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했었다. 대학 졸업이 코앞에 들이닥친 4학년 2학기에 한 학기를 쉬었다. 졸업 유예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그런 휴학이었다. 어쩌다보니 4학년이 되었는데,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했다. 당시 나는 언론사 입사를 꿈꾸고 있었고, 언론고시라 불리는 험난한 시험을 나 따위가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꿈은 무슨. '나를 받아주는 데가 있다면 어디라도 들어가야지, 취업을 해야지' 머릿속으로는 생각했지만, 도전조차 포기하는 건 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달까. 고민만 붙잡고 대학 4년을 보냈으면, 이제는 결정을 해야할 때였다. 그런 휴학이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커서 '에라, 도망쳐!' 해버린 휴학. 처음엔 1년을 쉬어버릴 생각이었지만, 반 년만 쉬고는 바로 복학을 했다. 불안도가 높은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만큼 불안한 건 없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달을 보내고 나니,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시간들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좀 쉬어도 됐을 테고, 배낭여행같은 것을 떠나도 됐을 텐데, 20대의 나에겐 그런 것을 해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쉬거나 멈추면, 알 수 없는 저 나락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결국 한 학기만 휴학하고 복학을 했다.
마지막 학기라 수업도 몇 개 신청하지 않았다. 주5일 중 3일 즈음을 등교일로 정하고 수업을 몰아 넣었다.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까지 공강이 꽤 길어진 날도 있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한 상황. 마지막 학기는 혼자 다닐 각오를 하고 있던 터였다. 뭐 어때, 친구 없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는 어느 집단에서든 '앗싸'(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쪽이었다. 인싸같은 건 성격 좋은 사람들의 몫이라 늘 생각했었다. 다양한 사람을 폭넓게 아우를 에너지도 없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소수의 인원과만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정도의 에너지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심지어 마지막 학기 아닌가. 이제와 새 친구를 사귀며 힘을 쓰느니, 혼자 다니는 쪽이 훨씬 편했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학기를 다닐 생각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소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점심. 혼자 밥을 먹는 나는 정말 괜찮은데, 그런 나를 불편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복학 직후, 길고 긴 공강을 맞아 오전 수업 후엔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책을 읽든 토익공부를 하든 할 일은 넘쳤다. 그리고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수업을 들어갈 계획이었다. 예상과 달랐던 건, 학교 식당을 지나는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인사를 건넸고, 나는 적당히 눈인사로 답하며 밥을 먹었다. 눈인사 정도는 사회성에 문제가 많은 나같은 사람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앉자"라는, 내 기준에선 난이도 별 5000개 짜리 제안을 큰 어려움 없이 해낸다는 거였다. 나의 사회성은 눈인사 정도에서 이미 고갈되어 가고 있었지만, 지나가던 학과 선후배 등은 망설임도 없이 식판을 들고 내 곁에 앉으며 "같이 먹어도 되지?"라고 묻곤 했다. 상대는 혼자일 때도 있었고 여럿일 때도 있었다. 이미 의자를 빼는 그들에게 "아니오, 절대 안되는 데요" 말할 만한 깡이 내게는 없었다.
어색한 합석의 상황. 그 무리 중 누군가는 꼭 이런 말을 했었다.
"나도 복학해서 혼자 밥 먹어봤거든, 혼자 먹기 애매하면 연락해."
내가 아무리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존재라 해도, 상대의 배려와 친절 덕분에 이 상황이 벌어졌음은 느낄 수 있었다. 상대에겐 악의가 없었다. 나만 불편할 뿐. 이런 상황에선 무어라 답해야 할까. 눈치만 빨랐던 20대의 나는 "그렇죠, 복학생 쉽지 않네요, 감사해요" 정도로 반응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속으로는 전혀 감사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친절에 대충 감사를 표했다. 더 큰 문제는, 인사 다음의 상황. 마주 앉은 상대와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아무리 짜내도 없었다. 인사도 나눴는데, 이제 무슨 말을 더 해야 하지? 뭘하며 지내는지도 모르는, 얼굴만 아는 사람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만한 지능이 내게는 없었다.
"ㅁㅁ은 요즘 어떻게 지내?"
"너 ㅇㅇ랑도 친했지, 걔는 요즘 뭐해?"
이 자리를 벗어나려면 빠르게 밥을 먹어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먹어도, 내 인맥이 더 빈약했다. 인맥을 주제로 이어지는 대화는 늘 식판을 비우기 전에 끝이 났다. 날씨 얘기, 정치 얘기, 죄다 던져도 소재는 부족했다. 그러다가 들이닥치는 어색한 침묵. 침묵이 끼어들면 그게 또 그렇게나 불편해서 무슨 말인가 해야할 것만 같았다. 여러 차례의 합석을 당하고 나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혼자 밥을 먹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고마운 이들에게, 나는 왜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하나. 이런 인성 쓰레기! 사회성이 부족해서 어울리지 못하는 주제에 혼자 있고 싶다고 정신승리를 하는 거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혼자 밥 먹고 싶습니다'하고 대놓고 말할 의지도 없는 나같은 사람이 택하는 건? 결국 도망이었다.
