누군가가 양보해주는 자리에 앉을 때면 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임신부 요가를 배우고, 남편과 태교 수업을 듣고, 태교를 위해 클래식을 듣고 동화를 읽는 동안 차곡차곡 시간은 흘렀고, 다행히도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 무렵부터였을까. 나는 남편에 대해 주변에 자세히 말하지 않게 됐다.

어떻게 지내? - 잘 지내.

직장은 구했고? - 뭐, 그럭저럭.

 '진짜 이야기'의 수위를 조절하고, 상대가 너무 놀라지 않을 만한 이야기들을 꺼내 했던 것 같다. 내 사랑이, 내 연애가, 초라하게 쪼그라드는 모습이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저 말을 안하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내 선에서 거르고 걸러, 어느 정도 감정 정리가 된 후에야 타인에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당시의 내 상황은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나빴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선의로든 악의로든 가까운 지인들에게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꾸준히 힘들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자 어디서부터 뭘 숨겼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리곤 끊임없이 주변에 물어댔다.

"남편은 내가 이상한 거라던데, 내가 이상한거야?"

나는, 내 삶의 기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고 불안해 했다. 그 불안감을 주변에 마구 토로하고 다닐 때, 한 친구가 말했다.

"기준이 이상하든 안 이상하든, 니가 힘들면 힘든거야."


그랬다. 남편과의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끝없는 자기 부정의 시간이었다. 나는 “내 기준에서는”, “내 상식에서는”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고,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나'의 삶을 나열하며 내 기준과 내 상식이 일반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음을 조목조목 강하게 강조했다.

그러다보면, '어라, 정말 내가 이상한건가?',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내 삶이 그렇게 엉망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문제들이 결국 “이상한 내가 남편을 화나게 해서 벌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내 삶, 내 기준. 모든 것이 뿌리부터 흔들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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