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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Aug 04. 2024

혼자 밥 먹는 게 뭐 어때서(2)

'혼밥'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기억. 입사 후 2~3년 차쯤 됐을 때였나.(...... 현재 17년 차가 되었습니다. 으악! 징그러!) 한마디로 회사생활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적응은 했고, 매달 꽂히는 월급이라는 것에도 익숙해졌을 무렵.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었다. 더운 것도, 사람 많은 것도 질색이었기에 별다른 계획은 없었지만, 어느 날 왜인지 '혼자 여행'을 해야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게 됐었다. 이유는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취업은 했으나 성에 차진 않고, 공부를 다시 하려니 엄두도 나지 않았던 무렵. 30대가 되면 엄청 늙어버리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20대 후반의 나는, 이 청춘의 끝에 무언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택한 목적지가 이름도 뚜렷한 '땅끝마을'이었다. 20대 청춘의 끝자락에 밟기엔 안성맞춤. 이미 혼밥, 혼영 등의 단어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시기였고, 혼자 여행도 몇 차례 해본 적 있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문제라면, 내가 운전 불능자라는 것 정도랄까. 차도 없었고 운전도 못했고, 면허만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택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가는 길,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었다. 땅끝마을만 보고 돌아오기엔 너무 멀리 가는 게 아까워서, 보성 녹차밭도 일정에 넣었다. 대구에서 순천을 거쳐 보성 녹차밭을 보고 그 근처에서 숙박 후 다시 해남으로 가는, 마치 해외여행을 하는 듯한 엄청난 이동거리의 루트. 한여름 땡볕에 녹차밭을 돌아다닐 계획을 얘기했을 때 지인들은 모두 말렸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더랬다.

"야, 여기 대구야. 이 더위를 매일 겪는데 전라도는 시원하겠지."


대구에 살면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부심(?)을 갖게 된다. 소위 더위 부심이랄까. 세상 웬만한 더위는 다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참으로 근거 없는 부심. 아무튼 그런 불타는 더위 부심으로 기획한 '땡볕 투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라도도 매우 엄청나게 미친 듯이 더웠다. 우리나라가 뭐 그리 크다고, 한여름 기온이 그렇게나 차이가 날까. 지금도 기억나는 조금의 차이라면, 대구 도심 한복판의 푹푹 찌는 더위에선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았지만, 전라도에선 바다나 밭을 다니니 가끔 바람을 느꼈던 정도? 딱 그 정도였다. 바람 한 점이 있든 없든, 에어컨의 보호 아래에서 운동 따위 하지 않고 화초처럼 살아온 자에겐 버거웠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땅끝. 표지판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상상해 보면 뻔한 일이긴 했다. 우리나라 최남단이라 한들, 바다와 땅이 맞닿은 풍광이 뭐 그리 특별할 게 있을까. 이 땅끝까지 오면 내 '청춘의 끝' 이후가 보일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런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파아란 바다, 또 파아란 하늘. 뜨거운 태양. 내 미래는 이렇게나 뜨겁고 힘들게, 타 죽을 것 같은 날들이 펼쳐지는 걸까. 지금 내가 청춘은 맞는 걸까. 청춘이 무색하게도, 너무 피곤하기만 했었다. 여기 어디지. 여기 왜 온 거지.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어디로 가야 하지. 대구로 돌아가자. 여기도 저기도 죄다 불밭.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에 있으면, 한여름 물을 찾아 헤매는 지렁이처럼 메말라 버릴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눈에 보인 게 '바다가 보이는 해수탕'이었다. 바다도 실컷 봤고, 땀도 실컷 흘렸고, 해수탕이든 뭐든 일단 좀 씻고는 싶었다. 대충이라도 씻고 있으면 한낮의 태양도 좀 물러가겠지. 목욕탕에선 천천히 달팽이처럼 움직였다. 빨리 움직이면 쓰러질 만큼 어지러웠다. 찌릿찌릿, 집 나갔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는 걸 느꼈다. 목욕을 마치고 길로 나섰을 땐,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정말로 압도적인 허기를 느꼈다. 홀로 다니는 여행길, 약간의 긴장은 필요했고 더워도 너무 더웠으니 입맛도 없었다. 아침부터 먹은 거라곤 삼각김밥이 전부였던가. 꼬르륵, 울림을 들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오늘 안에 대구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무려 땅'끝'마을에서의 '마지막' 식사. 무언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었다. 배고파, 배고파. 허기가 가득한 눈에 들어온 건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나란히 이어진, 해물철판볶음 가게와 횟집이었다. '해남을 떠나려는 자, 해물을 드시오'하고 외치는 듯한 외관이랄까. 그래, 내가 돌아갈 곳은 대구였다. 분지. 바다라곤 접하지 못한 불의 땅.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건? 이곳에서 해산물을 먹는 거였다. 