'합석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면, 학교 식당에서 밥을 안 먹으면 되잖아.'
사회성은 부족해도 잔머리는 살아있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두둥두둥, 비디오방이었다. 바야흐로 20여 년 전, 당시에는 24시간 운영하는 비디오방이 군데군데 있었다. 남들에겐 은밀한 데이트 장소였을까. 남자친구 같은 걸 키워내지 못한 나같은 인류에게 그곳은 그저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대합실 같은 공간이었다. 술을 마시다보면 버스 막차 시간쯤은 가뿐히 넘기는 일이 종종 벌어졌고, 그럴 때면 홀로 비디오방으로 가서 첫 차를 기다리곤 했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이 주는 속닥한 편안함을 나는 꽤 좋아했다. 한낮이면 더 좋았다. 활기가 넘치는 대학가에서 유폐된 곳, 나만 아는 비밀의 방 같았달까. 아무튼 혼자 밥을 먹기 위해 나는 비디오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엔 편의점에 들러 김밥 한 줄과 캔맥주 하나를 샀다. 진지하게 영화를 고르고, 영화를 보는 동안 천천히 김밥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만의 세계에 듬뿍 빠지는 일. 당시의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영화를 보고 습기 가득한 계단을 내려와, 햇볕이 작열하는 거리로 나가는 기분도 좋았다. 어둠의 세계에 사는 '이끼 인간'이, 빛의 세계로 산책을 떠나는 느낌이랄까. 아무도 내게 임무를 부여한 적은 없었지만, 수업 참여라는 거대한 미션을 은밀하게 수행하는 스파이가 된 것 같은 희안한 느낌을 듬뿍 누리며 혼자 피식 웃기도 했었다. 그래, 낮술은 역시, 좋은 거였다. 후훗.
비디오방은 정말 완벽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단 하나, 밥 한 끼에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흠이 있었다. 3000~4000원으로 해결될 일에 만 원쯤을 써야 했으니. 사치를 누리다가 문득 위기감을 느낀 이후엔 절약을 해야 했다. 이럴 때 먹어야 할 건? 김밥이었다. 비디오방에 사가던 김밥천국 김밥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할머니들이 파시는 김밥을 먹어야 할 시점이었다. 한줄에 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 '라떼는 말이야', 학교에 김밥 파는 할머니들이 계셨더랬다. 종합강의동 등 오고 가는 학생들이 많은 길목마다 할머니들이 바닥에 커다란 소쿠리를 놓고 김밥을 가득 담아와 팔고 계셨다. 다른 학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 학교에도 김밥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친구와 나는 그밤 내내 술을 마시며 얘기했었다. 학교에 뒷돈을 주고 협약을 맺은 어떤 업체가, 동네 할머니들을 고용해 김밥을 팔고 있는 게 아닐까. 수수료로 많은 돈을 떼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헛소리를 진지하게 할 만큼 판매 방식이 비슷하긴 했었다. 우선 김밥. 지금의 꼬마김밥 정도의 굵기였던 그 김밥은 "몇 줄 주세요"를 주문한 이후 "그냥 주세요" 혹은 "잘라주세요"를 결정해 빠르게 말해야 했다. '잘라주세요'를 택하면 할머니가 가위를 꺼내시곤 검은 비닐봉지에 싹둑싹둑 김밥을 잘라 담았주셨다. 김밥과 함께 튀김을 판매하는 것도 똑같았다. 밀가루 90%와 소량의 야채가 버무려져 있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빈대떡 같은 그 무엇. 그것을 우리는 튀김이라 불렀다. 아무튼 이 튀김 또한 잘라달라고 하면 김밥과 같은 봉지에 툭툭 잘라 담아 주셨다. 그리고 나면 화룡점정. 할머니는 잘려진 김밥과 튀김 위로 맛간장 한 스푼을 휘리릭 뿌려주셨더랬다. 민첩한 손놀림으로 더해진 간장은, 비닐을 들고 움직이는 동안 자연스레 김밥과 튀김으로 스며들었다. 고객이 비닐을 들고 이동할 것까지 예상한, 정말 완벽하게 과학적인 시스템이었다. 검정 비닐 위쪽으로 무심한 듯 툭- 이쑤시개를 꽂아주시는 센스까지. 간장향이 맴도는 김밥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한입 가득 삼키면... 악, 말해 뭐해. 아무튼 가난한 대학생이 한 끼를 떼우기엔 최선의 선택지였다.
