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인 물'이 되었다
"점심 주문, 이제 ○○씨가 하면 되겠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선배 L은 이 말과 함께 두툼한 파일 하나를 내게 건넸다. 뭐지, 하며 열어본 파일 안에는 회사 주변 온갖 가게들의 전단지가 모여 있었다. 가게의 전화번호와 메뉴 등을 담아둔 전단지들. 마구잡이로 모아둔 듯 보였지만, 이 전단지 모음이야말로 사무실 사람들의 오랜 경험치가 응집된 결과물이라 할 만했다. 당시에는 음식점이 문을 열면 가게 사장님 혹은 그에게 고용된 누군가가 전단지를 사무실에 놓고 가곤 했고, '한 번 먹어볼까'하고 시켜본 후 사람들의 호평을 받은 가게의 전단지만 그 파일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전단지 모음은, 지금으로 치면 반경 5km 내에서 구글맵 평점 4.5 이상의 가게들만 모아둔 맛집 리스트 정도와 비슷했던 게 아닐까. 무려 17년 전,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심지어 내가 20대였던 때. 와와, 나도 20대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아무튼 그 전단지 모음은 내 책상 한쪽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리고 선배들이 "오늘은 나가지 말고 배달해 먹자"라고 결정하는 날이 오면 그 전단지 모음을 꺼내 들었다. 전단지를 가진 자의 역할은? 팀장에게 총총 다가가 전단지 더미를 펼쳐 보이며 묻는 거다.
"오늘은 뭐 드시겠어요?"
팀장이 전단지 중 하나를 고르며 "여기 이거 맛있더라" 말하면 오늘의 가게는 결정. 그럼 그 전단지를 들고 선배들의 자리 하나하나를 찾아갔다. 밥 주문에도 순서가 있는 법. 지금 돌아봐도 그딴 게 뭐가 중한가 싶지만, 당시에는 선배들의 입사 순서대로 밥 주문을 받는 것이 꽤 중요한 문제였다. 어차피 입사순으로 착착 앉아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뭐가 됐든 귀찮기는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선배들마다 찾아다니며 물었다.
"팀장님은 이거 드시자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뭐 드시겠어요?"
선배가 자리에 앉아서 신중하게 메뉴를 고르면, 그걸 까먹을세라 수첩 등에 기록한 후 다시 내 자리로 컴백. 주문들을 한 번 정리한 후 전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배달 주문 좀 하려는데요. 주소는 ○○○○○○○○구요, 메뉴 좀 많은데 하나씩 말씀드릴게요. 총 얼마예요?"
배달을 시키지 않는 날은, 12시가 되면 우르르 움직였다. 팀장이 나갈 채비를 하고 "밥 먹자" 등의 말을 하며 앞장 서면 그 뒤를 따랐다. 뭐 먹지? 등의 질문을 팀장이나 선배가 던진다 해도 애써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딱히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은 아닌 듯했다. 몇 번 대답해 보곤 깨달았다. 나를 향해 묻는 듯해도, 그것은 결국 본인들 스스로를 향한 질문일 뿐이라는 걸. 신중하게 대답해도 결국 먹고 싶은 건 따로 있는 듯했다. 눈앞에 있는 선배를 향해 말하는 듯하면서도 시선을 허공에 두고 "글쎄요" 같은, 대답이라기엔 애매한 리액션을 꺼내들 때쯤이면, 윗사람 누군가가 "오늘은 ○○○ 어때?"하고 말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 뒤를 따랐고, 다 같이 식당에 가서 앉았다. 이럴 때 막내의 역할은? 다른 이들이 메뉴를 고르는 동안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개개인의 앞에 놓고, 컵에 물을 따라 수저 옆에 놓는 거였다. 요즘 말로 옮기자면 엔딩 요정... 아니, 세팅의 요정이랄까.
