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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Aug 18. 2024

어라, 내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살다보면 몇 번쯤, 삶이 완전히 변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터닝포인트랄까. 내 경우엔 아이였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내 삶은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내 시간? 그게 뭐야, 애가 원하는 순간을 위해 대기해야지. 내 돈? 그게 뭐야, 육아에 필요한 건 죄다 사야지. 육아든 게임이든 결국은 아이템빨이라고. 삶의 방식과 우선 순위, 심지어 옷차림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음식이란 걸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요리에 재능이 없는 스스로의 상태를 완전히, 정말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로 살고 있었다. 온갖 노력을 해보다가, 반찬가게도 밀키트도 많은 이 세상에서 굳이 애쓰지 않기로 결심했달까. 고생하며 음식쓰레기를 만드느니, 전문가들이 만든 귀한 음식을 사먹는 편이 낫다는 합리적 결론.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끊었던 요리를 다시 한 번 해볼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잠시해버리고 말았더랬다.


계기는 이유식이었다. 모유를 먹던 '꼬물이'가 이유식이라는 유아 식사의 단계를 맞이했다. 처음엔 쌀만으로 끓인 미음같은 것을 먹여보고, 그 다음에 재료를 하나씩 추가해가는 것이 인터넷 '육아 고수'들이 전하는 방법이었다. 하루는 소고기를 갈아 섞어보고, 또 하루는 배추를 갈아 섞어보고, 과일도 하나씩 먹여보며 알러지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 이 과정이 나에겐 '어때, 세상에 이렇게나 맛있는 게 많다고! 살아볼 만하겠지?'하고 물어보는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아무튼 이 이유식의 시기 즈음에 나는, 내가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하게 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아, 내 새끼에게 내가 만든 건강한 음식을 먹여야지.... 하는 모성애........는 개뿔 아니었고, 내가 만드는 게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중에 파는 이유식들이 너무 비싼 데다, 비싸게 샀는데 꼬물이가 안 먹으면 내가 먹어 없애야 한다는 게 너무 돈낭비 같았다. 일단 시도라도 해보고 너무 힘들면 다시 방법을 찾자, 생각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날 밤. 그날의 추가 재료는 배추였다. 배추. 커-다란 배추. 당시 아이의 한끼 식사 분량이 100ml 를 조금 넘었던가? 작은 우유 하나가 200ml인 걸 생각하면 정말로 엄청 적은 양인데, 그걸 만들려고 배추 한 통을 사야한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경제적인 게 맞나? 아무튼 퇴근 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그리고는 시작된 배추타임. 배추와 한판승을 벌여야 할 타이밍이었다. 깨끗이 씻었고, 그 다음은? 레시피를 읽고는 절로 인상이 써졌다. 배추의 굵다란 줄기 부분은 소화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억센 줄기는 다 뜯어내고 순수한 '이파리'만 넣어 이유식을 만들라는 거였다. 이파리? 배추 전체가 이파리가 아니었나? 배추 is 잎채소 아니었던 걸까?


아니었다. 이유식의 세계에서 이파리는, 줄기 부분을 제외한 배추의 끝부분만을 의미하는 거였다. 배추 한 장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배추의 끝부분을 살살 뜯어냈다. 이건 마치 커다란 거인의 손에서 손톱만을 억지로 뜯어내는 느낌이랄까. 이런 흉악스런 비유가 떠오를 만큼 정말 희안한 작업이었다. 배추는 커다랬고 이파리는 소량이었다. 대체 어디까지가 소화가 잘 안되는 부위인지 명확히 나눠져 있지도 않았다. 이파리를 살살 뜯고 있으면 줄기 같은 녀석이 딸려 왔고, 이 녀석이 줄기인가 이파리인가를 고민하며 분류해야 했다.


이 세상의 온갖 것을 씹고 뜯고 맛보고 하기 전에, 내가 만든 배추 이유식을 먹고 아이가 소화가 안되는 대참사가 벌어지는 건 너무 속상한 일일 것 같았다. 그러니 더 열심히 살살. 너는 줄기니 이파리니. 한참 고개를 숙이고 이파리를 뜯다 옆에 쌓인 양을 보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게 무슨. 와, 1시간을 뜯었는데 고작 저만큼이야. 살다살다 내가 이 오밤중에 배춧잎을 뜯고 있냐. 이파리는 조금인데, 수북하게 쌓인 이 줄기들은 또 어째야 하는거야. 그날밤, 배추를 없애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유식을 만들긴 했었던 것 같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 눈물까지 글썽거린 건 안비밀. 아무튼, 다음날부터는 미련없이 이유식을 배달시키기 시작했다 . 지구를 위해서도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확실히 깨달은 계기였다.