4~5개의 가게를 천천히 훑었다. 가장 땡기는 건 해물철판볶음. 땀을 흘리며 나트륨을 죄다 빼버린 건지, 매콤한 게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꿀꺽꿀꺽 침을 삼키며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려다 다시 돌아 나왔다. 5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 저 가격의 음식이라면 양이 꽤 많을 게 분명했다. 혼자서 최선을 다해 먹어봤자 엄청 남겠지. 민폐가 될까. 시간은 흐르고 있었으므로, 이번엔 횟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횟집에는 매운탕 같은 1인 메뉴가 있지 않을까. 기대가 무색하게도, 없었다. 사장님은 "몇 분이세요?" 물었고, "1명요" 답 하자마자 "1인 메뉴는 없어요"하고 심드렁하게 말씀을 하셨더랬다. 다시 골목길.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나이가 더 들어버린 지금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반드시 해물을 먹어야겠다면, 가게들을 하나씩 들어가서 1인 메뉴가 있는지를 확인했을 것 같다. 없다면? 그냥 큰걸 시키고는 '혼자 먹을 거니까 조금만 주셔도 된다'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을까. 20대의 나는 이도저도 아닌, 희한한 '망설임'을 택했더랬다. 가게 밖에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며, 메뉴판을 그렇게나 열심히 찾아댔다. 1인분이 되는지를 보려고. 직접 들어가서 물어보는 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혼자 들어가서 무언가를 물어보는 게, 바쁜 저녁 시간 장사를 방해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먹고 싶다는 내 욕심 때문에 남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혼자서 식당을 기웃거리는 게 찌질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혼자 여행을 하는 자는 배고픔도 쿨하게 넘기는 게 어울리지 않나? 거 참. 소심하고 이상한 귀염둥이였다. 아무튼 당시의 나는 주춤주춤 망설이기만 하다 시간을 죄다 보냈고, 막차 시간이 다가왔기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버스를 탔더랬다. 해산물 맛이 나는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이후 해남까지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땅끝까지 가서도 청춘의 의미 같은 심오한 진리를 찾아오진 못했으니까. 심오한 진리 같은 건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게 아님은 알 것 같다. 어딘가로 떠난다고 해서 찾을 수는 없는 것. 찾을 깜냥이 되면 몸이 어디에 머물든, 두둥-하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해남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그 해물철판볶음은 꼭 먹어보고 싶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 가게들이 여태 남아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이런 게 미련일까. 이루고 나야, 해 봐야 잊을 수 있는 어떤 것.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도 없는 삶이지만, 해물철판볶음은 미완의 상태 그대로 마음에 덩어리 진 채 남아 있다. 언젠가는 먹고 말 거야, 다짐하게 된다. 옛날 옛적 치토스 광고 속 치타처럼. 해남의 해물철판볶음을, 언젠가는 꼭 가서 먹어보고 말 테다. 어흥. 




수다를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질문. 

"당신의 혼밥 레벨은 어느 정도인가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혼밥 레벨 테스트를 본 적이 있다. 자, 레벨 1부터 시작. 


Lv 1.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라면 혼자 먹기

Lv 2. 학생식당이나 푸드코트에서 혼자 먹기

Lv 3. 패스트푸드점에서 세트메뉴 혼자 먹기

Lv 4.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에서 혼자 먹기

Lv 5. 백반집, 중국집 등 일반 음식점에서 혼자 먹기

Lv 6. 소문난 유명 맛집에서 혼자 먹기

Lv 7.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먹기

Lv 8.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혼자 먹기

만렙. 술집에서 술 혼자 먹기


나는? 후훗. 만렙이었다. 그 어떤 게임에서도 만렙을 찍어본 적이 없는 내가, 이 혼밥 테스트에서는 당당히 만렙을 차지했다. 어쩜, 자랑스러워라! 혼자 들어가 해물철판볶음도 못 시켰던 20대의 나는 40대가 되었고, 에에, 만렙을 달성하며 '혼밥의 여왕'으로 성장했다. 학생식당, 패스트푸드점이 테스트에 등장하는 걸로 봐선 10~20대 '청춘'들이 대상인 것 같긴 하지만 뭐 어때. 