가성비만 따지자면, 그 어떤 메뉴도 이 김밥을 이길 수 없었다. 문제라면 어디서 먹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 간장 냄새가 꽤나 강한 음식이었기에 건물 안으로 들고 들어갈 수는 없었고, 길에서 우걱우걱 거리며 다니는 것도 애매하긴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은 주로 학교 벤치였다. 수업 전 김밥을 사서, 학교 벤치에서 냠냠. 눈인사 등을 피하기 위해 웬만하면 구석진 곳으로 가서 나홀로 식사를 즐겼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김밥을 먹는 날엔 마치 소풍 온 듯한 즐거움도 느꼈다.
소풍의 문제는?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이 김밥 식사 역시 날씨의 영향을 받았다. 어느 날 김밥과 함께 벤치에 앉았을 때, 후두둑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가까운 건물을 향해 뛰었다. 자, 이젠 어쩌지? 간장 냄새가 폴폴 나는 봉지를 가방에 넣기도 애매했고, 배도 고팠다. 어디선가 후루룩 먹고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마땅한 장소는 떠오르질 않았다. 일단 수업을 가볼까, 하며 이동하다가 문득 들른 곳이 화장실이었다. 당시의 나는 4학년의 '짬바'로 화장실에 갈 일이 있으면 웬만하면 교수동까지 올라가곤 했는데, 그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문득 '어라, 여기서 김밥 몇 개 먹고 가면 되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매우 이상한 일이긴 했다. 싸는 곳에서 먹을 생각을 하다니. 도저히 한 곳에서 이뤄지면 안될 일을 나는 연결해 버렸고, 망설이다 냠- 하고 김밥 하나를 입에 넣은 후에는 고민할 새도 없이 한봉지를 모두 비워버렸다. 이건 꽤 충격적인 경험이긴 했다. 더러운 곳에서 맛있게 먹어서? 아니, 화장실을 재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렇게나 혼자 밥 먹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외치던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화장실에서야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건 딱 화장실 정도의 공간과 '칸막이'였다. 혼자 편히 있을 수 있는 곳. 바꿔 말해 남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돌아봐도 기이한 이런 한 번의 시도 후에, 의외로 너무 만족을 해버린 것이었다. 세상에, 여기 아무도 안 오잖아!
20대를 성인이라 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다. 혼자 밥 먹는 걸 누가 보든, 누구와 합석을 하든,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진지하게 방법을 찾았을까. 아무튼 남의 눈을 의식하는 소심쟁이의 도망지로, 화장실은 꽤 적합한 공간이었다.
이후 종종 화장실을 식사장소로 이용했더랬다. 졸업한 친구들을 만난 어느날 친구들이 물었다.
"점심은 누구랑 먹어?"
"나 있잖아......"
그간의 점심 이야기와 최근 찾아낸 안식처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친구들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부족한 사회성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화장실로 숨어 들어 밥을 먹고 있을 줄은 몰랐겠지.
토크쇼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고 싶은 순간이다.
'그 시절의 자신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나는 솔직히, 청춘의 내게 깊은 안쓰러움을 느낀다. 홀로 있음을 그렇게나 좋아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자문하는 모습도, 사회성에 문제 있는 존재로 보일까봐 전전긍긍하던 모습도 너무 찌질해서 안쓰럽다. 지나온 시간의 나를 크게 혼내고픈 마음은 없지만, 다만 한 가지. 타인의 눈에 멀쩡해 보이는 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시의 내겐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남들과 어울리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충고만 들었을 뿐.
그리고 이건 굳이 찾아넣는 TMI. 졸업을 하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기사 하나를 읽게 됐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40318/61794521/1
무려 2014년의 기사. 우연히 신문에서 이 기사를 보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와, 나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구나' 하는 거였다. 진심이다. 졸업한지도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공감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럼에도 이 기사 속 대학생들의 마음에는, 시대를 뛰어 넘어 공감이 됐다. 혼자 밥 먹는 걸 불특정 다수가 있는 온라인에 업로드 하는 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왜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게 됐는지는 매우 이해가 됐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님 말씀도 와닿는다. "여럿이 함께 밥을 먹었던 과거 습관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 혼자 식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지금은 다르겠지만, 저때는 그랬던것 같다. 나는 혼밥을 조금,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기사 속 저들도 20대의 나처럼, 남의 눈을 피해 저곳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혼자 먹는 게 편하면 그렇게 살면 되는 건데, 그것도 참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남들 눈을 신경쓰다 보면 밥 한끼도 먹기 어려워지는 거니까. 칸막이 안으로 숨어든 이들, 20대의 나와 저들 모두 아무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