이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의 일도 떠오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밥 한끼의 무게였다. 어린이집에 가는 날엔 아이의 점심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됐었다. 만세. 만만세 .그러나 1년에 딱 두 번. 봄소풍 가을소풍날이 되면 어린이집에서는 도시락을 싸주기를 요청해왔다. 도시락. 야채를 즐기지 않는 아이였기에 김밥은 패스, 마트에 파는 시판 유부초밥을 사서 밥만 넣어 도시락을 싸줄 계획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생각했었다. 그러다 문득 남들은 뭘 싸주나 싶어  '어린이집 도시락'을 검색했고, 그때부터 모든 난리가 시작됐다. 어린이집 소풍 도시락의 세계는... 뭐랄까. 아트의 경지에 오른 분들의 불꽃튀는 경연장이었다. 그들은 소시지로 문어도 만들고, 김밥으로 꽃도 만들고, 맛살로 하트를 탄생시키는 조물주들이셨다. 위대한 금손들은 모두 블로그의 나라에 사시는 것 같다. 나와 다른 종족들. 그저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만 봐도 충분한 분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글들을 한 두 개 읽다보면 경외감 사이에서 불쑥 '어라, 이거 쉽겠는데'하는 근거도 알 수 없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 .도무지 흉내도 내지 못할 고수들의 작품 사이로 이건 할 만 하겠는데 싶은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다들 이렇게 화려하게 보내는데 나만 유부초밥만 달랑 넣어서 초라하게 보내는 거 아니야? 그런 건 싫은데?'


그래서 시작했다. 조물주 흉내내기를. 나는 사각형 유부초밥을 리락쿠마로 탄생시키는 창조주가 되어볼 예정이었다. 원래 만들려던 사각 유부초밥 양끝 모서리 부분에 치즈로 귀모양을 만들어 붙이고, 김을 잘라 리락쿠마의 코를 만들면 되는 수준. 종이를 자르듯 치즈와 김을 오려내 붙이면 되는 거였다. 축축한 유부 위로 치즈와 김은 잘 붙었고, 졸지에 창조주가 되어버린 나는 잔뜩 자신감에 불타올랐다. 이대로 멈추기엔 살짝 아쉬웠기에 리락쿠마 녀석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무려 메추리알로 만드는 닭.

메추리알을 삶아 껍질을 벗긴 다음, 검은 깨를 눈대신 붙이고 당근으로 벼슬모양을 만들어 꽂으면 되는 거였다. 이 과정에서 창조주는 그렇게나 수많은 욕을 뱉고야 말았다.

"하....씨....ㅂ"

당근으로 만든 작고 소중한 닭벼슬. 그걸 메추리알에 콕 꽂는 순간 메추리알은 쩍 갈라지곤 했다. 악, 소중한 내 닭머리가 두 동강이 나버리는 처참한 상황.

"아.....놔...."

그리고 메추리알 위 검은 참깨눈알. 그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죄다 떨어져 버렸다. 어찌어찌 당근 고문을 견뎌낸 튼튼한 메추리알은 눈이 사라졌고, 당근만 정수리에 꽂힌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녀석들을 만들어낸 마이너스의 창조주는 이후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주구장창 리락쿠마만 만들어내며 살았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보내며 삶의 태도 하나는 확실히 터득하게 되었다. 넓디 넓은 세상 고수는 많으니, 절대로 함부로 그들을 따라하려 하지 말 것. 섣부른 흉내내기는 화를 부를 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요리는 전문가에게. 그게 작고 소중한 내 정신세계를 지켜내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라는 걸 육아 덕분에 확실히 배웠다. 아, 교육도 당연히 전문가에게. 온갖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아이는 나보다는 훌륭하게 자라지 않을까? 후훗.


지나간 점심들. 쓰다보니 신이 나서 좀 길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방학시즌이다보니 정신이 없어서;; 한 주 쉬고 다시 이어갈게요. 이제야 최근의 점심들에 대해 시작해보려 합니다. 이렇게나 뜨거울 땐! 재가 되어버릴 만큼 뜨거울땐! 시원한데서 다들 편안히 지내시길요! 한줌의 재가 될 순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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