아무튼 이 테스트를 처음 봤을 때, 레벨 8단계와 만렙을 한 번에 달성하게 해 준 그 어느 날의 저녁이 떠올랐다. 4~5년 전쯤이었을까. 회사든 집이든 그 어디도 마음 편히 머물 곳이 없었던, 인생 최악의 시기. 야근을 하는 날, 동료와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할 만한 에너지도 없었기에 혼자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러 길을 나섰더랬다. 그러다 눈에 띈 메뉴가 물회였다. 물회를 택했던 걸 보면 아마도 7~8월, 덥고 덥고 또 더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더위 부심을 부리며 산다 한들, 더위를 이길 만한 뾰족한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눅진해져 바닥에 퍼져 버리고 싶었던 그런 날, 살얼음 가득한 물회 사진을 보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홀린 듯 가게로 들어가 물회를 시켰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훌륭한 아름다운 가게였다. 살얼음은 영롱하고 회는 쫄깃하고. 와- 으아- 감탄을 하며 마구 퍼먹던 그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옆자리 테이블 위의 초록병을. 


쪼르르 술 따르는 소리와 쨍하고 잔 부딪히는 소리에 귀가 쫑긋쫑긋. 잔을 부딪힌 아저씨들이 쭈욱 한 잔을 들이켜고 '캬-' 소리를 낼 때엔 내 입도 실룩거리는 느낌이었다. 참아야 했다. 야근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타는 목마름이 느껴진다 한들, 물회로 이 갈증을 달래는 게 맞았다. 고개를 파묻고 물회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정말 맛있었던 그 물회가 서걱서걱 2% 부족한 정체불명의 음식으로 변해 있었다. 젠장. 얼음이 녹은 게 문제인가. 아무튼 견물생심이라 했다. 보지 않으면 마음도 생기지 않을 터였다. 안타까운 건, 아저씨 네 분이 모여 있던 그 자리의 소주병이 너무나 금방 동이 났다는 것. 아저씨들이 "여 소주 한 병 더 주이소"를 외치는 순간, 나는 무너졌다. 견물생심은 개뿔. 안 봐도, 마음은 그득해지는 거였다. 

"사장님, 소주 한 병 주세요" 


야근을 앞두고 이 무슨 지랄인가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겠다'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게 뭔 상관이야'하는 생각도 연달아 들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되어버린 거였다. 내가 먹고 싶은데 뭐 어쩌라고.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에라, 뭐 어때. 이것이 진정한 짬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였다. 소주병과 소주잔, 물회를 예쁘게 두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맞은편 자리의 텅- 비어있는 상태가 잘 나오도록 여백도 살렸다. 

자, 이제 마실 시간. 꼴꼴꼴꼴 한 잔을 따르고 꾸울꺽 마셔버렸다. 절로 나오는 감탄사. 

"캬-"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진심으로 생각했다. 

'나란 인간, 꽤 훌륭하게 나이 들고 있잖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는 스스로가, 꽤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사는 게 고달파도 이렇게 스스로 달래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힘내라, 잘하고 있다, 응원도 해주면서. 


이날 소주를 마시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그 물회집에 미련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물철판볶음처럼, 아아, 언젠가는 먹어보고 말테야 다짐하면서. 요즘은 생각한다. 무언가 저지르고 싶을 때는 저질러 보는 게 나은 것 같다고. 소소한 메뉴 선택이든 여행이든 어떤 중요한 결정이든, 저질러 버리고 나면 미련은 남지 않으니까. 미련이란 건 시간이 지나면 몸집을 키우기 마련이고, 후회 한 톨 남지 않는 완벽한 선택 같은 건 어차피 없는 거니까. 저질러 버린 걸 감당하다 보면 그 과정을 통해 뭐라도 하나 배우겠지. 나는 이날 소주를 마시고 야근을 했고, 오오 술기운이 있으면 오타도 안 보이고 시간은 정말 빨리 가버리는구나, 하는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면 되는.. 거겠지? .....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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