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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Aug 11. 2024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더라

밥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입사 직후의 날들이 떠오른다. 취업을 했으나 자취를 시작할 돈이 없던 그 시절. 야근때문이라도 회사 근처에 방을 구해야 했지만, 보증금이 없었다. 당시 원룸 시세가 보증금 200~300만 원에, 월세 35~45만 원 쯤이었던 것 같은데, 갓 취업한 자에게 이 보증금은 꽤 큰 돈이었다. 그래서 고시원을 택했다.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면 생활이 가능했고, 침대와 냉장고 등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기에 옷과 세면도구만 들고 가면 당장이라도 머물 수 있었다. 처음 고시원에 들어갈 때는 나름 계획도 확실했다. 여기서 살면서 쥐꼬리같은 월급을 토막토막 내어, 토막난 쥐꼬리들을 잘 모아서 원룸 보증금을 마련하자. 한 3개월 바짝 모으면 보증금 정도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회사를 중심으로 몇 군데 고시원을 보고 다녔다. 그리고 깨달았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CCTV의 유무, 남/여 공간 구분 등이 모두 월세의 기준이 됐다. 뭐라도 하나 더 있으면, 딱 그 혜택만큼 월세가 비싸졌다. 창문까지도. 사람 머리 하나가 들어가지도 않을 듯한 조그만 창문이라도, 창문이 있는 방에서 살려면 월 5만 원은 더 내야 했다. 창문 크기가 더 커지면? 말해 뭐해, 창문 크기와 비례해 방값도 올랐다. 고시원이라 해도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번화가 근처에서 싼값에 방을 구하는 사람이나 근처 공무원 학원을 다니는 청춘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듯 했다. 돈을 아끼는 게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고시원은 걸렀다. 방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곳이, 도심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아무튼 고민 끝에, 적당히 안전해 보이는 곳, 그 중에서도 손바닥만한 창문이 하나 붙어 있는 방을 계약했다. 그 정도 사치는 누려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열면 정면으로 싱글 침대 하나가 있었고, 딱 그 정도의 공간만큼 빈 공간이 있었다. 싱글 침대 두 개를 밀어넣으면 가득 찰 것 같은 넓이의 방. 빈 공간 오른쪽으로는 책꽂이와 책상이 있었고 책상 아래쪽엔 작은 냉장고도 있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이었다. 남녀 구분도 되어 있었고, 잠금 장치가 잘 되어 있었기에 사용할 때에 큰 문제는 없었다. 더 문제는 안에 사람이 있는 경우였다.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정말로 기이할 만큼 오래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엔 기다림에 지쳐 화가 났지만, 나중엔 "대체 안에서 뭐하세요?"라며 순수한 호기심으로 묻고 싶을 정도였다.(지금도 궁금하다) 방 상태는? 방음같은 건 전혀 되지 않았고, 발바닥이 뜨거울 만큼 난방을 올리고 자도 우풍이 너무 세서 코가 시렸다. 그럼에도 가성비, 그놈의 가성비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30만 원 초반인 월세에 냉난방비가 모두 포함됐고, 전기세도 수도세도 별도로 내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엄청난 혜택은 바로 식사가 제공되는 거였다. 고시원을 계약하며 가장 놀랐던 부분. 월세를 내면 밥을 무한정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합판으로 얼기설기 공간을 나눠둔 고시원에서 취사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에 공용 식당이 존재했다. 방을 4개쯤 이어붙인 듯한 식당 한쪽엔 화구 4개짜리 가스렌지가 있었고, 커다란 식당용 전기밥솥도 있었다. 밥솥에는 늘 쌀밥이 들어있었고, 밥솥 옆 커다란 철제통엔 김치도 가득 했다. 몇시든, 언제든, 떨어지면 채워놓는 놀라운 식당. 밥과 김치가 떨어지면, "총무님"하고 출입문쪽 방에 계신 분을 부르면 됐다. "밥이 떨어졌는데요"라고 속닥대면, 그는 정말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식당으로 이동해 기계처럼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김치를 채웠다. 처음엔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가 정말로 의아했다. 사람들이 욕심을 내지 않나? 하루 세 끼 밥값을 생각하면 월세가 싸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이 '무료' 식당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이용하지 않는다는 걸.




평일에는 아침 일찍 눈 떠서 씻고 나가기 바빴고, 저녁에는 들어와 씻고 잠들기 바빴다. 그러다 주말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어기적 어기적 공용 식당을 향했다. 내 방에 있는 월 5만원짜리 창문에선 한낮의 태양이 쏟아져 들어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복도에는 빛 한 점이 없었다. 일부러 그렇게 해두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천장에 형광등이 켜져 있음에도 대낮에도 매우 어두웠다. 여러 개의 방문을 지나갔다. 방마다 사람이 한 명씩...? 글쎄,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에취 재채기, 아함 하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소리들만 그 고요를 침범했다. 나도 자연스레 발소리를 죽이며 걷게 됐다. 내가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타인의 문틈으로 들어가 남의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는 느낌이었다. 움직이는 자도, 방 안에 머무는 자도, 스스로의 기척을 죽이려 애를 쓰는 곳.