계산 또한 막내의 몫이었다. 내 카드를 긁든 다른 누군가가 긁든 총액을 결제하고 나면, 1/N 만큼의 금액을 각자에게 받아 정리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백 원짜리까지 맞춰서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선배들이 만 원짜리를 건네면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돌려줘야 했다. 바꿔 말해, 누가 뭘 먹었는지 그 메뉴가 얼마인지를 알고 있어야 했고, 바로 거스름돈을 내줄 만큼의 잔돈이 내게 있어야 했다. 전단지 더미를 받은 그날부터 내 자리엔 늘 잔돈이 준비되어 있었다. 문제라면 내가 숫자에 약하다는 것 정도랄까. 내가 먹은 밥값도 계산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밥값을 계산해야 한다는 건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뭘 먹는 게 이렇게나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라니. 이놈의 점심, 다 큰 어른들이 알아서 좀 해결하면 안 되나, 생각했었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무려 17년 전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심지어 내가 20대였던 때의 이야기. 그러니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시간은 흘렀다. 새로운 사람들은 꾸준히 들어왔고(꾸준히 나가기도 했고), 원하든 원치 않든 내 연차는 자꾸만 쌓여갔다. 그 시절 담배 피우던 호랑이도, 늙어 죽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만큼 여러 가지가 변했다. 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새삼 가장 큰 변화로 느껴지는 건 배달앱인 것 같다. 가게 주인이 일일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손님은 전단지를 모아두던, 오프라인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노력들. 이제는 앱이 그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됐다. 그리고 그 노력을 대신해 주는 만큼의 수수료를 냉큼 떼어가 버리는 무서운 세상. 어느새 그 세상에 익숙해졌다. 배달받을 주소만 입력하면 주변 가게들이 한식/중식/치킨/족발 등등 종류별로 펼쳐진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 앱 때문에 내 생활은 편해진 걸까.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수많은 가게들을 보며 괜찮은 곳을 골라야 하고, 그러다 보니 낯 모르는 이들이 남긴 리뷰까지 꼼꼼히 읽게 되는 삶. 과연 편해진 게 맞을까. 전단지 더미에서 하나를 고르던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헤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역시 나는 옛날 사람이긴 한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 변화. 그건 간단해져 버린 입금 같다. 예전에는 분명 계좌보다는 현금으로 밥값을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카톡 등으로 수수료 없이 톡톡 입금을 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계산이 온라인상으로 이뤄지는 것에 익숙해졌다. 막내군단이 잔돈 등을 준비해 둘 필요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하. 라떼는 말이야, 전단지 더미를 선배한테서 물려받았어. 잔돈도 준비해야 했지. 요즘은 세상 좋지? 아이고, 라떼는 말이야, 밥 먹는 게 얼마나 귀찮았는지. 이런 이야기를 할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돌아봐도 변하지 않은 건 '점심시간=함께 밥 먹는 시간'이라는 인식이었다. '모두 함께'를 전제로 밥을 먹는 시간. 내게 점심시간은 그런 의미였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엔 그랬다.
이런 인식이 변한 건, 월드스타의 세계 방문 이후인 것 같다. 웬 월드스타냐고? 세계인 모두가 아는 그 이름, 코로나19.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꿨다. 우선 코로나가 터질 당시 내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당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꼬맹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유치원이고 학원이고 죄다 문을 닫았으나, 나는 회사에 가야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육아휴직. 출산 때도 써보지 못한 육아휴직이 가능했던 것도 어찌 보면 월드스타 코로나 덕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1년을 쉬었고, 복직을 했다. 복직 당시에도 월드 스타의 파급력은 여전히 굉장했었다. 그럼에도 휴직 전 상황과 차이는 있었다. 우왕좌왕하던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모두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1년을 쉬고 복직했을 때, 회사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변화를 느꼈던 것이 바로 점심시간의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각자도생'이랄까. 감염을 막으려 각자 밥을 먹는 것에 모두가 익숙해져서, 직급이 높든 낮든 다들 알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이 모습이 갓 복직한 '옛날사람'인 내게는 꽤 신기하게 다가왔었다. 오늘은 뭐 드시겠어요, 식사는 어떡하시겠어요, 등의 대화가 사라진 사무실이라니. 아니, 이런 삭막한 세상이라니......., 완전.... 만만세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 알아서 움직였다. 점심을 준비해 온 이들은 사무실 책상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나가서 먹을 이들은 알아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였다. 우와우, 월드 스타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막내 시절, 나를 괴롭히던 많은 문제들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어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코로나 이후 조금씩은 변화가 있다고들 했다. 친구 G의 회사에서는 코로나 이전에는 팀원 전원이 다 함께 구내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서 같이 먹고 돌아왔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시간 차를 두고 각자 밥을 먹으러 가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격리되는 일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일부 인원은 재택근무로 빠지기도 했으니, '다 같이'라는 기존 룰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는 이야기. 