아무튼 공용식당, 그곳에서 가장 곤란한 건 사람을 마주치는 거였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이긴 했지만, 따지고보면 한솥밥 먹는 사이 아닌가?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망설일 때 상대가 먼저 인사를 해주면 엄청 고마웠기에 나 역시 인사를 건네기도 했었다. 이 조용한 공간에서 인사를 못 들을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였지만, 그럼에도 인사가 되돌아오는 확률은 절반도 안됐던 것 같다. 다들,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싶어하는 느낌이었다. 봐도 못본 척,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서로를 슥슥 스쳐 지나갔다. 소리를 죽이며 사는 게 익숙한 사람들은, 식당에서도 無의 존재로 머물고 싶어하는 듯 했다. 나 역시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무표정으로 조용히. 캄캄하고 무거운,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모두를 내리누르는 느낌.


모두가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스레 익혀지는 룰 같은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공용식당에 들어가기 전, 내부가 보이지도 않는 나무문 앞에서 내부 낌새를 파악하는 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휘리릭 나가는 사람을 몇 명 마주한 후부터는 내 존재를 문밖 누군가에게 알려야 함을 깨달았다. 기척, 소리를 내야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일부러 큰소리를 냈다. 가스불에 후라이팬을 올릴 때도 세게, 밥그릇을 상에 둘 때도 세게, 기침도 곁들이면서 내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나 역시, 공용식당에 들어가기 전 안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슬쩍 방으로 돌아와 다음 순번을 노렸다. 고요한 공간에선 소리가 곧 존재였고, 소리로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며 적절히 부딪히지 않은 채 살아가는 거였다.


소리로 존재감을 어필하는 법을 배워가는 동안, 공짜 밥을 왜 안먹는지도 알게 됐다. 처음엔 '저게 다 공짜야' 싶은 마음에 햄과 김까지 구비해두고 주말이면 챙겨 먹으려 애를 썼었다. 하지만 몇 차례 밥을 먹고 나선, 공용식당 밥을 먹는 걸 망설이게 됐었다. 한국인이 밥에 질릴 리가... 있었다. 그곳의 밥은 늘 노랬고 냄새도 심했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고시원 총무 입장에서야 밥을 한 번이라도 덜 하는 것이 일을 줄이는 것일 테고, 그러다보니 늘 밥솥 가득 밥을 해놓곤 했었다. 다 먹어 치워야 새 밥이 생기는 시스템. 얼마나 오래 지나야 사라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배부른 투정이었지만, 너무 맛이 없어서 밥을 피하게 되는 지경이 너무 쉽게 왔었다. 밥이 질린 다음에는 라면을 사다놓고 끓여먹기도 했고, 김치볶음만 해서 햇반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몇 주가 지나고 나서는 절약이고 나발이고 맛있는 걸 먹으러 나가게 됐던 것 같다. 월 5만원 내고 햇볕을 사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랄까. 바깥 공기를 쐬며 편히 움직여야 살아있는 것 같았다. 삼각김밥이라도, 떡볶이라도 밖에서 사먹는 게 나았다.


'씨발비용'이라는 험한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지. 씨발비용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쓰는 비용'을 의미한다. 스트레스를 받고 홧김에 치킨을 시킨다거나, 퇴근길에 필요도 없는 립스틱을 산다거나 하는 식으로 오로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쓰는 돈. "씨발"하고 욕을 내뱉기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상하니, 욕을 지르는 대신 돈을 쓰는 느낌이랄까. 고시원에서 살면서 나는 씨발비용이 어디까지 늘어나는지를 절절히 체험했던 것 같다. 고시원에 머무는 시간이 싫었기에 일부러 약속을 잡기도 했고, 우울한 방을 꾸며보겠다며 귀여운 피규어들을 사두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 공간에는 도저히 정이 붙지 않았다. 한솥밥 먹는 식구들은 모두가 투명인간이 되려 했고, 밥을 밖에서 먹으려 애를 쓰면서 고시원에서 머무는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보금자리. 집. 머무는 곳이 삶의 질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정말 절절히 배웠다. 한 5개월쯤 버텼을까. 씨발비용 때문에 돈 모으는 속도는 더욱 더뎠다. 고시원에 질려 어디로든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던 무렵, 여름이 시작됐다. 고요의 공간을 정체 불명의 냄새가 채워갈 때,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가성비고 나발이고 내 인내심은 냄새와 함께 끝이 났었다. 사람이 먹고 자는 일에 가성비만 따지는 거, 그건 정말 비인간적인 것임을 깨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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