이럴 때의 최고 장점은? G는 감염을 막는 데 의미가 있는 행동인지는 모르겠고, 선배의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들으며 억지 리액션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친구 K. K의 회사에서는 배달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원래는 함께 나가서 밥을 먹는, 우리 회사와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코로나 이후엔 배달만 고집하는 배달파가 생겨났다고. 코로나 초기에 음식 배달을 하면서 그 편리함에 익숙해진 이들은 식당에 직접 가는 것을 귀찮아하게 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배달파'와 '배달에 질린 파'가 나누어졌다고. 그리하여 배달파는 꾸준히 배달 음식만을 먹고, 배달에 질린 파는 나가기를 택했다는 이야기였다. K는 다 함께 밥을 안 먹는 게 당연해졌고, 따라서 한 번에 식당에 들어갈 인원이 줄어드니 뭐든 먹기가 편해졌다고 말했다. 아, K는 배달에 질린 파였다. 지인 A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인원이 적은 사무실이어서 출근하면 퇴근 전까지 업무와 식사를 함께 하는 게 매우 당연했지만, 이제는 기침을 콜록거리며 혼자 먹고 오겠다고 말하면 아무도 잡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좁은 사무실에 있지만 마스크를 벗는 유일한 때인 식사시간에 혼자 밥을 먹겠다고 해도 '에이, 같이 먹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요즘도 A는 이런저런 피곤함이 몰려올 때면, 억지 기침을 짜낸다고도 했다. 들으며 깔깔 웃었다. 야, 코로나 대단하다 그치. 기침만 하면 아무도 안 건드리는 거네. 코로나는 확실히 '다 함께' 움직이는 순간들을 모조리 아작 내버린 것 같다. 그리고 굳이 바꿔 말해보자면, 혼자 있고 싶은 사람들에게 혼자 있고 싶은 자유를 선사해 준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 복직 직후, 나는 분위기 파악을 위해 우르르 나가는 이들 틈에 끼어 밥을 먹기를 택했었다. 다들 어찌 지냈나, 요즘 분위기는 어떤가 하는 상황 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2주쯤이 지나자,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먹는 점심에 금방 지쳐버렸다. 말이 쉬워 1~2주지, 주 5일 근무하는 회사에서 1~2주라는 기간은 무려 10번쯤의 점심을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였고, 이쯤 되니 슬슬 '자유'에 대한 갈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휴직자로서 1년을 보내면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너무 적응해 버린 상태였다. 아이가 학교에 간 동안 혼자 집에 머무는 시간을 통해 충전을 하고 있었는데, 복직 후엔 이 '혼자 있는' 시간이 사라져 버린 거였다. 아이가 학교/학원에 간 동안 나는 회사에 있었고, 퇴근 후 돌아가면 아이가 있었다. 혼자 있는 게 불가능한 일상이랄까. 일주일쯤이 지나자 어떻게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절박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1시간 동안 밥만 먹기엔, 그 시간이 너무 아깝기도 했다. 휴직상태에서의 1시간은 밥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산책까지 하고 돌아올 만한 시간이었지만, 다 같이 밥을 먹는 1시간은 정말 딱 밥 먹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식당으로 이동해 밥을 주문하고 식사 후 다시 회사로 돌아오면 1시간이 가득 찼다.
그리고, 매일 이어지는 점심시간의 대화 또한 내 에너지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다 같이 앉은 식탁에 침묵이 흘러도 어색했고, 적당히 가벼운 어떤 대화 소재를 매일 꺼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 세상엔 많겠으나, 나는 그런 평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못 되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스몰토크 능력이리라. 스몰토크, 그건 내겐 숫자와 함께 해결불가능한 인생 과제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놈의 스몰토크가 내겐 너무나 어려웠다. 차라리 1:1로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를 하라면 온갖 얘기를 다 할 수 있겠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로 티키타카가 오가는 그런 대화 소재를 찾는 게 힘들었다.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들, 그러다 또 찾아오는 침묵. 그리고 더불어 고백하자면, 엉엉, 밥 먹으면서 일 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다들 워커홀릭인가. 왜 밥 먹으면서 일얘기를 하는 거야. 살려주세요. 뭐, 복직한 내 입장에선 그랬다.
아무튼 이런 백만 스물두 개쯤 의 이유로,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땠더라. 혼자 먹겠다고 말을 하고 나가선 천천히 주변을 걸어 다녔던 것 같다. 뭘 먹지, 뭘 먹으면 혼자서 가볍게 먹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이, 메뉴 선택이 자유롭다는 거였다. 다른 이의 취향을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이 그저 내가 먹고 싶은 걸 고르면 됐다. 그런 식으로 몇 번 밥을 먹고 나서는 빨리 밥을 먹는 게, 점심시간을 훨씬 더 길게 쓸 수 있는 방법임을 알게 됐다. 1시간 동안 앉아 밥을 먹기보다는, 20분 밥을 먹은 후 40분 산책을 곁들이는 게 훨씬 더 기분이 좋았다. 간단히 밥을 먹고는 음악을 들으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어라, 이 골목에 이런 가게가 있었나. 오늘 날씨 끝내준다. 광합성 너무 좋아 등등. 어느 순간부터 내게 점심시간은, 오전 오후 사이의 '기분 전환 시간'으로 변화되어 갔다.
돌아보면 꽤 놀라운 변화이긴 한 것 같다. 다 같이 밥만 먹을 땐 짧기만 했던 그 시간이, 쪼개서 쓰니 더 길게 느껴졌다. 1시간을 신나게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들을 많이도 했던 것 같다. 서점에 가서 신간을 천천히 구경하기도 했고, 새로 생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셔보기도 했고, 뜬금없이 쇼핑을 하기도 했었다. 이건 마치, 꽃이랄까 이름이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점심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무엇을 할지 정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자유 시간이 되어주었다. 활짝 열린 자유시간.
1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다. 혼자 머무는 자유 시간이 절실한 내게는 특히나 더 소중했다. 나는 이 1시간을 어떻게 보냈더라.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오랜만에 수다를 이어나가기 위한 질문을 하나 던져 보고 싶어졌다.
"하루 딱 1시간, 1시간이 온전히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